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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길 한동대 초대총장 1주기 추모예배

이재훈 목사 "한동대서 제2, 제3의 김영길 양육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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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기사입력 2020-07-07

한동대학교(총장 장순흥)는 지난 6월 30일 김영길 그레이스스쿨에서 고(故) 김영길 초대총장 1주기 추모예배를 드렸다.

▲ 고 김영길 한동대 초대총장     © 뉴스파워



추모예배는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학교법인 한동대 이사장)와 유중근 이사, 법인 이사진, 장순흥 총장, 고 김영길 초대총장 유족 대표 김영애 사모 등이 참석했다.

 

△ "총장님 흔적 통해 늘 함께함 느껴"
장순흥 총장은 추모사에서 "고 김영길 총장이 곁에 계시지는 않지만 학교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늘 함께함을 느낀다"며 "한동대학교가 세속화되지 않고 학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글로벌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유중근 이사는 "김영길그레이스스쿨의 과목을 통해 고 김영길 총장의 삶과 말씀이 배우는 학생들의 마음을 적시길 소망한다"며 "한동대학교의 학생들이 세상을 살리는 인재들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 "총장님 못다한 한동대 위해 기도 이어갈 것"
김영애 사모는 유족을 대표해 "고 김영길 총장의 1주기 추모예배에 참석해 준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며 "김영길 총장이 못다한 한동대학교를 위해 기도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 "한동대서 제2, 제3의 김영길 양육되길"
앞서 추모예배에서 이재훈 목사는 '하나님의 선한 손을 의지한 인생'이란 설교를 통해 "고 김영길 총장의 삶은 하나님의 선한 손을 의지한 인생이었다"며 "앞으로 한동대학교에서 제2, 제3의 김영길 총장이 양육되어 배출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당부했다.

 

한동대 학생들은 "우리 그의 제자 그의 길을 가는~ 주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자~ 우리 그의 제자 그의 길을 가는~ 주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 우리 그의 제자라~"란 고 김영길 총장 추모 곡 '제자'를 작사작곡해 불렀다.

 

최재웅씨(한동대 97학번)는 "힘들고 어려움이 왔을 때 총장님이 안아 주심을 떠울릴 수 있었다"고 했고, 김아람씨(한동대 98학번)는 "총장님이 고향에 계신 아버지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포커싱된 분"
신은혜씨(한동대 01학번)는 "아, 이런 분이 계셨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모토로 삼고 싶은 그런 분이셨다"고 했고, 강신익 장로(전 한동대 부총장)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에 포커싱되어 있으니 복잡하지 않은 분이었다. 아주 심플하신 분이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임정택씨(한동대 04학번)는 말을 하려다 눈물을 닦았다. 김 총장이 소천한지 1년이 지났지만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제자들이 많았다.

참석자들은 이 땅에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고 김영길 총장에 대해 "그는 수많은 업적을 남긴 과학자였고, 학생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준 스승이었으며,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충실한 제자였다"고 입을 모았다.

 

△ "저희는 남 주기 위해 배웠어요"
1995년 3월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 도심과 떨어진 허허벌판에 하나님의 인재를 양성하는 기독교대학교가 세워졌다.

지성과 인성, 영성을 바탕으로 한 한동대는 크리스천 인재를 육성하는 선명한 비전을 제시하며 시작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김 총장은 개교당시 "한동대학교는 또 하나의 대학이 아니고 새로운 대학"이라고 강조했다.

 

한동대는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관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곳에는 믿음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남다른 교육철학이 있었다.
한동대 학생들은 지식도 추구하지만 올바른 영성 위에서 지식을 세워서 지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했고, 그렇게 실천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유윤경씨(한동대 11학번)는 "모든 학교가 '내가 잘돼야 한다'라는 부분이 많다면 저희는 그 반대로 남을 위해 잘돼야 한다. 남 주기 위해 배웠다"고 했다.

