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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외롭고 슬플 때가 있어요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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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기사입력 2021-02-07

 

▲ 전남 화순 백암교회 고 손병회 안수집사 조문을 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     © 소강석

 

지지난 주 목요일에 백암교회 손병회 안수집사님의 큰 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하신데 마지막으로 소목사님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우선 전화를 바꿔달라고 해서 위로를 해 드렸습니다. “집사님, 저는 평생에 집사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꼭 내려가서 뵙겠습니다. 제가 내려갈 때까지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러자 90세 노인이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도저히 틈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계신 병원이 전남 순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총회와 한교총의 공적 사역을 위한 빡빡한 스케줄로 도저히 틈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가려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밤에는 면회도 안되었습니다.

큰 따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하루 종일 병실 문만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행여나 소목사가 병실 문을 열고 찾아올까하고 말입니다. 아들과 딸들이 와도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는데 제가 오기를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전화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기도를 해 드린 후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손집사님, 제가 내일 저녁 늦게 출발을 하여 이른 아침에 뵙겠습니다. 제발 그때까지만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집사님, 저를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어요.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꼭 붙잡으면 마음 속 깊은 평화를 느끼실 거예요.”

▲ 화순 백암교회 고 소병화 안수집사를 조문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     © 소강석


그런데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 따님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목사님, 아버님께서 소천을 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소목사님의 이름을 부르시고 또 주님, 주님을 부르시다가가셨습니다. 장례식장은 화순으로 옮기겠습니다.” 저는 너무 어이가 없고 슬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손집사님은 제가 20대 초반 시절, 백암교회를 개척할 때 정말로 충성스러운 교인이셨습니다. 부락주민들이 150, 200명이 와서 교회를 못 짓도록 저의 멱살을 잡고 얼굴에 침을 뱉을 때 달려와서 육두문자를 쓰며 그들과 싸우셨습니다. “, 0 같은 놈들아, 우리 소전도사님이 힘이 없어서 참고 있는 줄 아느냐. 너희 같은 놈들 천국가고 복 받으라고 참고 있는 줄 알아라 이놈들아.” 그분은 그 동네의 유지이셨거든요. 그런 분이 일부러 부락 사람들 들으라고 또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소전도사님, 절대로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교회를 지을 때까지 전도사님을 끝까지 지켜드릴 것입니다.”

▲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가 시무했던 화순 백암교회 손병회 안수집사와 함께 교회 입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손집사는 얼마전 소천했다.     © 소강석




열 일을 제치고 화순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영정사진 앞에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손집사님, 서로가 약속을 못 지켰네요. 이런 슬픔과 아픔도 있네요. 이제 외로움도 슬픔도 없는 저 천국에서 영원히 평안을 누리세요.” 정호승 시인의 말마따나 우리의 육체는 슬프고 외로울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로우니까 사람이지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목사가 화순까지 내려간다니 감동에 감동을 먹고 2시간 전부터 백암교회 목사님, 장로님, 몇몇 분들이 와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이사 간 저희 교회 반가영 집사님도 오셨고요. 가슴속 깊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은 가슴에서 내장으로 흘렀습니다. 올라오면서 스스로 이런 위무를 하였습니다. 이런 사랑으로 인한 외로움과 슬픔이 시가 있게 하고 음악을 만들며 예술이 있게 하는 거라고. 제가 설교나 여러 에세이에 손병회 집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제 시의 중심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제부터는 저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떠나간 손집사님이 제 시의 모티브가 되고 바탕이 될 때가 많을 겁니다. 아니, 그 분에 대한 추억과 슬픔의 사연이 제 시 속으로 언제든지 걸어 들어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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