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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설교]중심에 서서 알곡을 추수하라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원로)-교회협 4.15 총선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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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기사입력 2020-04-04

 

▲ 평통연대 이사장 박종화 목사가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뉴스파워

 

    

 

본문 : 여호수아 17/ 마태복음 1336-43

 

선택은 축복인가

경동교회 목회 시절에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특별학교를 얼마동안 운영한 일이 있었습니다. 교육자 출신 교우들이 상당수 동원되고 재정지원도 상당한 정도로 베풀며 교육봉사에 나섰었죠. 하지만 교육 전문기관이 아니기에 한계를 느끼고 학교를 닫는 대신 이들을 위한 장학사업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들 청소년들이 제기한 공통의 고충이 있었습니다. 왜 자꾸 원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그냥 메뉴도 지정해주고, 학용품도 정해서 나눠 주고, 학과목 내용도 정해서 가르쳐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양에는 선택은 고역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통독 이후 처음 한국을 찾은 구동독의 마지막 수상(드 메지에르)을 본인의 요청에 따라 서울의 남대문 시장으로 인도했을 때 그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시장의 점포마다 파는 물품이 가득 쌓여있으며 각기 소형칼라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모습의 풍경이었습니다. 또 다른 점은 예를 들어 구동독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각종 생필품의 종류가 너무 많아 도무지 선택할 수가 어렵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공산주의나 우익 독재체제 같은 획일주의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자유선택이 쉽지 않은 곤욕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남대문 시장처럼 소품종 다량생산의 시대가 아니라 다품종 소량생산의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곳에서는 이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는 커다란 선택의 기쁨이지만, 좌우를 막론하고 전체주의 체제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고 오히려 강요되는 지시를 따르면서 편하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사회에서든 선거는 선택의 극치입니다. 지난날의 동독이나 오늘날의 북한처럼 단일 후보에 대한 찬반투표만 허용되는 곳의 선거에는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오늘날 너무도 시끄러울 정도로 분기탱천하는 한국사회의 자유선거에서 유권자가 누리는 선택의 폭과 높이와 깊이는 방대합니다. 후보가 난립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피선거권자의 입후보도 자유이고 유권자의 투표도 자유입니다. 하지만 당선자는 투표로 밀어준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동시에 투표로 밀어준 유권자들은 당선자의 행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입후보의 자유와 투표의 자유는 상호간에 책임을 수반하는 자유입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선거의 모습이고, 자유의 특징입니다. 금년 4.15 국회의원 총선은 유권자들이 누리는 자유권 행사의 축제요 동시에 자유권 행사에 대한 책임을 서약하는 광장입니다. 선택이 축복인 것은 바로 상호 간에 민주적 정치발전과 민생복리 수행을 위해 공동의 책임을 서약하는 자유권 행사인 때문입니다.

 

밀의 길 가라지의 길

오늘의 성서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향유하기 위하여 우리가 선택해야 할 올바른 선택을 제시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주인공인 농부는 알곡을 추수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이미 밭의 상황은 근심거리입니다. 밀과 가리지가 얽힌 채로 섞여 자라고 있습니다. 가라지를 뽑아내자니 밀까지 뽑힐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위험 때문에 추수 때까지 그대로 두라는 것이 예수님의 권면입니다. 추수 때에 알곡은 곡간에 거두어 드리고, 가리지는 불쏘시개로 태워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유념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는 분명히 밀알을 열매 맺을 밀만이 자라는 밭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원하고 바라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는 아직은 밀과 가리지가 공생하는 불완전한 세상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 자신이 하나님나라의 화신입니다.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성육하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미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완성은 아직 아니고”, 예수께서 다시 오시면서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미시작됨과 완성은 아직 아님의 사이에 해당하는 중간시간대입니다. 이 시간대에 살면서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일에 헌신하라고 교회가 부름 받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바로 지금 부분적으로 나마 이루어져야 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택적 결단을 예시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며 대결하는 결전의 장입니다. 밀과 가리지가 선과 악을 대변합니다. 밀의 씨앗은 천사가 뿌렸고, 가라지의 씨앗은 악마가 뿌렸다고 했습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면 그 원흉인 악마도 함께 척결해야 합니다. 추수 때가 되어야, 곧 종말의 때에야 악마와 가라지가 끝장난다고 합니다. 악의 근원을 박멸하지 않은 채 악의 현상만을 처치하는 것은 마치도 몸 곳곳으로 전이된 암세포를 척결하지 않은 채 암 부위만 치료함으로 재발의 위험을 남겨놓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암세포의 뿌리와 악행을 비판하고 고발하고 항암을 통해 무력화시키는 노력은 계속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신앙인과 교회가 밀알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세상의 악을 향해 예언자적 비판의 소리와 행동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원수를 갚겠다면서 악행을 다른 악행으로 보복하려드는 악순환의 어리석음은 행하지 말라 하십니다. 앙갚음으로 사용한 악행 때문에 또 다른 악행자로 처벌받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원수 갚은 일은 하나님의 진노에 맡겨 악행과 악마까지 처리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12:9-17).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한 가족을 살해한 악당들을 보복하려고 홀로 살아남은 어린 꼬마가 성장하여 악당들을 하나씩 하나씩 척결하는 권선징악의 린치행위가 시청자의 강한 공감을 얻어 냅니다. 하지만 악당 처리를 사법당국에 위탁하지 않고 린치를 가하는 것으로 해결함으로 법적으로는 또 다른 범법자로 처벌받게 되는 악순환 말입니다.

