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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설교]위기를 대처하는 지혜

역대하 7:12-16, 고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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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기사입력 2021-01-24

 

  역대7:12-16, 고후 12:10 

      

제가 오늘 샘물 호스피스선교회에 가서 설교를 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오늘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는 연락을 지난 119일 받았습니다. 그래서 수원 동문동문교회의 오에녹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에녹 목사님이 인천 사랑하는 우리교회의 현봉삼 목사님에게 연락을 해서 오늘 여기 인천 사랑하는 우리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120일 아침 현봉삼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고 오늘 무슨 제목의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오늘 하려고 했던 제목의 설교를 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샘물 호스피스선교회에 가서 하려던 위기를 대처하는 지혜라는 제목의 설교를 좀 줄여서 그리고 조금 수정보완해서 하려고 합니다. 현봉삼 목사님이 제가 설립해서 평생 교수 사역을 하던 합동신학교에서 공부한 저의 제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아주 반가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위기를 대처하는 지혜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난에 대한 설교를 여러 번 했습니다. 지금 중국과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은 우연히 일어나는 재난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에서 일어나는 재난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에서 일어나는 재난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지도자이신 림인식 목사님께서 작년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들이 주일성수와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새벽기도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제대로 펴지 못하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난을 주셨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그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을 했습니다. 미국의 빌리 그래함 박사님의 딸 안 그래함 롯츠 목사님도 작년에 미국 교회가 복음주의 신앙을 무시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재난을 당하고 있는 미국이 회개에 집중하여야 한다는 귀중하 말씀을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진정한 해결 방법은, 우리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우리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감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들을 돌아보시기를 간청해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게 하시기 위해서 사사 시대에는 7번 재난을 당하게 하셨고 나중에는 70년 동안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노예 생활을 하는 극심한 재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가지 재난들을 통해서 회개하면서 올바른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재난의 유익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8:2).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13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119:67).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사실 조선교회가 일본 통치하에서 36년 동안 재난을 당하므로 조금씩 조금씩 교회다운 귀중한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한국교회가 19506.25 전쟁의 재난을 당하므로 조금씩 조금씩 교회다운 귀중한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회개를 아주 많이 하게 되었고, “주일성수의 예배새벽기도에 전력하게 되었고, 이웃 사랑과 섬김은 물론 원수 사랑과 섬김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고, 그리고 수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을 통해서도 한국교회가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귀중하게 여기던 철저한 회개와 온전한 주일성수의 예배와 간절한 새벽기도와 순수한 이웃 사랑과 섬김그리고 원수 사랑과 섬김의 귀중한 신앙을 회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선하시고 귀중하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을 당하고 있는 우리들이 선하시고 귀중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회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감사와 기쁨의 은혜를 가득하게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먼저 대하 7장 본문 말씀의 가르침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하 7장 말씀을 읽습니다.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2-16).

 

대하 7장 말씀이 가르치는 첫째 교훈은 비가 내리지 않는 재난이나 메뚜기가 토산을 먹는 재난이나 염병이 백성 가운데 유행하는 재난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재난들이 아니고 성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운데서 일어나는 재난들이라는 교훈입니다. 대하 7장 말씀이 가르치는 둘째 교훈은 하나님께서 재난을 주시는 목적은 자기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게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교훈입니다. 대하 7장 말씀이 가르치는 셋째 교훈은 하나님께서 재난을 주시는 목적은 자기 백성이 스스로 겸비해져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교훈입니다. 대하 7장 말씀이 가르치는 넷째 교훈은 하나님의 집에서 드리는 기도와 예배를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받으시고 죄를 사하시고 땅을 고치신다는 교훈입니다. 한 마디 추가하면 우리들이 악한 길에서 떠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 예배와 함께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들이 함께 나누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은 첫째로 우리들로부터 처절한 회개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다윗의 처절한 회개의 제사를 받으시고 다윗을 너무 많이 축복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전파하신 말씀이 회개하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14,15).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이고 기독교의 복음은 회개의 복음입니다. “회개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고 회개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회개의 삶으로 시작하고 회개의 삶으로 지속되고 회개의 삶으로 마무리 됩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제일 먼저 전한 설교도 회개하라라는 설교였습니다(2:37,38).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선교지에서 전하고 가르친 것도 회개믿음의 도리였습니다(20:18,20,21). “회개없이는 천국도 없고 죄 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고 성령도 없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의 처절한 회개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18,19,24).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scum of the earth) 같이 되었도다”(고전 4:13).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둘째로 처절한 회개와 함께 주일성수예배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 구원의 진리를 설명한 다음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제일 먼저 권면한 말씀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예배의 제사그것이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이 힘써야 할 첫째 일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첫째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성부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모세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복을 받으며 잘 사는데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즉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8:1). 여기 섬긴다는 말씀은 예배의 제사를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9: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10:3). 이와 같은 말씀을 출애굽기 4장부터 10장까지 10번이나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는데 있다기 보다는 복 받고 잘 사는데 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제사의 중심은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성수의 예배의 제사였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성수예배의 제사였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12:8)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성자 예수님께서 구약의 안식일을 완성하신 분 이시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고 그리고 첫 주일 이른 새벽에 사랑하는 제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함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즉 첫 주일 저녁에 부활의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 열 명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과 함께 성령을 부여하셨습니다. 한 주간이 지난 둘째 주일 저녁에는 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0: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도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날도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날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 함께 모인 성도들과 종일 밤중까지 성찬을 하고 말씀을 전하며 예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20:7). 신약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천국의 안식일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인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1,11). 구원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일은 처절한 회개와 함께 주일성수를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 일입니다. “주일성수와 예배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일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셋째로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착한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것이 구약과 신약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사랑하시고 도우시는 착하신 분이신데 우리들도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사랑하고 도우면서 착하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10:17-19). 성부 하나님께서는 학대 받는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지 않는 제사와 제물과 기도를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1:11,15,17).

