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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고난주간 묵상 자료(1);고난주간 예수님 행적과 강화

고난주간 예수님 행적과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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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기사입력 2021-03-08

 

▲     © 김정권

   

  

  고난주간 묵상자료 활용 가이드:

 

 이 묵상자료는 2021322일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44일 부활주일까지 14일간 묵상하는 것으로 구성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관한 자료를 먼저 제시하여 참고하도록 하였고, 고난주간 전의 묵상(3/22-3/27)과 고난주간 묵상(3/28-4/3) 그리고 부활주일 묵상(4/4)으로 구성하였다. 묵상자료는 3부로 나누어 게재할 것이다. 1부는 고난주간 전의 묵상, 2부는 고난주간 1-4일까지, 3부는 고난주간 5-7일과 부활주일 묵상자료이다.

 

 고난주간 전의 묵상은 고난주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하였고, 고난주간과 부활주일 묵상 내용은 사건이 일어난 요일에 맞추었다. 그래서 고난주간 제3일 화요일은 예수님 강화, 논쟁, 예언, 교훈과 사건 등 16(성전강화 8; 감람산 강화 8)이나 되어 상당히 길고 고난주간 제5일 목요일 묵상자료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과 다락방 강화가 있어서 역시 그 분량이 많다, 반면 제4일 수요일 묵상 내용은 짧다. 매일 예수님 행적의 양이 달라서 어떤 요일에는 내용 중 선택해서 묵상하고, 어떤 요일은 대용할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따라서 매일 제시된 묵상 가이드를 참조하여 묵상하기 바란다.

 

 묵상에는 어떤 원리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묵상하는 사람에 따라서 주시는 바 은혜대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구원역사를 음미해 가기 바란다. 예수님 구원 사역과 나와의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시간이면 좋겠다.

 

  감   사:

 

 이 묵상자료 구성에 조언을 주신 미국 Springs, Co., 말씀제일교회 정준모 목사, News Power 대표 김철영 목사, 대구 침산제일교회 지웅재 목사, 남해 동천교회 정규채 목사, 부산 연산중앙교회 최성석 목사, 진주 반성교회 박경일 목사, 예천 하리제일교회 김명규 목사께 감사드린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 원고의 필자 김 정 권은 대한예수교 장로회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 대구대학교 명예교수이다.

* 이 원고에서 사용한 년도는 예수님 공생애 시작을 27 AD로 한 연도이다.

 

 

 

 

                 2021년 고난주간 묵상

 

▲     © 김정권

 

  

             1. 사순절과 고난주간

 
  1) 2021년 사순절과 고난주간 일정

 

2021217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2021221일 사순절 첫째 주일

2021321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2021322() 고난주간 묵상 시작

 

2021322()-27() 고난주간 전의 묵상(6일간)

 

2021328일 종려주일

 

2021329() 예루살렘 성전 정화

2021330() 성전 강화, 감람산 강화

2021331() 베다니에 계심

202141() 성만찬, 다락방 강화, 겟세마네 동산 기도, 가야바의 심문

202142() 빌라도의 판결, 십자가에 달리심, 무덤에 장사 지냄

202143() 무덤에서 안식

 

202144일 부활주일

 

 

  2) 사순절과 고난주간 관련 용어

 

(1) 사순절(Lent; 四旬節)

 

 사순절(四旬節, Lent) : 영어의 'Lent'''(lencten)이란 말과 '길다'(lang)는 고대 영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라틴어로 번역하면 '사순절'(四旬節)이다. 로마 가톨릭이나 성공회에서는 '대제절'(大祭節)이라고도 부른다. 4세기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뒤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시고 사탄의 유혹을 받으며 보낸 기간을 기념해 생긴 관습이다.

 

 사순절은 부활절 46일 전, (ash)의 수요일에서 시작해 성토요일(부활절 전날)에 끝난다. 부활주일을 앞둔 성회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46일간의 기간(그 중에서 1~6주의 주일은 6일이 있고, 평일은 40일임)을 특별한 절기로 정한다.

 

 부활제 준비는 기도와 단식에 의해서 행하여졌는데, 예수님이 금식하신 일에 따라서 40일간 행한다. 로마의 가장 오래된 관습에서 사순절은 부활제의 6주일 전의 주일(일요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주일에 단식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서, 주일은 계산하지 않고 정확하게 40일이 되도록 거슬러 올라가서, 사순절 첫 주일 전주(前週)의 성회(聖灰)수요일 또는 성회례일(聖灰禮日) 즉 옷에 재를 뿌리는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하는데, 부활절 전 목요일의 세족일(洗足日)과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화해의 길을 모두 함께 걷는다는 공동체(共同體) 의식을 굳히는 의미를 지닌다.