 

성서본문은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가라지가 동거의 파트너라는 불편함과 분노에도 불구하고밀알이 더 많은 열매를 맺어 추수 때에 곡간을 더 큰 기쁨으로 채우라는 분부입니다. 농사의 목적은 알곡추수요 곡간의 채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로마서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12:21) 악을 악으로 갚는 악순환을 넘어서서 악을 선으로 이겨 승리하는 선순환의 선택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언자적-제사장적 사명의 핵심입니다. 악에게 저항하는 만큼 선으로 승리할 방안을 마련하라 십니다. 과거와 현재의 불의와 폭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에 머무르지 말고 오늘과 내일의 공의와 평화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악마가 주도하는 가리지 역사의 척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지만, 천사가 주도하는 알곡의 축복을 쌓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약속입니다.

 

알곡 선택의 왕도: “중심을 잡고 앞으로가라

알곡이냐 가라지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너무도 쉽습니다. 가리지의 길은 멸망과 죽음의 길이고, 알곡의 길은 풍요와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으로부터 광야의 시련기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향해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행로를 이끌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말씀입니다. “오직 율법을 지키며...좌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담은 법궤는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지도자의 어께에 매어져 있습니다.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앞장서 가십니다. 가나안 복지의 미래로 향해 가십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먼저 앞으로가라는 말씀입니다. 힘든 광야 생활에 지쳐서 일부의 불신앙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라리 종살이 했지만 배불리는 먹을 수 있었던 애굽으로 뒤돌아가자고 불평을 내뱉었었습니다. 뒤로 가는 수구골통의 길은 가야할 길이 아닙니다.

 

좌나 우로 치우치지말라는 말씀의 두 번째 뜻은 앞장서 길을 인도하는 율법을 중심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중심이 없이 좌로 편향되거나 우로 편향되면, 그것은 극좌와 극우라는 질명에 빠지게 만듭니다. 인간의 몸에는 두 다리, 두 팔, 두 눈, 두 귀가 있습니다. 한 쪽 다리가 무너지면 중풍환자가 됩니다. 건강을 잃고 중심을 잡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이 중심이듯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에게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서입니다.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삼아 건강한 왼편 다리와 건강한 오른편 다리는 몸을 받치는 상보의 기둥입니다. 건전한 진보와 건전한 보수는 건전한 사회의 양대 기둥입니다. 하지만 좌로 치우친 진보는 극좌로 변질되고, 우로 치우친 보수는 극우가 됩니다. 극우나 극좌는 건강한 몸인 밀알을 거부합니다. 가리지 잎처럼 교만과 아집의 목을 꼿꼿이 세우고 알맹이 없이 시끄럽게 울리는 꽹과리 소리를 내며 세상을 협박하고 분열시킵니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중심이신 그리스도에 충실하기보다, 극단적 교리와 파벌과 교권으로 뭉쳐 상대방을 저주하고 원수시하며 담을 쌓습니다. 그것이 바로 극단주의가 지니는 자기 의라는 질병입니다. 이는 죽어야만 없어지는 불치의 바이러스입니다. 예수께서 공격하신 바리새인들의 질병이 바로 이런 자기 의의 왜곡된 삶이었습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의 바리새파가 너무도 활개를 칩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파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파하십니다. 한 몸을 지탱하는 몸속의 다양한 지체들을 연결시키고 조화하면서 아름다운 은혜의 화음을 내기보다 분열과 파괴를 낳기 때문입니다.

 

이제 선거를 앞두고 중심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유권자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선적으로 정당과 후보자와 정견을 보고 자기 의를 절대화시키며 극우와 극좌로 변질되어 있는지 유무를 판단하고 걸러 내어야 합니다. 그들은 가리지 족속이며 쭉정이일 뿐입니다. 우리 한국사회는 국민의 동의와 합의 아래 헌법을 국가와 국민의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헌법이 제시하고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관에 의거한 헌정질서를 국가안위의 중심으로 삼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에게 건실하게 다가오는 정당들의 모습은 좋게 보면 이 헌정질서의 귀중한 면면을 보존하고 힘 있게 만드는 일에 역점을 두는 헌법적 보수와 이 질서의 내용을 밝은 미래를 선도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확장하려는 헌법적 진보‘, 이 두 모습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헌법적 중도‘,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봅니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내건 정책과 공약의 면면을 살펴보고, 지금 오늘의 시점에서 그리고 가까운 장래를 바라보며 구체적으로 공약실천의 우선순위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적합한지, 그것의 진정성과 실행성은 담보되어 있는지, 경쟁하는 후보자는 정책과 공약의 담지자요 실천자로써 필요한 품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후보자가 유권자인 당사자와 진정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투표에 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서의 빛에서 헌법의 가치를