 

△ "한동대 교육 중심엔 김영길 총장이 있었죠"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는 "세상 모든 교육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강화하고 이기심을 확장하는데 초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동대학교의 교육이념은 자기를 희생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동대학교가 교육이념에 헌신했고, 그 중심에 김영길 장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동대의 무감독 양심시험제도도 파격적이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모든 시험에 감독관이 없다. 학생을 믿으니까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 "무감독 시험 이겨야 세상 큰 유혹 이길 수 있어"
민준호씨(한동대 96학번)는 "처음에는 굉장한 충격이었다"며 "와, 이거 커닝하기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내가 없어도 하나님이 너희들과 함께 계시니까. 이 작은 시험을 이겨내야 밖에 나가서 큰 유혹을 이길 수 있다'고 하신 교수님의 말씀이 큰 도전이 됐다"고 고백했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는 "기독교의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산다란 도전이 그 당시 젊은이들을 한동대로 불러 모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동대는 초기 건물 몇 동과 비포장도로 진입로, 흙밭 운동장 등 세상 기준으로 어는 것 하나 자랑할 것이 없는 작은 학교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하나로 뭉쳤고, 학교와 함께 성장을 이어갔다.

 

민준호씨(한동대 96학번)는 "황량하고 잔디밭 하나 없는 학교였지만, 예뻤던 캠퍼스로 기억하고 있다"고 추억했다.

 

△ "총장님은 공부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죠"
최재웅씨(한동대 97학번)는 "그 어떤 높은 분이 내가 공부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겠나. 우리 엄마, 아빠도 그렇데 안 한다. 그런데 총장님은 공부하는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혜경 한동대 교수는 "아이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너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 너의 삶의 비전이 무엇이냐'란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가 한동대에 들어와서 고 김영길 총장님으로부터 '그래, 그럼 너의 비전은 무엇이냐, 너는 왜 한동대에 왔니'란 질문을 스스럼없이 받아왔다"고 했다.

 

△ 배워서 남 주는 한동인들
'배워서 남주자'란 고 김영길 총장의 가르침대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제자들 중 한 명인 임정택씨(한동대 04학번. <주>향기내는 사람들 대표).

임 대표는 올해로 11년째 장애인들을 커피전문가로 양성하는 직업훈련을 하고 있다.
한동대 안에 커피점 하나로 출발했던 임 대표는 지금은 서울을 포함한 전국 2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80여명의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임 대표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총장님을 찾자 뵈었다. '총장님, 포항에는 장애인 3만 명이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배워서 남 줄 때가 됐습니다. 한동대 안에 작은 카페 하나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총장님께서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전적으로 지원할게'라고 하셨다"고 히즈빈스 커피점 오픈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김 총장은 생전에 한동대에서 미국 링컨과 같은 대통령, 영국 월버포스와 같은 국회의원, 독일 슈바이처와 같은 의사가 나오기를 바라왔다.
그는 "꿈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면 하나님께서 이뤄주신다"고 강조했다.

 

한동대 한 핵생은 "방송매체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또한 그분의 이름을 전하고 싶다"고 했고, 또 다른 학생(여)은 "하나님의 사랑을 품은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중국을 품고 그 땅에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 "총장님에겐 믿을 분이 하나님 뿐"
서덕수 한동대 교수(한동대 95학번)는 "고 김영길 총장님은 믿을 분이 하나님 밖에 없는 분이었다.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기도하는 총장님이셨기에 우리는 그 분의 진정성을 알 수 있었고, 존경과 사랑을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기도하는 스승의 모습이 제자들에게 그 어떤 가르침보다 강력한 지표가 돼 왔다.
그래서 한동대 학생들은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답을 구하고 있다.

 

△ "한동대에서 참 많이 배웠어요"
김승환씨(한동대 95학번)는 "객관적으로 보면 한동대에는 뭐가 많이 없다"며 "그런데 한동인들은 없다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했고, 박꽃초롱씨(한동대 07학번)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 등 한동대에서 참 많이 배웠다"고 했다.

 

최재웅씨(한동대 97학번)는 "한동대에서 저를 찾았다.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삶을 누리는 기쁨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 산골소년, 과학자를 꿈꾸다
1939년 10월 3일. 고 김영길 총장은 유교사상이 짙었던 안동시 지레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김 총장은 생전에 "첩첩산중 산골에 태어나 자동차보다 비행기를 먼저 봤다"고 고백했다.


그의 어린시절 꿈은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김 총장는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들어갔다.

