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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희 목사 광야사역 이야기]"광야에는 흐르는 샘이 있다"

영등포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의 사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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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희
기사입력 2020-11-29

 

나는 IMF가 터졌을 때 정리해고를 당했다. 회사로부터 잘리고 나니, 멍때림 당한 사람처럼 길을 잃고 방황을 하게 되었다.

▲ 영등포 광야교회 초기 예배 모습     © 뉴스파워

 

거기에다가 받은 퇴직금으로 노름을 해서 다 날려버리게 되자, 술을 마시고 죽을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죽지는 못하고 영등포 주변의 오락실을 맴돌며 시간을 보냈다.

배가 고파왔다.

그래서 2008년 시월의 비오는 어느 날 사람들이 밥먹으러 가는 광야교회를 찾게 되었다. 이렇게하여 광야생활이 시작되었다.

광야의 원칙 중의 하나가 밥을 먹기전, 매일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예배를 통해 억지로라도 말씀을 들어야 했다. 억지로라도 들어야만 하는 말씀을 통해 모태신앙이었던 나는 차츰 영적 힘을 찾게 되었다.

'이제 뭔가 유익한 일을 하도록 하자!' 생각을 하고 교회의 배식을 돕고, 돌아가신 박수철 간사님이랑 학교에 가서 급식하고 남은 밥들을 수거해왔고, 가끔은 야간 순찰도 돌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끔은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또 다시 넘어졌다. 그리고 또 다시 일어서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일어섰다. 이런 생활이 반복이 되었다. 그러나 차츰 말씀들이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있었다.

▲ 영등포 광야교회 초기 성탄절 예배 모습. 임명희 목사(우측 두번째)와 김명혁 목사(우측 세번째)     © 뉴스파워

 

그렇게 광야에서 7~8년의 세월을 보내고 나서 형님 집에 가서 대리 운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에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형님의 도움으로 지금의 아내가 된 한 자매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자매와 같이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던 중 마음이 맞아 결혼을 약속하고 교회에서 결혼식도 올리고 아들도 하나 낳아 잘 살고 있다.

그 아이가 올해 10살이 되었고 우리의 희망으로 잘 자라고 있다. 아이가 5살 때에 목사님과 사모님이 심방을 다녀간 적이 있다.

제 아내는 요리사요, 나는 연봉 5천만원이 넘는 시내버스 기사로 운전을 하며 집도 장만하여 살고 있다.

▲ 영등포 광야교회 초기 예배 모습     © 뉴스파워

 

이 모든 것은 탕자가 하나님께 돌아왔더니 아버지께서 주신 복들이다.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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