국회의원을 뽑는 이번 총선에서 기독교 신앙인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후보자가 같은 교회 교인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교회 업무가 아니라 국사를 책임질 의원이기 때문입니다. 학연 지연도 개인관계도 아닙니다. 기초구역 지방의회 의원이라면 가능할지 모릅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이라면 이럴 경우 어떻게 말씀하실까?”를 먼저 생각에 올려야 합니다. 그의 말씀을 먼저 성서에서 찾아 읽고 묵상하고 생각하고 결단을 내리십시오. 우리의 신앙선배요 유명한 신학자인 칼 바르트는 이런 제안을 합니다. 곧 설교자를 포함하여 모든 신앙인들은 한 손에 신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성서를 들고매일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강조합니다. 항상 성서의 빛에서 신문을 해석하고 이끌어가야 합니다.” 라고. 이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중심잡기의 해답입니다.

 

말을 바꾸어 우리 국가와 국민이 공통의 중심으로 삼는 헌법에 충실하되 신앙인은 동시에 이 헌법을 성서의 빛에서해석하고 이해하고 뜻을 펼치게 하는 신앙 고백적 중심을 항상 지녀야 합니다. 교회의 공적인 입장과 태도를 권면하며 주시는 성서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교회는 세상에 몸담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는 아니 합니다”(요한복음 16:18). 교회를 신앙인으로 바꾸어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한국 땅에 몸담고 살기에 분명히 한국과 한국민을 사랑하고 아끼는 애국 애족하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헌법과 헌정질서도 충실히 지켜가는 파수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교회의 역사성내지 사회성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동시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 받고 세상 속으로 즉 한국 땅과 국민 속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요 전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주님이 명하신 대로 한국 땅에 그리고 온 세상에 나아가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위에서도 이루어지도록기도하고 헌신하며, “하나님 나라가 이 땅위에 임하기를기도하며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항상 고백하고 선포하는 주기도문의 핵심입니다. 교회는 한국 땅에 하나님 나라의 화신으로 사는 하늘의 공동체입니다. 이를 교회의 종말성이라고 말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교회는 세상 속에서 세상을 넘어사는 구원의 공동체입니다. 같은 말로 우리 신앙인은 세상에서 세상을 넘어살아가는 역사적 존재요 동시에 종말적 존재인 것입니다.

 

거둘 알곡은 하나님 나라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하나님 나라의 뜻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라도 이루어지는 역사가 이루지기를 소원합니다. 열린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경쟁하며 협력을 이루되 하나님 나라의 뜻을 중심으로 삼고, 그 뜻을 실현하는 보수적 방식과 진보적 방식으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내실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아픔과 고통과 결실의 기쁨을 때로는 시끄러운 시위로, 때로는 조용한 선거혁명으로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식민지 고난의 언덕을 넘고, 분단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처절한 나락을 딛고, 그렇게도 짧은 시간에 세계의 선진국대열에 들어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선교를 받던 교회에서 선교를 제공하는 교회로 탈바꿈했으며, 원조를 받던 빈국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부국으로 변했습니다. 그동안 신기술문명의 선두주자로, 신문화 예술의 첨단주자로 세계의 부러움과 칭송을 받고 있음에 뿌듯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허나 지금 급격하게 밀려오는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감염의 선두주자로 찍히더니 온 세계가 태도를 바꾸어 한국을 경계하고 배척하려는 코리아 포비아의 모습을 보입니다. 슬프고 가련합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섭시다. 한강의 기적을 단시일 내에 이룩한 자부심을 살려 온 국민이 힘을 모으고, 여야가 단합하고, 남녀노소가 협력하고, 신앙의 공동체가 함께 일어나 바이러스를 퇴치합시다. 기도하고 후원하여 바이러스 치료 백신을 속히 만들어 감염자들을 치유하고 미래 발명과 전염을 예방하고 세계 각국의 환자들에게도 위로와 협력의 손길을 보내어 한국을 다시 사랑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코리아 필리아의 밝은 미래를 창출해 봅시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뜻이 우리 한국 땅에 속히 임하는 일에 우리들 교회와 신앙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이번 선거가 이를 이루는 커다란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교회가 앞장서고, 신앙인들이 유권자로서 앞장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33) 이 말씀은 예수께서 우리 인간이 먹고 마시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일에 필요한 축복을 풍성히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그보다 먼저 지킬 것을 분부하신 말씀입니다. 이 나라의 내실 있는 정치적 민주화, 복지와 풍요, 사회적 안정과 문화 향상, 전쟁을 없이하고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 싶어 하는 온 겨레의 갈망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약속을 주시는 주님이 부탁하시는 분부의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가 먼저구하고 헌신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15:17) 이 말씀 속에 우리가 추수하고자 하는 밀알의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선거에 있어서의 투표와 선택의 중심축을 삼으십시오. 우리는 이제 앞에서 이끌어 주시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따라 전진합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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