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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설교] 피로 맺은 하나님과 나의 사랑의 약속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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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기사입력 2021-01-24

고린도전서 11:25

▲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

하나님과 나는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피보다 목숨보다 짙은 약속을 맺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동의와 선택에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마련하신 약속을 자연 법칙이라고 합니다.

내일도 반드시 그 시간에 해가 동에서 뜨고 콩 심은 곳에 반드시 콩이 난다는 불변의 약속,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수학의 동일 불변의 약속, 내가 언제 어디서나 남이 아니고 동일한 자아의 동일성에 대한 확약, 그리고 태어나는 아기마다 가지고 나오는 엄마의 사랑이라는 불변의 약속 어음, 이런 자연 법칙의 동일성, 불변성, 보편성의 참 근거와 권위는 그 입법자인 하나님의 인격 성실성과 약속에 있습니다. 아폴로 13호의 정밀도에 대한 신뢰는 기계보다 그 기계의 제작자에 대한 신뢰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인간 생활의 영역과 인간관계가 크고 작은 성실한 사약(私約)과 공약(公約)으로 이루어졌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육법전서(六法全書)가 규정하고 있는 사회생활 전부를 포함한 법질서가 공동 사회의 다수의 공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결혼식의 혼약을 지키지 않으면 부부는 해약되고, 주고받는 대화마다 책임과 신뢰와 성실성과 약속이 전제되지 못한다면 인격적 대화의 단절과 함께 불신과 암흑과 혼돈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의 언어란 비록 독백이라 할지라도 차신이 자신과 맺는 약속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로 글로 마음속으로 혹은 반지나 별과 달에 증거로 불변의 맹세를 다짐 했고, 몸에 글을 새겨 피를 서로 나누어 마시며 약속을 했고, 서로의 자식을 인질로 삼아 정치적 조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계약서에 자기 이름을 새긴 도장을 피를 상징하는 붉은 인주로 찍는 것도, 악속이란 신성한 것이고 인격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반드시 지켜야 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인간이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의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성실하고(대 자 관계), 내 이웃에게 진실하며(대인 관계), 하나님께 성실하게(대신 관계) 약속할 수 있을 때에만 참 인간인 것입니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고 무책임한 사람이며,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불신 사회이며, 특히 하나님과 아무런 인격적인 약속 없이 사는 사람은 영혼의 무적자입니다.


약속은 시련과 성화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한 인격과 인격 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짙어지고 익어 가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맺어지는 크고 작은 약속들이 많은 시련과 성화의 과정을 거치게 뜁니다.

옛날 영국 런던에 삼십 세의 귀족 후보이며 용모도 뛰어나게 수려하고 높은 지성과 고귀한 품성과 가난한 영혼의 소유자인 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여인들의 연모의 대상이었으나 오직 한 사람의 경건한 여인을 택하여 죽도록 사랑할 때까지 그의 순정과 동정을 곱게 지키고 싶었습니다.

누구보다 낭만과 그리움을 키우는 이 청년은 어느 날 영국의 땅 끝까지 마음이 가는 대로 다니다가 먼 바다에 이루자, 아름다운 바다와 모래밭에 반해서 넋을 잃고 앉아 있는데 한 소녀가 저쪽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다의 신비와 소라의 노래와 모래의 순결로 빚은 정영(精靈) 같이 티 없는 수녀를 이렇게 외진 곳에서 만날 때, 그 소녀를 보는 청년은 최초의 아담이 이브를 보는 듯 황홀했습니다. 그 집에 머물기를 청한 뒤 날이 가고 달이 가도록 이 시인과 소녀는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시인은 소녀에게 먼 훗날 그 소녀가 어른이 될 때를 위하여 사랑의 약속을 하고 싶었지만 약속의 대상으로 소녀는 너무 어렸습니다. 약속의 대상자는 서로가 동격 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백 가지를 적은 약속을 연습하기로 했습니다. 바다 속에 들어가서 백을 세 번 셀  때까지 조개 열 개를 못 잡으면 사흘을 금식하기로 약속했을 때, 소녀는 장난인줄만 알았습니다. 시인은 일부러 조개 열 개를 안 잡고는 약속대로 사흘을 굶었습니다. 소녀는 못 견디게 안타까워했습니다.

소녀와 다른 내기를 해서 지면 그 벌로 아득히 보이는 바위까지 백 번을 달리기로 약속하고는 하루 종일 달리다가 쓰러져도 기어이 약속은 지키는 것임을 못이 박히도록 가르쳤습니다.