 

성자 예수님께서도 꼭 같은 아니 좀 지나친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이웃은 물론 원수들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모든 자들을 돌아보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착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영생에 들어가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38-48).

 

성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던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교제에 전력하면서도 가장 힘쓴 일은 이웃과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예루살렘교회 신자들이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 다음에 욥바에 살던 여 신자인 도르가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착한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 다음에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가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는 착한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 다음 바나바와 안디옥교회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사도 바울이야말로 극심한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불우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손길을 펴는 착한 착한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재난은 너무 힘들고 너무 어려운 경험입니다. 그러나 선하시고 귀중하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난을 당하는 우리들이 힘써서 하여야 할 일은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여지는 일과 스스로 겸비해져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과 그래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일과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에 전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재난의 위기를 대처하고 극복하는 지혜와 비결은 회개겸손기도예배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삶을 살도록 새롭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 더 합니다. 재난을 당하는 삶이 너무너무 힘든 삶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라서 그리고 신앙의 선배님들을 따라서 재난을 몸에 지니고 사는 삶이 결국 보석이 되고 축복이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우리는 얻게 됩니다. 사실 극심한 재난과 환난이 없었다면 다윗도 욥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니엘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사야도 세례 요한도 스데반 집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극심한 재난과 환난이 이 없었다면 사도 바울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도 길선주 목사님도 이기풍 목사님도 최권능 목사님도 주기철 목사님도 이성봉 목사님도 한경직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장기려 박사님도 없었을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극심한 재난과 환난을 당하는 위기에 처할 때 위기를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비결은 최고의 극심한 재난과 환난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일과 성자 예수님을 따라서 극심한 재난과 환난을 당하면서 살다가 죽으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심한 재난과 환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너무너무 귀중한 삶을 사신 분들이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젊었을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온갖 질병을 몸에 지니고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살았는데 그의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 두 다리를 수술하는 고통도 겪었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당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6개월 동안은 가래가 너무 끓어서 목에 구멍을 뚫고 지내는 극심한 괴로움도 겪었습니다. 그는 저의 손을 붙잡고 늙는 것이 재미 없어!” 라고 그의 노약의 서글픈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온유와 겸손과 착함과 따뜻함을 몸에 지니고 불우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너무너무 귀중한 삶을 사시다가 하늘 집으로 올라가셨는데 한국교회는 물론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 빌리 그래함 박사는 한경직 목사님과 같이 있으면 예수님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는 귀중한 고백을 했습니다.

 

찬송가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패니 크로스비는 낳은 지 몇 주 만에 맹인이 되어서 95년 평생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 불편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패니 크로스비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찬송가를 쓴 찬송가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의 가슴과 그가 쓴 찬송가에는 주님 사랑과 천국 사모로 가득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다시 태어나도 맹인으로 태어나기를 바란다는 놀라운 고백까지 했습니다. 그가 천국에 이르러 그의 눈으로 제일 먼저 보기를 원하는 것이 주님의 얼굴이기 때문이라는 설명까지 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9천여 개의 찬송시를 썼는데 우리 찬송가에도 23개나 포함되어있습니다. 저는 그 찬송들을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그녀가 92회 생일을 맞았을 때 그의 생일을 축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내게 데려오세요. 그 사람과 악수하고 싶어요.” 맹인 패니 크로스비는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너무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조니 에릭슨은 장래가 촉망되던 예쁜 소녀였는데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혀서 전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도 자신도 모두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몸에 지닌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결국에는 보석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조니 에릭슨은 몸도 손도 발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의 몸을 가지고서도 천사와 같은 아름다운 얼굴과 목소리로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리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으로부터 울어 나오는 노래와 간증과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린 그림 등은 너무너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되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박사님 하고 간증도 했습니다.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격려와 도움의 손길을 펴기도 했습니다. 저는 조니 에릭슨의 간증을 직접 두 번 들으면서 마치 천사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너무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닉크 부이치치는 두 팔도 두 다리도 없지만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니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수년 전에 닉크 부이치치를 대구에서 만났는데 그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고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닉크 부이치치는 세계 곳곳을 찾아 다니면서 절망 중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소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소망과 행복의 천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신 기쁨과 위로를 전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역경 스토리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보배로운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위기를 대처하는 지혜에 대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재난과 환난은 너무 힘들고 너무 어려운 경험입니다. 그러나 선하시고 귀중하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난과 환느난을 당하는 우리들이 힘써서 하여야 할 일은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여지는 일과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일과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에 전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 더 합니다. 성 프랜시스는 가난은 나의 애처이고 비애는 나의 자매이고 고통과 죽음도 나의 자매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가난과 고통과 죽음의 길로 달려갔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은 가난은 나의 애처이고 고난은 나의 스승이고 죽음은 나의 소원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가난과 고난과 순교의 길로 달려가셨습니다. 부족한 우리들도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면서 재난과 환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회개와 예배와 사랑과 섬김의 길로 달려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이 바라고 소원합니다. 현봉삼 목사님과 사랑하는 우리교회 성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와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364, 338)을 다 같이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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