 

성태연 교수(카이스트 제자)는 "총장님은 비행기 엔진 등 최고급 기술이 적용되는 분야의 연구를 하셨다"고 회고했고, 김준 교수(창조과학회)는 "고인의 연구업적이 굉장히 탁월했다. 병아리 과학자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했다.

 

△ 반도체 분야 새장 연 리드 프레임 합금제조기술 개발
김 총장은 항공기 제트엔진 터빈 블레이드를 개발해 세계 최대 리켈합금회사에 스카웃 제의를 받았고, 나사(미 우주항공국)의 '테크 브리프 상'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며 과학자로서의 이름을 떨쳤다.


미국에서 12년 연구활동 끝에 카이스트 재료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반도체 분야 새로운 리드 프레임 합금제조기술을 개발했다.

 

성태연 교수(카이스트 제자)는 "리드 프레임이 왜 중요하느냐면 모든 전자 장비가 구성된 곳에 리드 프레임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굉장히 전류가 잘 흘러야 하고, 강도가 높아야 하고, 잘 구부러져야 한다"고 했다.

 

리드 프레임 기술은 독일에 수출됐고, 이 때부터 반도체 개발에 가속도가 붙었다.

 

△ "고인은 재료공학 분야 최고였다"
이웅상 박사(창조과학회)는 "고인은 나사에서 상도 이미 받았고, 그만큼 세계적인 석학이었다. 재료공학 분야에서 최고였다"며 "상을 받을 때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하나님이 거져 주신 것이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재광 박사(카이스트 제자)는 "과학자로서 누구보다 총장님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라며 "모이기만 하면 기술개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석사과정을 졸업한 뒤 결혼을 했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동분서주하시던 총장님이 20여만원의 장학금을 받게 해 주셨다. 덕분에 의료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김영길 총장, 아내로부터 복음 전해 들어
김영길 총장은 아내 김영애 여사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었다.
결혼 뒤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됐다.
세계 최고 석학들이 있던 나사에 근무할 때 였다. 그곳에서 성경공부도 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다.

 

김준성 목사(흥릉연합신우회)는 "흥릉지역에서 카이스트 이야기를 하면 김영길 총장님 이름이 안 빠지고 나오고 있다"고 했고, 조영돈 박사(흥릉연합신우회)는 "성경공부 모임 덕분에 창조과학회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곳이 베이스와 같은 곳이다"고 했다.

 

△ 1981년 1월 한국창조과학회 출범
1980년 8월 서울에서 세계복음화대성회(준비위원장 김준곤 목사)가 열렸다.

이 행사를 앞두고 CCC 김준곤 목사는 이 시기 한 교수로부터 김영길 교수를 소개 받았다. 김 교수가 첫 창조론 세미나를 했다. 이를 계기로 1981년 1월 CCC 본부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한국창조과학회를 정식 발족했다.

한국창조과학회 발족을 시작으로 진화론이 지배적이던 세상을 향해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이 불일 듯 일어났다. 노아 방주도 과학적으로 재증명됐다.

 

△ "고인은 하나님 말씀이라면 군소리가 없었다"
이웅상 박사(창조과학회)는 "고인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군소리가 없었다. 그 분은 '나는 요한처럼 외치는 목소리 뿐'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시골이든, 산골이든, 학교든 어디든 뛰어들었다. 제가 그분의 삶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 주말마다 2천여회 창조학 강연
고 김영길 총장은 카이스트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도 주말마다 창조학 강연을 다녔다. 그 횟수가 무려 2천 회가 넘는다.

 

△ "김 장로님은 거룩한 바보였다"
이재훈 목사는 "김 장로님은 '그리스도를 위해 어리석은 자가 되어라'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내려 놓은 거룩한 바보이시고 또 그리스도를 위해 어리석은 자가 된 어린아이와 같은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1994년 신생 기독대 총장 제의 받고

 

당시 김 총장은 "제가 온누리교회 1호 장로다. 그날 설교제목이 하필이면 '부르심과 순종'이었다. 대학총장이 되는 것 꿈도 안 꿨다. 그런데 목사님의 그날 설교 말씀이 딱 와닿았다"고 간증했다.

