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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설교]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교회협 제공]박경조 주교(대한성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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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조
기사입력 2020-04-04

    

 

본문 : 마태복음 545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박경조 주교(나눔과평화재단 이사장)     ©뉴스파워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너의 희망이 족할까?”

요즈음 다시 유행하고 있다는 희망가의 가사입니다. 이곡은 원래 미국 찬송가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193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노래입니다. 19193.1독립운동 이후 일제는 문화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식민지배로 더욱 교묘하게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때 이 노래는 나라를 잃고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던 이 민족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해방이 되고 난후 1980년대 유행을 하다가 2020년이 된 지금 다시 사람들을 눈물짓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실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변화, 인구의 감소, 청년 실업의 증가, 계층과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몇 년째 자살 공화국이라는 불명예의 딱지는 떨어질 줄 모릅니다. 거기다 임박한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위기로 인해 자욱한 미세먼지 속 괴질의 번창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근본적이고 심각한 위기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뼈아프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교회는 지금 어떤 세상을 꿈꾸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교회의 성장이나 개인의 축복만을 꿈꾸며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꿈들이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이 한 개인의 축복에만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에는 내 가족의 축복이나 번영만을 꿈꾸며 거기에 매몰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솔직해져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독특한 배타적 성격 때문에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 교회만의 번영을 생각하다보면 우리 편이 아닌 다른 쪽은 우리의 경쟁자가 되고 우리의 적이 되어 그들을 혐오하고 저주하게 될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입니다.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삶의 틀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하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경쟁은 필연적이고 더욱 치열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회전체가 경쟁으로 치닫고, 거짓과 폭력이 판을 칠 수 밖에 없습니다. 적당한 보완책이 없으면 우리 모두는 정글의 짐승들이 되어 서로를 속이고 서로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시장자본주의는 결국 승자독식의 사회를 만들고 약자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교회는 어떤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까?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고 있는 희망가의 이 가사는 바로 우리 교회를 향한 시대의 물음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오늘의 교회를 향해 묻고 있습니다. “도대체 교회는 무엇을 꿈꾸고 있으며 어떤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인가?” “자기들만 천당 가고 잘 살자는 것인가?” 하고 묻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얻기를 바란다면 교회의 주님이신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세상을 원하셨던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로마의 식민지배와 헤롯왕의 학정,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의 억압 속에서 살아가던 당시의 가난하고 고달픈 사람들을 보시고 주님은 참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바라보시며 어떤 세상을 꿈꾸셨을까요? 주님은 자신이 살고 있는 당시의 시대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새로운 세상, 즉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꿈 꾸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위해 당신 자신을 온통 바치신 분이십니다. 세월이 지나 교회도 주기도문을 바치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주님께서 꿈꾸셨던 하나님 나라를 위해 떨쳐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며 어떤 세상이 되기를 원하고 있을까요? 정말 솔직하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청와대 앞에서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입니까? 주말마다 세종로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며 화가 났을까요? 서초동에 모이던 사람들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적개심에 사로잡혀 소리 지르고 있었던 것일까요?

지금 우리 사회는 병들어 있습니다. 코로나 19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얼어붙게 하고 공포와 혐오감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병들게 합니다. 코로나 19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우리들의 마음을 갉아먹고 이 사회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신과 탐욕, 혐오와 불안이라는 바이러스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사람들은 정치가들과 언론의 선동에 놀아나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자기만이 옳은 줄로 알고 망상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향한 저주를 퍼붓습니다. 사회는 갈가리 찢어지고 사람들은 분노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십자가에 못 박기라도 해야 할 것처럼 폭력적이 되어 갑니다.

교회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군중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저주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마치 2000년 전 빌라도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고 소리 지르던 분노에 찬 군중들을 보는 듯합니다. 이 틈을 타고 사이비 종교는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숙주로 더욱 창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 다시 오늘 한국사회의 광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습니다. 아 참 서글프고 마음 아픈 일입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병든 이 사회를 치유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한국교회는 상대방에 대한 모든 저주를 그치고 분노와 폭력의 언어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생명을 품어 안으시고 악한 자 와 선한 자에게 해를 비추시며 골고루 비를 내려주시는 자비와 생명의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전위대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 세상의 고통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들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사랑에 우리는 초대받았습니다.

 

이제 교회의 절기로 보면 곧 사순절과 성 금요일의 수난, 십자가의 죽음을 지나 새로운 부활의 절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주님의 부활을 바라보며 새로운 희망의 문을 열어 갑니다. 이 길 말고 무엇이 우리를 소망의 길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활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부서짐과 상처, 혼란과 절망, 그리고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한국 교회는 더 부서져야하고 더 절망해야 하고 더 실패해야 할지 모릅니다. 부활은 죽음과 실패를 통해서 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밤이 깊어야 새벽이 오듯이 말입니다. 밤이 깊을수록 우리는 부활의 새벽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신앙인들에게 부활의 생명은 먼 미래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절망과 두려움 속에 이미 잉태되고 있으며,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동터오는 새벽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됩니다.

 

옛날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던 그 혼란한 억압과 수탈의 시대에도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던 것처럼 이 풍진 세상 한가운데서도 주님의 섭리는 역사하고 계시며 우리들을 부활의 생명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19의 감염을 경고하다가 결국 자신의 생명을 잃은 중국인 의사 리원량의 용기 있는 발언과 죽음을 보면서, 혐오와 배제로 치닫던 우리들의 마음을 부끄럽게 하고 혼돈의 흐름을 바꾸었던 안산 시민의 용기 있는 한마디 우한 교민을 환영합니다.”라는 그 말을 통해, “대구, 경북이여 힘내라.”고 외치는 따뜻한 마음들을 통해, 자원해서 대구로 모이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손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손길을 읽고 이 시대의 희망을 봅니다.

 

우리 민족은 나라가 어려움을 당할 때 마다 일치단결하여 국난을 극복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함께 힘을 모아 슬기롭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다가 올 후폭풍입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그야말로 총칼 없는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우리는 또다시 진저리나는 정치세력들의 편 가르기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결국 국민들은 또다시 분열되고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혼란의 중심에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당면한 어려움을 헤치고 새로운 내일을 담아낼 수 있는 개혁적인 국회입니다. 그러나 20대 국회를 통해 우리가 본 것은 지겨운 편 가르기 싸움으로 퇴행해 가는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국회를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는 골치 아픈 국회를 십자가 지듯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고 더욱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아니라 상생과 포용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한사람이라도 더 뽑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절망적인 시대의 한가운데서 희망가를 부르며 희망이 어디 있느냐?”고 눈물짓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교회가 그들에게 희망을 말해주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혐오와 저주의 언어를 버리고 용기 있게 평화와 상생의 말씀을, 부활과 생명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소란하고 혼란한 세상 한가운데서도 싹 트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생명의 움직임을 깊이 있게 바라보면서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의 근거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와 부활은 배제와 혐오의 세상이 아니라 너와 나를 품어주시는 경계 없는 평화와 상생의 세상입니다. 우리 함께 그 나라를 꿈꾸며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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