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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3.1운동, 한국교회가 이루자(출5:1-4)

소강석 목사 (한교총 대표회장/예장합동 총회장), 한교총 주최 3.1운동 102주년 기념예배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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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기사입력 2021-03-01

▲ 한교총 대표회장 소강석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 뉴스파워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국민의 자주적 의식과 생존권을 되찾기 위한 애절한 계몽운동이었고 위대한 민주주의 운동이었습니다.

출애굽기 5장을 보면 애굽의 압제하에 종노릇하며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운동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모세라는 지도자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존권을 되찾아주고 자유와 인권을 누리는 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마침내 그들 역시 자유를 찾고 자주독립을 하게 된 것입니다.

3.1운동은 상해의 신한청년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들에게 전이가 되고 동기부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3.1운동의 이면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미국 남장로교 선교본부건, 북장로교의 선교본부건 선교사들에게 정교분리원칙을 오더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정치적인 이슈에는 거리를 두면서 순수한 선교활동만 하려 하였습니다.

특별히 행정을 담당하는 선교사들은 조선총독부와 관계를 잘하고 소통을 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정교분리원칙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 그러나 현장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이 볼 때는 일제의 만행이 너무나 반민주적이고 반휴머니즘적이며 반근대적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자신의 신앙양심과 소신을 갖고 미션스쿨과 교회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 박애, 인권, 민주주의를 가르쳤습니다.

 

▲ 한교총 주최 3.1운동 102주년 기념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     © 뉴스파워



그런 의미에서 당시 기독교 미션스쿨과 한국교회는 민주주의와 진정한 인권운동의 산실이요
, 진원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3.1운동의 정신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자주독립과 민주정신을 회복하여 인류공영,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교회와 학교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자유가 무엇이고 인권이 무엇인가를 가르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것입니다. 왜냐면 그 당시는 예수 믿는 것은 곧 천당에 가는 길이면서도, 애국애민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들이 그렇게 가르쳤고 초기 기독교 신앙 지도자들이 다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특별히 클라크 선교사와 맥퀸 선교사는 청년들이 3.1운동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은근하게 동조하고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KBS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제가 미국으로 가서 클라크 선교사와 맥퀸 선교사의 후손들을 만나 직접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선교사님들이 3.1운동 뿐만 아니라 민족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가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 마펫 선교사와 모리 선교사는 아예 3.1운동 집회에 참여를 하였다가 감옥도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스코필드 선교사는 파고다공원에서 만세를 외친 사진을 비롯해서 제암리 사건 등을 직접 찍어서 외신기자회견까지 해서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만약에 스코필드 선교사가 아니었으면 3.1운동은 역사의 뒤안길에 감추어진 사건으로 끝날 뻔하였습니다. 그 뿐입니까?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미국에 있는 가족, 친지들에게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군산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군산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은 전킨 선교사가 세운 영명학교였습니다. 그때 영명학교의 교장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국제진료소 소장이신 인요한 박사님의 할아버지인 린튼 선교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명학교 학생들과 멜본딘여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가 장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것입니다.

그때 린튼 선교사는 학생들의 3.1운동을 막지 않고 오히려 뒤에서 태극기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3.1절 만세 시국선언문까지 작성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애틀랜타로 건너가서 3.1운동의 진상을 알리고 그의 이야기가 애틀랜타 국제신문에 보도 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미국의 백악관에까지 전달이 되었고 장롱의 고서로 묻힐 뻔 했던 3.1운동의 기록이 전 세계에 다 알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린튼 선교사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신사참배 반대를 한 것입니다. 그 일로 조선총독부의 요주인물이 되어 결국 미국으로 강제추방을 당한 것입니다. 제가 필라델피아의 장로교 선교 역사박물관에 가서 그런 기록과 편지들이 수두룩 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교사들이 영적 분위기를 고조시켜 주는데, 문제는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이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때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하고 정무적 감각이 있었던 남강 이승훈 장로님이 교회가 앞장서서 3.1운동을 해야 한다고 설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길선주 목사님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목사와 장로님들은 3.1운동을 앞장서는 것이 정치적 행보로 비춰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서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때 이승훈 장로님은 1919210일부터 28일까지 19일 동안 서울과 평양을 24차례나 다니며 회합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한국교회에 가장 존경을 받고 영향력이 있었던 길선주 목사님께 가서 간곡하게 설득했습니다. “길 목사님, 나라를 찾지 못한 교회와 천당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라를 찾고 백성의 주권을 찾으면서 복음도 전하고 천당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길선주 목사님을 설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연하의 목사님들에게는 막말을 하면서까지 설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리교의 신석구 목사님 같은 경우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포기하면서까지 타종교와 함께 독립운동을 해야 하는지 갈등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식하며 기도하는 중에 이런 감동이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종아, 4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강토를 빼앗겼는데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죄가 아니더냐?”

마침내 신석구 목사님이 33인 가운데 제일 늦깎이로 동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부터 독립운동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신사참배를 반대 하다가 감옥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로 당시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자기 교회 안의 성도들만 돌보는 것이 목회가 아니라, 목회의 영역을 민족과 국가로 넓혀야 한다고 인식의 전환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3.1운동의 정신이 일제 36년 동안 지속 되어 끊임없이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며 독립운동을 하게 하였고 마침내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을 얻게 되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3.1운동 102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위대했던 3.1운동도 아직은 미완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3.1운동의 정신과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민족의 자주독립을 세우는 것이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류공영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내부적으로는 국론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102년 전 3.1운동도 한국교회가 주도하고 이끌어갔다면 미완의 3.1운동도 한국교회가 완성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첫째,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3.1운동의 사료나 독립운동가들의 행적과 업적을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발굴하고 드러내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가진 신앙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씀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노비제도를 거부했고, 여자들을 존중했으며, 황제국가를 국민의 나라로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행적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을 발굴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둘째, 한국교회가 국민통합을 이루는 화합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어떤 한 정파에 서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초 갈등사회를 화해사회로 바꾸는 피스메이커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분들이나, 아직 교회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에 대하여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를 비난한다고 함께 비난하며 적대시하는 것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이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국민과 함께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관계 속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면서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관대한 세상, 서로 사랑하는 사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이웃과 함께 더 좋은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협력해야 합니다.

 

셋째,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가교역할을 해야 합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에 있어서는 보수와 진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남북문제는 아무리 돌아보아도 우리 내부에서 길을 찾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기회를 포착하여 평화공존과 통일을 위한 길을 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꽃길을 여는 꽃씨 심는 꽃밭 여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일제 폭압 앞에서 만세운동을 펼친 선진들처럼 상황이 어렵다고 핑계하지 말고, 행동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에 남과 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더 나아가 통일이라는 큰 일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미완으로 남아 있는 3.1운동을 완성하는 길일 겁니다. 오늘 3.1운동 102주년을 맞아 기념예배를 드리는 여러분과 방송을 통해서 함께 하는 여러분 모두가 이런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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