 

김호민씨(아들)는 "제일 처음에 총장직 제안을 반대했다. 카이스트 교수는 명예로운 직위고, 평생 금전적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이재규 장로(온누리교회)는 "그분이 가는 길은 그간 쌓아온 모든 업적을 내려 놓고 가는 가시밭길이었다"고 당시를 회고 했다.

 

순탄할리 없는 나선 광야 길인데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김영길 장로의 뜻을 단호했다.

 

김영애 사모(아내)는 "재단 기업이 폐기물 유출사고로 문을 닫았다. 내년에 못 한다고 했다. 빚더미에 있었다. 그래도 그 기업에서 설립한 대학의 총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이게 말이 되느냐. 1995년 3월 7일 개교식 때 바닷바람이 불었다. 화환들이 바람에 하나씩 착착 넘어졌다. 암담했다. 우리 미래가 이렇게 쓰러지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안정된 과학도의 삶을 내려놓고 순종함으로 포항에 왔는데 재정적 어려움 등 혹독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덕수씨(한동대 95학번)는 "95년 개교할 때 한동대 자연대 본관 홀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듬해 노조사태가 터졌다. 파업의 현장은 격동의 공간이 됐다. 지역 인사와 포항시와의 갈등으로 숱한 고난이 이어졌다. 안전지대가 없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고 들려줬다.

 

자연대 본관 홀에 들어서자 "만약 우리가 일반 대학이었다면 그리고 저희 안에 품고 있었던 사랑이나 용서의 자세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상황까지 참지 못했을 것"이란 마이크를 잡고 있던 한동대 한 학생의 외침이 떠올랐다.

 

한동대학교에는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함께 눈물로 기도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서덕수씨(한동대 95학번)는 "사실 총장님을 무너뜨리기 위한 많은 공격이 있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기도했다. 앞에 나가서는 강한 척해야 했다. 기도하고 나면 정말 마음이 안정되고 학생들이 하나 됐다. 그런 것들을 많이 경험했다"고 했다.

 

김승환씨(한동대 95학번)는 " 다들 한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이곳에서 폭력적인 일이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된 핍박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학교는 성장을 거듭했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됐다"고 회상했다.

 

한동대는 교육개혁추진 우수대학으로 선정되며 지원금을 받아 직원들의 밀린 월급을 해결했지만, 이 것이 문제가 됐다. 김영길 총장이 학교공금 전용혐의로 구속됐다.
현직 총장의 법정구속은 초유의 사건이었다.

 

김영길 총장은 훗날 "구치소에 수감되니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저보고 신고하랬다. 어제는 대학 총장이었는데 오늘은 구치소에서 신고하는 사람이 됐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천국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의 몸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했다. 그걸 묵상하니 나에게 처한 현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간증했다.

 

2001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수십대 버스가 경주구치소 앞에 도착했다. 학부모, 학생 등 1천800여명이 모였다.
흐트러짐 없는 질서정연한 모습은 기독교 공동체의 힘이었다.
스승 김영길 총장의 진정성이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었다.

 

서덕수씨(한동대 95학번)는 "우리는 총장님의 진정성 있는 사랑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이 분이 정직한 분인지, 겸손한 분인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인지 알기 때문에 스승의 날에 총장님이 구치소에 있는 게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최재웅씨는 "학생들이 스스로 손을 잡고 교통을 통제했다. 한 번도 등교하지 않은 적이 없는 훌륭한 모범생들이 학교를 포기하고,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바라면서 그곳으로 갔다"고 했다.

 

2001년 12월 28일 김영길 총장이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교도소 문을 나섰다.
김 총장과 김종원 장로(선린병원과 선린대학교 설립자)의 뜨거운 포옹이 있었다.

김 총장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 총장은 마중나온 한 사람, 한 사람과 뜨겁게 포옹했다.

 

김 총장의 옥중 생활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열매 맺음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견딘 시간이었다.

 

김영애 사모(아내)는 "총장님께 돈이 없는 걸 선택 하겠느냐, 핍박이 없는 걸 선택 하겠느냐고 물어 본적이 있다. '나는 그래도 학교에 돈이 있으면 좋겠어. 검찰에 불려 다니고 조사받는 건 나만 고생하면 되니까' 그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동대는 2002년 한동국제법률대학원을 개원했으며, 2007년 unesco-unitwin 프로그램 주관대학에 선정됐으며, 2008년 OECD-한동대학교 인턴파견 협정을 체결했다.
2011년에는 academic lmpact 글로벌 허브에 지정됐다.