 

  (2) 고난주간(Passion Week, 苦難週間)

 

 고난주간(Passion Week, 苦難週間): 예수님이 로마군에 붙잡혀 빌라도의 재판을 거쳐 십자가에서 사형을 받기까지 지상에서 겪은 고난을 기념하는 한 주간, 수난주간(受難週間)이라고도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나 영국 성공회(聖公會)에서는 부활절 전 40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四旬節) 기간 중 각 주간마다 특색 있는 행사를 갖지만,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는 보통 종려주일(棕櫚主日: 부활주일 바로 전 주일)부터 고난주간을 지키고, 1주간을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겪은 죽음을 앞둔 번민(겟세마네의 기도 등)과 온갖 수모,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시는 행적에 따라 그 고통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행사를 갖는다.

 

  (3)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성회(聖灰)수요일, 성회례일(聖灰禮日):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되는 첫날. 가톨릭 등에서 지키는 절일의 하나로 수요일에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상징으로 머리에 재를 뿌리는 의식을 행하는데, 이날을 로마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참회하는 날로 정하고 옷에다 재를 뿌렸다. 이 날은 부활절 전 목요일의 세족일(洗足日)과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화해의 길을 모두 함께 걷는다는 공동체(共同體) 의식을 굳히는 의미를 지닌다.

 

  (4)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라틴어로서 '슬픔의 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이다. 빌라도 법정(안토니오 병영)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십자가 수난의 길, 14세기 프란시스컨 수도사들에 의해 확정된 길의 14지점으로, 800m 길과 갈보리 언덕을 말한다. 열네 곳은 다음과 같다.

 

 1.예수님 재판 받으신 곳(15:15) * 선교교회

 2.조롱과 채찍질을 당하신 곳(15:16-20; 19:2, 3) * 채찍교회

 3. 예수님 첫 번째 넘어지신 곳

 4.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신 곳 (2:34)

 5.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진 곳(15:21; 23:26) *

 6. 베로니카(Saint Veronica, 성경에는 기록이 없음)가 예수님의 땀을 닦아드린 곳(6:25)

 7. 예수님이 두 번째 넘어지신 곳(63:9)

 8.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신 곳(23:28)

 9. 예수님 세 번째 넘어지신 곳(26:39)

10.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19:23)

11.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27:35; 15:24; 23:33; 19:18)

12.예수님 십자가에서 운명(殞命)하신 곳(27:50; 15:37; 23:46; 19:30)

13. 예수님 십자가에서 내려 염한 곳(27:59; 15:46; 23:53)

14. 무치시고 부활하신 곳(27:60; 15:16; 19:41, 42) * 성묘교회

 

  (5) 부활절(Easter, 復活節)

 

 부활절(Easter, 復活節): 교회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달걀에 서로의 소망을 담은 정성스런 그림을 그려 서로 교환하는 의식을 행한다. 교회력에서 가장 오래된 절기로 역사적인 기원을 분명하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리스어나 프랑스어의 호칭은 헤브라이어 유월절인 페샤(Pesāh)에 기초하고 있고 영어의 이스터(Easter)와 독일어의 오스테른(Ostern)은 튜턴족()의 봄 여신인 에오스트레(Eostre)에서 파생되었다고 전해진다. 초기에는 유월절에 따라 유대력() 니산월(태양력의 34) 14일을 부활절로 정하고 축하하는 교회와 그 다음의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는 교회도 있었다. 서기 325년의 니케아공의회에서 부활절 날짜를 춘분(春分) 다음에 오는 최초의 만월(滿月) 직후의 일요일로 정하고, 춘분은 321, 만월은 19년법(年法)에 의한다고 정하였다.

 

  (6) 호산나(Hosanna)

 

 호산나(Hosanna): 어원이 그리스어로 ()하옵나니, 이제 구원(救援)하소서(Save us)” (118:25) 라는 짧은 기도문이며, 때로 찬양으로도 쓰인다. 구약 시대에는 초막절에 제단 주위를 돌면서 환호성과 함께 호산나를 외쳤다.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길가에 섰던 군중이 외친 함성중에 나온다. 이는 메시아의 구원을 간구하는 동시에 그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고 감격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21:9-15; 11:8,10; 12:13).

