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성경통독 가이드]복음서 II: 마가복음 1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241

가 -가 +

김정권
기사입력 2021-02-16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마 가 복 음

 

          마가복음의 서두(序頭) 자료

 

   마가복음의 개요

 

  마가복음의 구성은 16, 678절로 구성되었고 한 장은 평균 42.38절이다.

  마가복음의 제목은 "카타마르콘"(ΚατΜρϰον 마가에 의한”)으로 되어 있었으나 후에 복음 을 붙였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마가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한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 제1차 선교여행에 동참했었다(13:13).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이며 통역사이었는데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잘 알고 있었던 초대 교회 중요인물이다.

  마가복음의 기록연대는 기록 연대가 기술하는 책에 따라 다르나 CLASB(2004, p.1257)에 따르면 55A.D.-60A.D.로 보고 있다. 강병 도()(2008, 신약 p.53)에서는 64A.D.-69A.D.사이에 있었던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 시로 보고 있다. 그러나 4 복음서 중 제일 먼저 기록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마가복음의 기록목적은 예수님의 인격, 그이 사역 그리고 가르침을 알리기 위함이다.

  마가복음의 특징은 1. 다른 복음서에서 마가의 기록을 31절이나 인용하고 있다.

2.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를 가르침보다 더 많이 다루고 있다.

 

 

   마가복음의 주요내용


1.
사역의 준비(1:1-13)

2. 예수님의 선교사역(1:14-13:37)

  1) 갈릴리 전도(1:14-6:29)

  2) 갈릴리를 떠나시다(6:30-9:50)

  3) 베뢰아 전도(10:1-52)

  4) 예루살렘에서 전도(11:1-13:37)

3.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14:1-16:20)

 

 

                      마가복음 1-4장 메모

 

 

<1 > 예수님 갈릴리에서 복음 전파

 

[세례 요한의 복음 전파] (1:1-8; 3:1-12; 3:1-9; 1:19-23)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다(23:20; 3:1; 40:3). 그가 광야에서 외처 천국이 가까웠다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겠으나 예수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리라.” 요한은 전한다. 메시아 오시기 전에 예레미야를 보내 주시겠다고 한 예언을 예수님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지적하신다(4:5; 11:13, 14). 요한은 메시아 오심에 그 앞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이다.

 

[요한에게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 (1:9-11; 3:13-11; 4:1-13)

 

  예수님은 갈릴리로부터 사해 북쪽 요단강 하류로 나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이때 하늘로부터 징조가 있어서 하늘이 갈라지고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시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공생애에 들어가시면서 세례를 받으신다. 세례는 죄 씻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나 앞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지고 가실 분으로 대속(代贖) ()로서 죄 씻음을 상징한다.

 

  *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곳은 여리고 동쪽, 사해 북쪽의 요단강 동안(東岸)으로 보인다.

 

[마귀에게 시험받으시는 예수님] (1:12-13; 4:1-11; 4:1-13)

 

  예수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다. 마가는 예수님 광야에서 40일 금식과 마귀에게 시험받으시는 것을 아주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는 좀 더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내용은 마태복음(4:1-12)의 메모를 참조하라.

 

  * 예수님이 광야에서 금식하신 곳은 여리고 북쪽의 유대 지방의 동쪽 광야로 보인다. 가나안 지형은 지중해를 서쪽으로 해안평야, 그다음에 쉐펠라 지역, 그 동쪽이 유다 산지, 그다음 요단강까지가 광야로 되어있다. 가나안은 종으로 보면 이 4개 지형으로 구성된다.

 

   * 마가는 예수님의 선교사역을 막1:14-13:37에 기록한다.

 

[갈릴리 지방으로 가시는 예수님] (1:14; 4:12; 4:1-3)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게 구금(14:1-12 참조)되시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시게 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갈릴리전도 이전에 약 1년간 유대 지방에서 전도하셨음을 알 수 있다(1:35-3:36 참조). 이 때 유대인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사마리아 지방을 경유하셨으며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언하셨고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

 

[갈릴리에서 복음 전파] (1:15; 4:13-17; 4:14, 15; 4:43-45)

 

  갈릴리와 나사렛은 이스라엘 북부 지방으로 헤롯 안티파스 왕의 치세 지역이다. 예수는 주로 이 북부지역에서 많이 활동하셨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구약시대 아시리아(앗수르)의 침범으로 고통당하던 스불론, 납달리 땅 그리고 요단 동편의 길르앗 지방 백성을 구원하였던 일을 암시하지만, 또한 메시아의 도래로 어둠의 백성이 구원을 얻을 것을 이른다(9:1, 2). 예수님의 복음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처럼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이는 구원의 선포이다.