시인은 자기 팔에 매를 수십 대 때려 피가 배어도 측은하리만치 소녀에게 약속에 대한 신뢰를 심기 위해서 성실했습니다. 그 대신 소녀도 죽는 약속이라 할지라도 지켜야 한다는 약속 관계를 확립 했습니다.

마침내는 그가 부모에게 받은 소중한 보석 반지를 사랑의 표시로 소녀에게 끼워 주며, 십 년 후 보름달이 뜨고 조수가 만조가 되면 저 바위 밑으로 반드시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그는 떠났습니다.

십 년의 세월이 침묵 속에 흐르고 소녀는 성숙해서 보름달이 뜰 때마다 만조가 뙤면 하루같이 그 바위 아래서 시인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에게 약속이란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인이 소녀를 찾아 달빛 아래에서 만났을 때는 그들의 사랑의 약속은 이미 무르익어 있었던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토록 약속이 시련과 정성을 거쳐서 신뢰와 사랑의 농도를 짙게 하였고, 성화의 과정을 이루게 하였는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 관계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는 그리스도에게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티끌로 만든 인간에게 하나님과 동격을 삼아 말씀하시고 명령하시고 크고 작은 많은 약속을 긴 세월 동안 시련을 통하여 키우셨습니다. 선악과의 약속이 율법과 양심과 그리고 마침내는 소수의 사람들을 대표자로 택하여 특정한 약속 관계를 확립하시고, 한 민족을 택하여 특별하고 유일한 큰 약속(예수 그리스도)을 예비하는 약속인 구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맺은 최초 최대의 약속은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나 대신 죽게 하고 그를 믿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구약을 읽는 사람은, 하나님이 이 새 약속(신약〕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다는 약속으로 꽉 차 있고 하나님의 전 열정과 성실을 다해서 이 엄청나고 소중한 약속에 인류의 주의와 관심을 환기시키려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쇼킹 한 사랑의 약속은 예수의 생애, 특히 그의 죽음과 부활로 확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곧 어느 피보다 짙고 어느 생애보다 더 값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피로 나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구애인 것 입니 다. 그 구애는 내가 동의함으로 성약(成約) 되는 것입니다. 대답 없는 사랑의 부름처럼 비극적이고 처량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비극이고 고독인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를 절규한 것은 바로 나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의 수용(受容)을 구한 것 입니다.


이 약속은 천지가 변해도 변할 수 없습니다.
  모든 불변성의 근원인 불변하신 사랑이신 그 분의 피와, 살과, 목숨으로, 죽음으로 다시 사심으로 맺은 이 약속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에게 드린 맹세는 변덕스럽고 약하고 믿을 수가 없으나, 그 분은 이 부정한 입술, 간사한 마음일지언정 한 번 드린 내 사랑의 약속을 속량하시고 성화시키고 키우고 닦고 또한 죽었을 때는 부활시켜서 그 약속을 신부의 화촉처럼 지키실 것입니다.

성경 속의 천 가지, 만 가지 약속은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내일이 창백하지 않습니다. 내일의 한국이 세계의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약속도 우리의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십니다.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평안을 우리에게 끼치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주께로 오라 하십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십시오. 힘없는 자는 힘을 구하십시오. 지혜가 모자라면 구하십시오. 구하면 주십니다. 문을 두드리면 열어 주십니다. 힘주시는 자 안에서 불가능은 없습니다.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을 믿읍시다.

나와 맺은 주님의 약속, 그 보다 더 확실한 것은 이 우주에는 없습니다. 자연 법칙의 약속, 즉 태양이 내일 동에서 뜬다는 사실을 의심하십시오. 본능에의 약속, 즉 내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십시오.

그러나 주님의 약속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이 없습니다. CCC 회관도 보증 수표보다 더 확실한 약속으로(히 11:1)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맙시다.

한국의 복음화를 믿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조국 통일도 확약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약속 어음을 현금화하는 유일의 비결은 믿음과 기도와 순종입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약속, 그것도 피로 맺은 새 약속입니다.

자연 법칙에 대한 신뢰는 누구나 철석같은데, 예수 그리스도의 새 약속 곧 신약 성경 속의 약속은, 그 자연 법칙 이후의 새 약속인 더 확실한 것으로 자연 법칙의 불확실성 이 증명 된 이후, 모든 인과율과 도덕률 이후에는 더욱 확실한 새 약속입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70년 10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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