 

118:25 여호와여 구 하옵나니 이제 구원 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 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Ps118:25 O LORD, save us; O LORD, grant us success. 

 

 

                     2. 고난주간 전의 묵상

 

                 기간: 2021322()-327()

 

 

         고난주간 전의 묵상 자료에 관련된 지도

 

▲     © 김정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예수님 죽음과 부활 예언 하신 곳,

 ⓸ ⓹는 나사로의 죽음과 살아난 곳, 은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기름 부은 곳

  

▲     © 김정권

 

 

                   고난주간 전의 묵상 제1

               (2021322일 월요일)

 
     오늘의 찬송: 324(통일 360; 예수 나를 오라하네)

 

 

  (1)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예언 1

 

    성 경: 16:21-28; 8:31-38; 9:22-27)

 

장소: 카이사라 빌립보 지역(지도의 )

: 29 A.D.(공생애 세 번째 유월절이 지난 때)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첫 번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예언 

 

[요의(要義)]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이르시었다. 이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16:16)이 있은 직후였다. 이에 베드로가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 하고 예수님을 말렸다. 왜 베드로는 이런 행동을 했을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믿었을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예언을 하신다. 제자들은 놀랐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와 같은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예수님 예언 내용을 공관 복음에서 모두 다루고 있다. 그 요지를 보면 첫째,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한 주된 세력은 장로, 대제사장, 서기관이고 이들에게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시고 3일 만에 다시 사신다(16:21; 8:31; 9:22)는 내용이다. 둘째, 제자의 길을 이르셨다. 즉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질 것(16:24; 8:34; 9:23), 셋째, 패러독스(Paradox): 자기 목숨을 구하려하면 잃을 것이고, 내 놓으면 구원을 받는다(16:25; 8:35; 9:24)는 메시지로 죽으심과 부활의 내러티브가 구성된다.

 

 다음 이 예언에 부수적으로 예언하신 것은 첫째, 하나님 나라의 영광 즉 변화산의 영광을 예언하셨다(16:28; 9:27). 둘째, 예수님 말씀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마지막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할 것(8:38; 9:26) 이라는 메시지를 주신다.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닌 제자들 그들은 누구였는가?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처럼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과 메시아와의 관계를 인간의 생각으로 가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 사이에 누가 높으냐? 이에 대한 논쟁이 마지막 만찬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직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 소명에 접근해 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두 도망해 버린 다. 그들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기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묵상(默想)]

 

 1. 예수님 공생애 마지막 해 카이사라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다음 예수 님 죽으심과 부활을 예언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예수님의 질책을 받는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은 왜 갈등했을까?

  

 

                  고난주간 전의 묵상 제2

                (2021323일 화요일)

 

 

      오늘의 찬송: 135(통일 133; 어저께나 오늘이나)

 

 

(2)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예언 2

 

   성 경: 17:22, 23; 9:30-32; 9:43b-45

 

장소: 갈릴리(지도의 )

: 29 A.D.(이방선교에서 돌아오시는 길)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두 번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제자에게 알리심
 

[요의(要義)]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예언 두 번째는 첫 번째 내용이 많이 축소되었다. 중요한 골자는 고난 받으시고 3일 만에 부활 하신다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마태와 마가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한다.”는 기술을 한다. 그러나 누가는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뜻을 다시 묻지 못했다. 두려워서 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고난 받으신다는 메시지는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누가는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9:44). 이 일이 이루어질 때 제자들로 깨닫게 하시고자 함이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같은 것은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에는 제자들은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 제자들에게 영적 각성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사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메시아 왕국이 이루어지기를 바랐겠지, 그래야 세계를 제패하고 자신들도 영화를 누릴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마지막 만찬에서까지 누가 높으냐? 갈등에 있었다. 그러니 제자들에게 갈등이 얼마나 컸겠는가? 예수님 예언과 복음서에서 다룬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둔다.

 

 예수님의 두 번째 죽음과 부활 예언을 다룬 공관복음서는 모두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넘김을 받으신다.(17:22; 9:31; 9:43)는 내용을 기술하였고 마태와 마가만 다룬 내용은 3일 만에 살아나신다.(17:23; 9:31)는 내용이다. 누가복음에서만 언급된 내용은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다(9:45)는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예언 내용이 축소되었지만 중요한 내용은 모두 기술되었다.