 

김 총장은 2013년 12월 11일 재임 중 마지막 한동대 채플시간에 "저는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한동을 사랑하고 또 사랑했습니다. 많이 고생스럽고 힘들었지만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저는 참 부족한 리더였습니다. 서툴고 모자란 리더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부족한 저를 잘 따라주어서 다시금 고맙습니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총장 퇴임식날 학생들은 김영길 총장 이름으로 3행시(詩)를 지어 함께 외쳤다.
김-김영길 총장님의 사랑과 가르침은
영-영원히 한동인들 가슴속에
길-길이 남을 것입니다.
총장님 사랑합니다.

 

김 총장의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2017년 12월 그에게 삶의 끝을 알리는 갑작스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온누리교회 새벽기도회 때였다.


김 총장은 "지금으로부터 한 2년 전에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치의가 앞으로 남은 생명의 시간이 한 8개월이라고 그래요."라며 비교적 담대히 자신의 건강상태를 알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했던 김영길 총장이었다.
교육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레이스 스쿨을 설립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다.

 

반기문 8대 유엔사무총장은 "한동대 김영길 총장님은 매우 진취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아프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총장은 그날 영상메시지를 통해 "그레이스 스쿨은 정직, 성실, 책임, 사랑의 전인교육의 핵심 가치를 전수하고 세계를 변화시킬 글로벌 인재를 양성할 것"이라고 했다.

 

손성찬씨(한동대 98학번)는 "그레이스 스쿨은 김영길 총장님이 정직, 성실, 책임감을 갖춘 글로벌 리더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표를 실현하는 전인적 세계 시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커리큘럼을 가지고 교육하는 기관으로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김영애 사모(아내)는 "2019년 6월 30일 총장님이 세상을 떠나지 직전에 '난 참 내 일생에 만족한다. 행복했다. 감사에 감사가 넘쳤다. 예수님 때문이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총장은 그날 병문안 온 이들을 향해 'see you tomorrow everybode(다시 만납시다) '라고 마지막 하직인사를 했다.


김영길 총장은 2019년 6월 30일 복음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2020년 5월 15일 스승의 날.
한동대 졸업생들이 다시 총장댁을 찾았다.
김영애 사모가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김 사모는 "총장님이 생전에 '당신, 외롭지 않을 거야'라고 하셨다. 무슨 자신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그랬는데, 그 말이 오늘 보니까 맞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어 "과학자든, 교육자든, 신앙인이든 다 하나님 손에 붙잡혀 살아야 한다.  He is man of god(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민준호씨(한동대 96학번)는 "총장님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이 어떤 건지 보여주셨다. 그런 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다"고 했다.

 

이재규 장로(온누리교회)는 "(김영길 총장은) 참 바보 같은 신앙인이었다. 같은 시대에 그 모습을 보여주며 같이 살아 너무 감사하다"며 고인을 추억했다.

 

장순흥 한동대 총장은 "한동대학교에 좋은 학생 배출해서 세상을 바꾸는 일에 계속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생전에 강조했던 김영길 총장의 말이 귓전을 울렸다.
"세상은 가져서 바뀌지 않습니다.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 아닙니까. 세상은 줄  때 바뀌어지는 거예요. 희생함으로 바뀌는 거예요. 누구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희생하고 손해 보게 되면 세상은 바뀌게 되는 겁니다."
 

고 김영길 한동대 초대총장은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주리주립대학교에서 금속공학 석사, 렌셀러폴리테크닉대학교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한동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총장 재직 기간에는 제17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과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분과 위원장을 지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세종문화상, 올해의 과학자상, 한국기독교 선교대상 교육자 부분, 한국기독교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또 '공부해서 남주자', 'Why not change the world?(세상을 변화시키자)'란 슬로건을 내세워 혁신적 커리큘럼과 기독교 정신 기반의 인성교육에 앞장섰다.

2016년 6월부터 한동대 명예총장으로서 대학발전에 매진해오다 2019년 6월 30일 소천했다.

포항=이수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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