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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자본주의의 본보기 유일한 회장 ⑧

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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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기사입력 2005-11-24

 
1925년 일한은 고국 방문 길에 올랐다. 실로 9살에 고국을 떠난지 21년만의 고국 방문이었다. 그는 고국에 오는 길에 중국을 들려 숙주나물의 원료가 되는 녹두를 대량 구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때 그는 중국 상인들이 고급차를 굴리고 있으면서도 가게는 보잘 것 없이 허름하게 차려 놓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대국 중국이 조그마한 일본에 꼼짝없이 당하고 있는 이유가 이런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국민들이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지 않으면 그 나라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은 앞으로 어떤 경우든 세금만큼은 성실히 납부하리라고 그때 다짐하였다. 훗날 유한양행의 철저한 세금 납부의 기틀이 그때 세워진 셈이다.

그는 북간도로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에 고향인 평양에 들렸다. 21년만에 만나게 된 고향 사람들의 병약하고 무겁기만 한 표정들을 보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동포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약이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기생충, 결핵, 학질, 피부병, 성병 등의 병들에 시달리고 있는 동포들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낀 그는 고국에서는 다른 어떤 사업보다 제약사업이 먼저 필요함을 느꼈다.

그가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에 있는 가족을 찾아가 21년만에 부모 형제들을 만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기껏 콩나물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미국 가서 공부하라고 했더니만 그래 기껏 한다는 사업이 콩나물 장사야? 창피해서 누구에게 말도 못하겠다. 콩나물 장사는 시장 거리 좌판에서 할머니들이 하는 거야. 내가 너를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 보낸 이유를 잊었느냐?”

“잊을리가 있겠습니까. 조국을 돕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가 되어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만이 조국을 돕는 길은 아니지 않습니까? 선각자들도 말씀하셨듯이 민족기업을 세워 경제 자립을 통하여 조국 독립을 앞당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기래 무슨 사업을 하든지 늘 민족과 조국을 생각하고 신용을 잘 지키며 정직과 성실로 하려므나.”

그는 자신이 미국에서 알바이트를 해서 보낸 돈으로 마련한 대농장에 머물며 나라 잃은 동포들이 중국 땅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럽기 그지없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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