 

 

[묵상(默想)]

 

 1. 예수님의 두 번째 죽으심과 부활 예언은 제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제자들의 갈등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2. 삼일 만에 살아나신다는 말씀에 대해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고난주간 전의 묵상 제3

               (2021324일 수요일)

 

 

    오늘의 찬송: 151(통일 138; 만왕의 왕 내주께서)

 

 

  (3) 세 번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예언

 

   성 경: 20:17-19; 10:32-34; 18:31-34

 

장소: 에브라임에서 여리고로 가시는 길(지도의 )

: 30 A.D.(공생애 4번째 유월절이 다가오는 고난주간이 임박하여서)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을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부활을 알리기 위해

 

 

[요의(要義)]

 

 예수님이 에브라임 지방에서 여리고로 가시는 길에서인데 이 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는 길이다(10:32; 10:32; 10:32). 그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해 세 번째로 말씀하셨다. 첫 번째 예언(9:22; 16:21-23)과 두 번째 예언(9:43-48; 17:22,23)에 이어 세 번째 예언을 12제자에게 이르신 것이다. 제자들은 무척 불안해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심중에 갈등이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예수님 가시는 길을 알 능력이 없었고 믿음이 없었다.

 

 공관복음의 내용을 개관해 보면 이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첫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올라가는 예루살렘에서 이 일이 일어날 것(20:18, 19a; 10:32, 33; 18:31)이라 하셨다. 이는 예수님 공생애 30 A.D의 네 번째 유월절이다.

 둘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잡히실 것(20:18; 10:33)이다. 이들은 악한 농부이며,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이며, 아버지와 약속은 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 큰 아들이며, 하나님도 그 아들도 모르는 세속주의 자들이다. 예수님을 제거해야만 하는 기득권 세력들이다.

 셋째, 이방인의 손 즉 로마 총독과 그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실 것(20:19; 10:33, 34; 18:32, 33)이다, 로마는 제국으로 당시 유대를 지배하고 있었고 유대지방은 총독이 다스렸다. 총독 빌라도는 종교지도자들과 모인 군중의 눈치를 보아가며 무죄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하고 군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넷째,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20:19; 10:34; 18:33). 불안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시고 싶으셨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신앙은 예수님의 말씀을 수용할만하게 성장해 있지 못하였다. 예수님의 메시아 관에 제자들은 접근해 있지 못한 상태였다.

 다섯째,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였다(18:34). 예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으니 이해를 할 수 없었고 공유개념(共有槪念)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 그들에게는 성령에 의한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에 걸쳐 주신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그 제자들은 명료한 메시아 관()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그래서 마지막 만찬에서 누가 높으냐? 라는 논쟁이 있었고(22:24-30), 겟세마네 동산에서 선생은 잡혀가는데 제자들은 모두 도피한다(26:56). 왜 그들은 도망갔을까? 그들은 메시아왕국을 알지 못하였다. 제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받을 때까지는 기다려야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 그리고 부활 후에 갈릴리로 가실 것을 알렸으나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다(29:4 참조).

 

 

[묵상(默想)]

 

 1. 예수님의 세 번째 죽으심과 부활 예언은 사마리아경계 남쪽 에브라임지방에서 여리고로 향하시는 길에서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바리새와 마찬가지로 지상 메시아 왕국을 꿈꾸고 있었다(17:20, 21). 제자들의 꿈은 무너져 내리고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을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나와의 관계는 어떠할까?

 2.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 할 때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일을 생각해 보자.

 

 

 

                 고난주간 전의 묵상 제4

              (2021325일 목요일)

 

 

   오늘의 찬송: 398(통일 92; 어둠의 권세에서) 

 

(4-1) 나사로가 병들어 죽음

 

    성 경: 11:1-16

 

장소: 베다니(지도의 )

: 29, 30 A.D.(예수님이 요단강 건너 베레아 지방에서 유대지방 베다니로 오신 후)

등장인물: 예수님, 제자들, 나사로의 가족, 군중들

중요 메시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심

 

 

[요의(要義)]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7가지 이적과 기사 중 마지막 7번째 기사이다. 나사로가 죽고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러 베다니로 가신다. 이 단락에서는 나사로의 죽음과 예수님은 아직 잠시 피신하셨던 요단 동편 베레아의 베다니 동리(1:28)에 계셨고 소식을 듣고 바로 오셨다면 하루 길로 충분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틀이 지난 후 다시 유다 땅 베다니(예루살렘의 동남쪽 3km지점)로 가시자고 하였다. 얼마 전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하였던 곳이다.