 

[어부들을 처음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 (1:16-20; 4:18-22; 5:1-11)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첫 번째 제자로 부르셨다. 베드로 형제는 벳새다 사람들이고 어부들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지방 출신들이다. 가룟 유다만 유다 지방 출신이고 나머지는 갈릴리 출신이다. 주님이 제자로 삼으신 사람은 1. 훈련된 사람이 아니다. 2. 준비된 사람도 아니다. 3. 사회적으로나 어떤 면에서도 멋쟁이들이 아니었다. 주님은 오로지 이들이 주님의 뜻대로 쓰임을 받기를 원하신 것이다.

 

[권위 있는 예수님의 강화] (1:21-28; 4:31-37)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강화는 권위가 있었다. 어떤 때 강화에 권위가 있는가? 살아서 역사하는 힘이 그 속에 있을 때가 아니겠는가? 생명의 역사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그 속에 있다. 돌연히 나타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었다. 이에 청중은 더 놀라고 소문은 갈릴리 온 지방에 퍼졌다.

 

  * 갈릴리 바다 북쪽 해안에 두 성읍 즉 북쪽 요단 강 동쪽에 벳새다, 서쪽에 가버나움이 있다. 이 두 성읍은 예수님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이 지역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많이 부름을 받았다.

 

[베드로 장모의 열병 치유] (1:29-34; 8:14-17; 4:38-41)

 

  베드로 장모의 열병과 귀신들린 자와 여러 가지 병든 사람들의 병을 다 고치시었다. 예수께서 모든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도 고치셨다. 이는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려 하심이다(53:4). 그러나 병 고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런 이적을 통해서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 이면의 세계에 대한 관심보다는 병 고치시는 권능에 의존하여 세속적 권력에까지 미치기를 바라는 잘못된 메시아 관을 갖고 있었다.

 

[예수님 갈릴리에서 전도] (1:35-39; 4:42-44)

 

  예수님이 갈릴리 여러 지방으로 제자들과 같이 다니시며 전도 하시며 병자를 고치셨다. 메시아는 영적 세계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에 구속역사를 이루시는 것이 목적이며,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일은 우매한 백성을 믿음으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은 영의 세계보다 눈에 보이는 권능 행함에 더 관심을 두고 세속적 권력을 통하여 이스라엘 국가를 회복하기를 기대하였다.

 

[나병 환자의 치유] (1:40-45; 8:1-4; 5:12-16)

 

  나병(한센스 환자)은 가장 중한 병이고 성읍에서 일반인과 격리되어 성 밖에서 살아야 하는 병이다.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환자이다. 이병을 고칠 수 있다면 다른 병은 이보다는 가벼운 병인 고로 예수님의 능력이 입증된다. 나병은 제사장의 정결하다는 판결을 받아야 그 치유함을 인정받게 된다. 예수님은 그에게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는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심령의 변화 즉 구원에 있는 것이다.

 

 

<2 > 예수님 갈릴리 지방에서 가르치심, 이적과 기사

 

[중풍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2:1-12; 9:1-8; 5:17-26)

 

  이 단락의 중풍 병자 고치신 일을 마태 보다 마가는 더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지붕을 뚫고 병자를 내려 보냈다는 상황을 기술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의 행위를 소상히 기록한다. 예수께 나아온 중풍 병자에게 예수님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었다 이에 대하여 서기관 한 사람이 신성모독(神聖冒瀆)이라 생각하였다. 죄를 사할 수 있는 이는 오로지 하나님뿐인데 예수님의 이 명함은 신성모독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 사할 권한이 있음을 보이신 것이다. 중풍 병자가 일어나 걸어가는 것을 본 그들은 그 신기성(新奇性)과 초능력에 대해 놀라는 반면 시기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세리 마태] (2:13-17; 9:9-13; 5:27-32)

 

  세리인 마태(마가는 레위로 기록함)를 부르시다. 당시 세리는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힐난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인과 상종하시는 것을 당연히 여기셨다. 예수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이다. 마태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참 의미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 그 죄인을 제자로 삼으신 것이다. 예수의 제자는 사회 계층이나, 경제적 상황이나, 지식의 수준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주님이 쓰시겠다고 부른 사람은 그의 제자가 된다. 주의 제자 즉 우리를 포함해서 모두는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멍에를 같이 메고 배우는 사람들이다.

