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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교수의 설교단상]쌍둥이 예화를 발견하다

ACTS 설교학 신성욱 교수의 설교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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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기사입력 2021-03-03

 

▲ 전남 '가고싶은 섬' 손죽도 기암과 절벽 (사진제공 = 여수시)     ©뉴스파워

 

[1] 며칠 전 페북에 올라온 한 사연을 읽으면서 깜짝 놀란 바 있다. 미국 마이애미 롱비치 법정에서 일어난 실화인데, 작년 말 내가 집필한 김창인 목사의 설교 세계에 나오는 예화와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에서 있었던 얘기부터 소개해보자.

남편 없이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정성을 다해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는 중년 미국 여성분이 있었다.

[2] 어느 날 아들 형제가 동네 한구석에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 지역의 유력한 저명인사가 말을 타고 그곳을 산책하다가 하필이면 아들 형제의 죽창이 저명인사가 타고 있던 말의 눈을 찔러, 놀란 말이 펄쩍 뛰는 바람에 말과 저명인사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되었다.

말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도 문제이지만, 그 말의 가격도 자그마치 천만 불이 넘는, 세계에서 몇 마리밖에 없는 엄청나게 비싼 말이었다.

[3] 두 아들이 재판을 받게 된다. 판사가 형제 둘에게 누구의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렀느냐고 묻는다. 두 형제는 서로 자기가 휘두른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렀다고 주장했다. 서로 자기가 범인이라고 자청했다 말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판결을 내릴 수 없는 판사가 마음씨 아름답고 형제 우애가 남다른 그 형제의 어머니를 재판정에 불러 세우고선 다음과 같이 말했다.

[4] “부인, 한 아들만 사형에 처하면 되는데, 형제가 서로 자기 죽창에 말의 눈이 찔렸다고 주장하니 부인이 한 아들을 정하도록 하시오!”

한참 침묵을 지키더니 기도가 끝난 부인이 하는 말, “작은 아들을 사형에 처해 주십시오!”

판사가 왜 작은 아들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부인이 이렇게 말한다.

판사님, 큰 아들은 전처의 아들이고 작은 아들은 제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5] 판사가 말한다. “아니, 부인! 자기 몸으로 낳은 아들이 더 귀한 법인데, 그 아들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인이 답한다. “판사님, 옳을 말씀입니다. 제 몸으로 낳은 아들이 더 귀하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이자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서 배우고 익힌 나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제가 큰 아들을 죽게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6] 그러자 장내가 숙연해지고 재판정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 순간 방청객들은 물론, 부인의 말에 감동받은 판사는 힘을 주어 근엄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부인! 지금까지 30년 넘게 재판을 하면서 오늘과 같이 감동 받기는 처음입니다.” 두 아들도 또 그 어머니도 미국 사회를 아름답게 선도할 모범적 가족이라고 판단한 판사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힘주어 판결문을 낭독한다.

내가 판사의 권한으로 두 아들을 무죄로 석방한다.”

[7] 다음은 김창인 목사의 설교 속에 등장하는 실화이다.

이북의 남포에 예배당이 한 곳도 없을 때의 이야기이다. 선교사들이 평양에 와서 교회를 세우고 선교하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평양에는 교회가 한두 곳 있었다.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서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던 한 부인이 평양에서 남포로 이사를 했다. 문제는 남포에는 교회가 없으니 주일날이면 평양으로 예배드리러 간다.

[8] 그것도 주일날 가는 것이 아니라 토요일에 미리 가는데 소달구지를 타고 간다. 소달구지는 사람의 걸음보다도 느리다. 그렇게 토요일 올라가 잠을 자고,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저녁 예배까지 드린 후에 또 그 밤을 지내고 월요일에 다시 남포로 돌아왔다.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주일 하루를 지키기 위해서 이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 부인의 평생소원이 하나 있었으니, 곧 남포에 예배당을 세우는 것이었다.

[9] “하나님, 나의 힘 나의 재산을 가지고는 예배당을 지을 수 없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배당을 하나 세워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1년이 가고 3년이 가고 5년이 가도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부인은 인내로 기도를 끊지 않았다.

그날도 평양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아들 두 형제를 데리고 갔다. 교대로 소를 몰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들이 빨리 가느라고 채찍을 휘두르며 소를 몰았다.

[10] 그렇게 하면 소가 빨리 가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길이 신작로일지라도 넓지는 않았다. 옆으로는 말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소를 몰던 아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고 소에게 채찍을 휘두르다가 그만 그 말을 때리고 말았다. 말이 깜짝 놀라서 뛰는 바람에 말을 타고 지나가던 나이가 제법 지긋한 사람이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경찰서로 갔지만 화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검찰로 넘어가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11] 재판정에서 두 아들 중에서 도대체 누가 채찍질을 잘못해서 남의 말을 때려 떨어지게 하여 중상을 입혔는지가 문제였다. 둘이 한꺼번에 했을 리는 없고 진짜 범인을 잡아서 벌을 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 형제 중에 형이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했습니다. 저를 벌주십시오.” 그러자 이번엔 동생이 나서더니 아닙니다. 그땐 형님이 자고 있었고, 내가 소를 몰고 있었으니 내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라고 말한다.

[12] 그러자 또 형은 아니라고 자기가 했다고 하고 동생은 또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검사는 어머니한테 도대체 누가 잘못을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어머니가 나는 그때 너무 피곤해서 졸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아들이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어이 벌을 주어야 한다면 작은아들을 벌주어 감옥에 보내십시오.”라고 말한다. 검사가 이상하다 생각되어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었다.

[13] 어머니가 답한다. “큰아들은 전처소생이요 작은 아들은 제가 이 집에 와서 낳은 친아들입니다. 그러니 전처소생은 가만히 놔두시고 내가 낳은 친아들을 벌주십시오.”

검사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날의 재판이 끝난 후에 검사가 부인에게 묻는다. “당신 소원이 무엇입니까?” 어머니는 나는 이렇게 평양으로 예배드리러 가지 않게 남포에 예배당을 하나 세우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검사들이 괜찮을 때이다.

[14] 감동받은 검사는 자기 사재를 털어 남포에 예배당을 하나 세워 주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이 참으로 묘하다. 1, 3, 5,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렸는데 도움은 고사하고 어째서 예배드리러 가는 길에 그런 사고가 난단 말인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이럴 수 있느냐고, 다시는 예배당에 안 간다고, 그따위 하나님은 믿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게다.

[15] 그런데 그 사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화위복의 은혜를 주셨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고 찬양하는 아바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위에 소개한 미국과 과거 이북에서 일어난 두 사건은 마치 쌍둥이 예화처럼 거의 흡사한 내용이다. 어쩜 이리도 거의 똑같은 스토리일 수가 있는지, 하필이면 그 예화들이 모두 내 눈에 띄게 될 수 있는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16] 성경은 우리더러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 3:13)고 말씀한다. 그렇다. 실망도 말고 절망도 말고 끝까지 인내로 기다리면서 선을 행하고 겸손을 보이고 세상 사람과는 구별되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두 가정이 경험한 것과 흡사한 기적의 결과를 우리도 맛볼 수 있을 줄 믿는다.

우리 모두도 이런 주인공들로 널리 널리 회자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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