 

 이스라엘은 사망하면 하루 만에 장례를 지낸다. 그래서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장례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무덤에 4일간 있었다면 죽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예수님이 베레아 지방 베다니에 2일을 더 유하심으로 죽은 지 4일 만에 유다 땅 베다니를 찾게 되신 것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그곳에 계셨다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인데 라는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강조하신다. 그들이 우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기신다. 그러나 군중의 심리는 믿음의 기대와 조롱으로 엇갈린다.

 

 마태는 이 당시의 상황을 도마의 선언을 통해서 설명한다. 매우 살벌한 상황이었다. 얼마 전 예수님을 돌로 치려하던 곳이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잠시 베레아 지방으로 피신을 하셨다. 여기서 유대로 가자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다. 도마는 용맹스럽게 다른 제자들을 향하여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11:16). 말한다. 이 길은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제자들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묵상(默想)]

 

1.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하나님 아드님 되심을 나타낼 수 있을까?

2.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를 위하여 죽을 곳으로 가신다. 나도 할 수 있을까?

3. 죽을 수도 있는 길로 간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4-2)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성경: 11:17-37

 

장소: 베다니

: 29, 30 A.D.(예수님이 요단강 건너 베레아 지방에서 베다니로 오신 후)

등장인물: 예수님, 제자들, 나사로의 가족, 군중들

중요 메시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심
 

[요의(要義)]

 

 이스라엘은 사망하면 하루 만에 장례를 지낸다. 그래서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장례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또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장사지내 다시 살아난 경우도 있다. 무덤에 4일간 있었다면 죽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예수님이 베레아 지방 베다니에 2일을 더 유하심으로 죽은 지 4일 만에 유다 땅 베다니를 찾게 되신 것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그곳에 계셨다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인데 라는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강조하시면서 이를 믿는냐라고 물으신다. 생명의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름을 이르셨다. 그들이 우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기신다. 그러나 군중의 심리는 믿음의 기대와 조롱으로 엇갈린다.

 

[묵상(默想)]

 

1.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하나님 아드님 되심을 나타낼 수 있을까?

2.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실까?  

 

 

 

                  고난주간 전의 묵상 제5

               (2021326일 금요일)

 

    오늘의 찬송: 239(통일 230; 저 뵈는 본향 집)

 

 

  (5-1)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성 경: 11:38-44

 

장소: 베다니(지도의 )

: 29 A.D.

등장인물: 예수님, 제자들, 나사로의 가족, 군중들

중요 메시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시기 위함

 

 

[요의(要義)]

 

 예수님은 베레아 지방의 베다니에서 2일을 더 유숙하시고 유다 지방 베다니로 오신다. 예수님은 이제 나사로의 죽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시기인 죽은 지 4일이 되는 날이다. 그는 나사로의 무덤으로 안내받는다. 베다니에 도착한 예수님은 마리아를 만나서 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해하시고 우셨다고 요한은 기술한다(11:33-35). 죽음은 비통한 것이다. 죽음 그것은 육적이든 영적이든 어둡고 아픈 일이다.

 

 예수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무덤에 이르셨고 무덤 막이 돌을 옮기라 하셨다. 이때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11:39)라고 다시 죽음을 확인하고 불가능 한 일임을 간접적으로 말한다. 예수님은 베레아에서 오실 때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백성들에게 확인시키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미 하신 말씀을 상기 시키신다. “믿으면이는 핵심이다.

 

 그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예수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나사로가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으로, 어떤 이는 나사로가 살아날까? 반신반의하는 시선으로, 어떤 자는 나사로가 살아나지 않기를 바라는 시기로 그 현장을 주시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소리를 내시어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11:42) 주위 사람들이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에 대화를 통하여 그 능력을 알리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 에게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11:43) 명하신다. 죽었던 나사로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11:44)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하려고 나사로를 살리셨다. 이 나사로 살리신 사건으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는 더 확실해 졌다.
 

[묵상(默想)]

 

 1. 나사로의 살아남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촉진 시켰을까?

 2. 나사로의 살아남과 예수님의 부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3. 예수님이 나사로 무덤에서 우신 의미를 생각해 보자. 

 

  (5-2) 예수님을 죽이려는 무리

 

   성경: 11:45-53

 

장소: 예루살렘 대제사장의 집

: 29, 30 A.D.