 

[금식 논쟁] (2:18-22; 9:14-17; 5:33-39)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묻는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신랑이 와 있는 동안에 금식할 사람은 없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동안 잔칫집이니 금식할 필요가 없다는 요지이다. 이스라엘이 금식하는 경우는 속죄일(유대력으로 710), 부림 절 전날(유대력으로 1214), 586B.C.바빌로니아에 예루살렘이 함락당하는 날(유대력 49, 57일은 성전이 불탄 날) 중 어느 날의 금식을 가르치는 것 같다. 형식화된 금식의 의미는 무엇일까? 습관적으로 지키는 금식이야말로 애통해 하는 심정이기보다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역리로 예수님은 잔칫집에서 금식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자신의 오심은 신랑이 신부 집에 온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는다는 말씀은 구약의 율법 시대에서 은혜의 신약시대 즉 메시아의 오심으로 새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시대정산이 요구된다.

 

[안식일 논쟁] (2:23-28;12:1-8; 6:1-5)

 

  안식일에 예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랐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이시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제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지키는 형식주의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의 참뜻을 몰랐다. 밀밭 사이를 지나며 밀 이삭을 손바닥에 비벼서 제자들이 먹었던 것 같다. 그 행위가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제정하신 안식일의 개념은 사람의 건강과 안전과 행복을 위하여 제정하셨고 이를 여호와의 날이라 하셨다. 이를 지켜 거룩하게 하라 이르셨다. 그러나 후세대에 이것이 형식화되어서 무조건 일을 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고착되어 내려오게 된 것이다. 근본정신을 망각한 껍데기만 남은 안식일 개념이다. 예수님은 다윗이 사울의 핍박을 피하여 놉에 갔을 때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서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진설한 떡을 먹었음(삼상21:6)을 상기시킨다. 율법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 안식일 길(sabbath day's journey)1.1km 정도 이동 할 수 있다(1:12).

  

<3 > 예수님의 열두 제자 부르심과 전도

 

[안식일에 행한 손 마른 사람의 치유] (3:1-6; 12:9-14; 6:6-11)

 

  바리새와 서기관 등은 예수를 올무로 잡으려고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 이때 이들은 두 가지 대답 즉 옳다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로, 아니라 하면 사랑을 외치지만 실제로 사랑이 없는 자로 매도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예수님은 그들에게 반문하신다.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물론 그 당시 양치는 사람들은 모두 구해 냈다. 그리고 손 마른 사람을 치료해 주셨다. 그러나 그들의 음모는 계속되었다. 악인은 끝없이 음모를 꾸며 낸다. 결코, 중단하지 않는다.

 

[1차 갈릴리 사역의 종결: 많은 병자를 고치심] (3:7-12)

 

  예수를 모해(謀害)하는 자들을 피하시어 잠시 갈릴리 바다(호수) 어느 지점으로 피하셨다. 갈릴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서 많은 무리가 나아와 고침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당부하시었다. 많은 백성의 운집과 종교지도자들의 시기는 비례하였다.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권능 행함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백성들은 영적 양식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더 생각했으니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는 천국 확산과는 거리가 있었다.

 

[12제자의 부르심과 그들에게 주신 권능] (3:13-19; 10:1-4; 6:12-16)

 

  귀신을 쫓아내고, 병과 약한 것을 고치기 위하여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이미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먼저 제자로 부르셨다(4:18-22; 5:1-11). 또 세리 마태도 제자로 부르셨다(9:9-13; 2:13-17; 5:27-32). 이 단락에서는 지금까지 제자로 삼은 사람들을 총망라하여 명단을 공개하신다. 열두 제자의 출신 지역은 가롯 유다만 유다 지방 사람이고 나머지 11명은 갈릴리 출신들이다. 예수님은 훌륭하고, 훈련되어 있고, 준비된 사람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이 쓰시겠다고 부른 사람은 오로지 쓰임을 받으면 된다.

 

  * 열두 사도는 1. 베드로(Peter)2. 그의 형제 안드레(Andrew), 3.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James)4. 그의 형제 요한(John), 5. 빌립(Philip), 6. 바돌로매(Bartholomew), 7. 도마(Thomas) 8. 세리 마태(Matthew), 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James), 10. 다대오(Thaddaeus), 11. 가나안인 시몬(Simon), 12. 가롯 유다(Judas) 이다(10:2-4).

 

[예수와 바알세불] (3:20-30;12:22-30; 6:43-45; 11:14-23; 12:10)

 

  예수님은 모든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다. 이에 대한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일반 서민은 그런대로 세례도 받고 따르기도 하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층인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에게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이적과 기사가 현실로 나타났으니 부정할 수 없게 되었으나 그것이 마귀의 대장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행한 것이라는 신성모독을 말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1. 마귀가 마귀를 내어 쫓았다면 내분인데 말이 되는가?

2. 예수님은 마귀 대장도 결박할 힘이 있으심을 보였고,

3. 예수님을 따르는 자와 반대하는 자는 이분법으로 나누어짐을 설명하신다
 

[주님의 형제자매는 누구인가?] (3:31-35; 12:46-50; 8:19-21)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자매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자매이다.