등장인물: 예수님, 제자들, 대제사장과 유대 지도자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모의 

 

[요의(要義)]

 

 요한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후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제저할모의를 했다고 기록한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일은 백성들의 민심이 예수님에게로 돌아가고 자신들의 입지가 축소될 것을 염려한 것 같으나, 가야바는 그 이유를 로마의 대항세력으로 부각시켜서 로마에 완전 점령당할 것을 염려하는 것으로 피력한다. 국가의 멸망보다는 예수를 제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것이다.

 

 공관 복음에서는 감람산 강화가 있는 후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모의(26:1-5, 14-16; 14:1, 2, 10, 11; 22:1-6)를 한 내용을 기술한다. 이 내용은 고난주간 묵상 제3일 화요일 항목 19에서 다룰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한 것은 무척 오래 전 일이지만 요한은 그 직접적 동기를 나사로를 살리신 일에서 찾고 있다. 요한은 나사로를 살리신 후 예수님이 에브라임으로 물러나 계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고 기록한다. 예수님이 에브라임으로 물러나계셨던 것은 예루살렘 산헤드린 의원들이 예수를 해하고자 음모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일과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가 더 적극적이고 표면화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지고 있음도 알아야한다.

 

 * 에브라임(Ephraim) “열매가 풍성한 땅이란 뜻으로 이 지역에 실로가 있어서 구약시대 종교 중심 지역이었다. 예루살렘 북쪽 20km 지점으로 보인다.
 

[묵상(默想)]

 

1. 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제거해야 했는가?

2.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후 왜 에브라임으로 물러나 계셨을까? 

 

 

 

                고난주간 전의 묵상 제6
                
(2021327일 토요일)

 

 

   오늘의 찬송: 211(통일 346;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6) 마리아의 기름 부음

 

    성 경: 26:6-13; 14:3-9; 12:1-8

 

장소: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지도의 )

: 30 A.D.(고난주간 전 안식일)

등장인물: 예수님, 제자들, 마리아와 그 가족

중요 메시지: 예수님 죽으심을 기념함 

 

[요의(要義)]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그곳으로 가까이 가고 계신다. 고난주간 유대지방 감람산 자락 베다니로 오신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나사로의 집)에 머무셨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시고 예루살렘 입성 하루 전 안식일을 마리아의 집에서 보내실 때 일어난 일이다.

 

 시간적으로 보면 이 향유 사건을 고난사건 앞에 배치해야할 것인데 마태는 왜 고난주간 중간에 이 일을 배치했을까? 마리아의 기름 부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고 고난은 영광의 길이요 널리 기념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적 정황을 보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이는 마리아뿐인 것 같다. 마리아가 말씀 듣는 일에 열심 하였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신 결과일 것이다.

 

 이 내용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에 기록되어있다. 기록상황을 보면 첫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기름 부은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26:7; 14:3). 요한만 그가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라고 밝힌다(12:3). 둘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기름을 예수님 머리에 부었다(26:7; 14:3)고 기술하는데 요한복음에서는 발에 부었다고 기술한다(12:3). 이는 마리아의 기름부음 행동 중 복음서 저자들이 본 부분 혹은 강조된 부분이 다르다고 보여 진다. 특히 요한은 머리털로 발을 닦았음을 기술하여 최고의 존경을 나타냈음을 기록하고 있다.

 

 다음 반응인데 제자들은 분노하고 마리아를 힐책(詰責)했다. 요한은 가롯 유다를 거명(12:4)했으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거명 없이 복수를 쓰고 있다(26:8; 14:4). 가롯 유다 뿐 만이 아니라 마리아의 행위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한 제자들이 더 있었다. 그들의 행동은 이 기름부음의 참 뜻을 몰랐고 또 개인적 욕심도 작용했던 것 같다. 이해를 못하면 오류를 범하게 된다. 진리는 바로 정확히 알아야한다. 이 향유의 값어치는 300데나리온이라 하니 오늘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치면 3천만 원의 가치가 있다. 큰돈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셨다. 마리아의 기름부음은 예수님 자신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라 하셨다(26:12; 14:8; 12:7). 마리아는 정확히 예수님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제자들은 어렴풋했을 것이다. 마리아의 행위는 확신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마리아의 행위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은 어디나 전해 질 것.”(26:13; 14:9)이라 말씀하시어 마리아의 행위의 의미를 부여하시었다.
 

[묵상(默想)]

 

 1. 마리아의 기름 부음이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했다는 뜻은 무엇일까?

 2. 마리아는 예수님 죽음과 부활을 믿었을까?

 3. 우리들은 이 기름부음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드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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