 

 

<4 > 비유로 가르치시는 예수님: 네 가지 씨, 씨의 자람, 가라지 등

 

[천국 비유 1; 땅에 떨어진 네 가지 씨 비유] (4:1-9; 13:1-9; 8:4-8)

 

  마가복음 41, 2절은 4장의 도입 부분이다. 그는 해변 배 위에서 가르치셨으니까 군중과 격리된 상황에서 가르치셨음을 알 수 있다. 씨 뿌리는 비유는 천국 입성의 첫 단계이다. 4:3, 4는 씨 뿌리는 자 즉 예수님 또는 앞으로 제자들이 씨 뿌리는 자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주요 농업인 보리와 밀을 상상한 비유일 것이다. 손으로 씨를 뿌리는 경우 길가나, 돌 짝 밭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부는 대체로 옥토에 씨를 뿌렸을 것이다. 씨는 같은 씨인데 떨어진 곳에 따라서 죽든지 결실의 양이 달라진다. 이는 복음을 받는 심령의 상태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 (4:10-20; 13:10-23; 8:9-15)

 

  제자들은 예수님께 물었다. 이 씨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상히 가르치신다. 씨는 천국 말씀”(13:13;), “하나님 나라의 비밀”(4:11; 4:11) 이라 하셨다. 이 것을 비유로 가르치시는 이유는 제자들에게는 하늘의 비밀을 주셨으나 타인들에게는 볼 눈과 들을 귀를 주시지 않아서 깨닫지 못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설명하신다. 그러나 제자들 구원을 얻은 복 받은 자들에게는 들을 귀와 볼 눈을 주시어 하늘의 비밀을 알게 하신다는 메시지이시다.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은 감추어졌던 것이다. 옛날 선지자와 의인들은 듣고자 하여도 들을 길이 없었던 것들이다. 복 받은 사람은 눈이 열이고 귀가 뚫리고 보고 듣는 대로 깨달음이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네 가지 씨를 설명하신다. 첫째, 길가에 뿌려진 씨는 복음을 받았으나 악한 자(마귀)가 와서 빼앗아가는 경우이다(13:19; 4:15; 8:12). 둘째,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지만 그 뿌리가 약하여서 환란이나 박해가 오면 곧 넘어지는 사람이다(13:20, 21; 4:16, 17; 8:13). 셋째, 가시떨기에 부려진 씨앗은 말씀을 들었으나 세상의 근심과 걱정과 재물의 유혹에 빠져서 말씀을 잊어버린 사람들이다(13:22; 4:18, 19; 8:14). 넷째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천국의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받아 드려 순종한 사람이다. 이들은 삼십, 육십, 백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들이다(13:23; 4:20; 8:15).

  

[등경(燈檠) 위에 올려놓는 등불] (4:21-25; 8:16-18)

 

   빛은 어둠을 밝히고 빛 가운데는 숨겨 둘 것이 없이 다 밝혀진다. 우리의 죄악도 빛의 세계에서는 밝히 드러날 것이다. 성도는 빛의 역할이 있다. 이 어둠의 세상에 빛을 비추어서 자유를 얻게 해야 한다. 성도가 빛을 잃으면 그에게 생명이 없음을 의미한다.

  

[자라나는 씨 비유] (4:26-29; 13:31, 32; 13:18, 19)

 

  농부가 씨를 뿌리고 그것이 밤낮으로 자라나는데 그 과정을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낫을 대어서 거두어들여야 한다. 영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고 그가 성장하면 그 사람 역시 사역자가 될 것이다.

 

[천국 비유; 겨자씨 비유] (4:30-32; 13:31-33; 13:18, 19)

 

  겨자씨는 작은 것이지만 커져서 큰 나무를 이루고 새와 곤충과 벌레들이 깃들고 먹고 쉬고 물을 공급받는다. 천국의 확산은 이렇게 작게 시작되어도 광대한 것으로 확산하여 간다.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 2] (4:33, 34; 13:33, 34)

 

  비유로 설명하신 이유는 택함이 없는 자에게는 깨닫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 이유는 1. 구약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함이다(78:2). 2. 창세로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을 나타내기 위함이다(1:4).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비유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나 이 천국을 설명하실 때는 모두 비유로 하셨다.

 

[예수님의 초자연적 권능] (4:35-41; 8:23-27;8:22-25)

 

가버나움에서 배를 타시고 갈릴리 바다 동안(東岸)으로 가시는 선상에서의 일이다. 거친 바람과 성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었다. 제자들이 근심하여 예수님을 깨우신 일에 대해 믿음이 적은 자라 하시었다. 제자들의 두려움은 불신앙에서 온 것이다. 믿지 못하면 두렵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뉴스파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