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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 가이드]복음서 III: 누가복음 3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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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기사입력 2021-03-08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누가복음 9-12장 메모

 

<9 > 제자의 파송과 선교 보고, 그리고 신앙고백

 

[십이사도 파송: 전도자의 길] (9:1-6; 10:5-15; 5:21-43)

 

  공관 복음을 통해 전도자의 길을 요약해 보도록 한다. 전도자의 갈 길과 해야 할 일을 예수께서 이르셨다. 1.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도록 유다 땅으로 가라. 2. 전할 메시지는 천국이 가까웠다.”3.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내어 쫓으라. 4. 대가(代價)를 받지 말라 등이 제자들에게 주신 메시지 내용이다. 유다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부패의 온상은 예루살렘과 성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일 것이다. 메시아 사역은 유다 땅으로부터 퍼져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도자의 자세를 가르치셨다. 전도자는 1. 돈을 지니고 나아가지 마라. 2. 배낭이나 옷 두 벌을 갖지 마라. 3. 생활용품은 현지 공급하라. 4. 머무는 집을 위하여 평안을 기원하라. 5. 받아드리지 못하는 가정, 성읍은 떠나되 번지도 털어버리고 떠나라. 이런 성은 심판을 받게 된다.

 

[예수를 세례 요한의 환생으로 생각한 헤롯 안티파스] (9:7-9; 14:1-12; 6:14-29)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살펴보면 4B.C.헤롯 대왕이 죽으면서 로마 황제에게 청원하여 이스라엘을 3분하여 그의 아들들에게 나눠 주었다. 사마리아, 예루살렘, 이두매를 포함한 남쪽 땅은 맏아들인 헤롯 아켈라오(4B.C.-6A.D.), 그 북쪽인 갈릴리 지방은 둘째 아들 헤롯 안티파스(4B.C.-39A.D.), 갈릴리 북동 지방인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은 셋째 아들 헤롯 빌립((4B.C.-33A.D.)으로 분할 통치되었다. 이 단락에 나오는 헤롯은 둘째인 헤롯 아티파스이다. 그는 동생 빌립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맞이했고 세례 요한은 이의 부당성을 지적해서 감옥(監獄)에 있었다. 빌립의 아내였다가 안티파스의 아내가 된 헤로디아의 딸이 그 어머니의 사주(使嗾)로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 요한을 살해한 사건이다.

 

  * ( ) 내의 연대는 헤롯 왕들의 통치 기간이다.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오병이어 기적] (9:10-17; 14:13-21; 6:30-44; 6:1-14)

 

  이 단락의 내용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교 파송한 사건(9:35-11:1)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선교활동을 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휴식과 재교육을 수행하시기 위해 벳새다 광야로 나아가신 것 같다. 예수가 이르시는 곳에 무리는 항상 따랐다. 이날도 5천 명이나 모였고 광야에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적을 하셔서 오병이어(五餠二魚)5천 명을 먹이셨다. 이에 대한 영적 해석은 무척 다양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순한 이적으로 보기보다는 앞으로 이루어질 천국 생활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베드로의 신앙고백](9:18-27; 16:13-28; 8:27-9:1)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였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기름 부음으로 위임되는 직분은 왕, 제사장, 선지자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어 Χριστς, 발음은 Christὸs에서 온 말로 70인 역에서 히브리어의 메시아를 그리스어(헬라어, Greek)로 옮겨 처음 사용하였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언급이 자주 등장하여, 그리스도가 예수 이름의 일부분이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고백으로 베드로는 주 앞에 칭찬을 듣고 그 터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을 약속받는다. 가톨릭에서는 이에 근거하여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가진 존귀한 자로 존중된다.

 

[변화 산에서 영광](9:28-36; 17:1-8; 9:2-8)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시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사건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의 종이고 엘리야는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보내주시겠다고 한 선지자이다(4:5). 이 예언은 세례 요한으로 이루어졌고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를 깨달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설명을 듣고 비로소 깨닫는다. 변화된 모습과 하늘로부터 음성이 있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임을 다시 천명하여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한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의 제안은 초막 3개를 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과 천국은 그런 형상적(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베드로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는 예수님] (9:37-43; 17:14-18; 9:14-27)

 

  이 아이는 간질로 인한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아이를 고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 보내셨다. 왜 제자들은 못하였을까? 예수님은 믿음이 적기 때문이라 하셨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셨다. 바울 사도는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무익하다고 하였다(고전13:3). 믿음의 힘 위에 사랑으로 역사하는 힘이 있다(5:6). 곧 믿음은 사랑으로 완성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예언 2] (9:43-45; 17:22, 23; 9:30-32)

 

  예수님은 두 번째 자기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었다(첫 번째 예언은 16:21-28; 8:31-38; 9:22-27). 제자들은 매우 근심하였다. 이때 제자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메시아로 알고 그가 왕이 되면 한자리하고자 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절망하지 않았을까? 끝까지 그들은 예수의 돌아가심과 부활에 대하여 믿을 수가 없었다. 가롯 유다는 왜 예수님을 팔았을까? 가롯 유다와 같은 생각을 한 제자는 더 없었을까? 기대에 차 있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돌아가신다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천국에서 큰 사람] (9:46-48; 18:1-5; 9:33-37)

 

  이 단락에서 누가는 간단히 기록하고 있으나 마태는 좀 더 상세히 기록한다. 공관 복음을 종합하여 보면 천국에서 큰 자가 더 분명해진다. 제자들의 질문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들의 마음에는 높은 자리에 관한 욕망이 있었다. 제자들의 메시아 관이 아직 세속적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메시아왕국에서 계층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누가 더 섬기느냐? 스스로 낮아지는 세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이를 모델로 하여 높은 자를 설명하신다.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이다. 낮은 자를 영접하면 그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면 연 자 맷돌을 메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낳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소자에게 범죄 하게 하는 것 역시 큰 죄이다.

 

[누가 전해도 좋은 복음전파] (9:49, 50; 9:38-40; 17:1, 2)

 

  믿는 자를 대적하지 않고 주의 복음을 전한다면 그를 금할 이유는 없다. 어떤 방법이든 복음이 전파되면 좋다. 꼭 내가 전하지 않아도 누구나, 어떤 방법이든 복음만 전파되면 된다. 남의 터 위에 집을 짓지 않고 자기 터에 집을 짓는 자세도 중요 할 것이다.

 

[사마리아 마을에서 예수를 배척] (9:51-56)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이제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주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게 되었다. 사마리아와 유다는 항상 관계가 나빴다. 그들이 예수를 배척한 이유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하늘의 벌을 내리도록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참 진리는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누구나 무너지게 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세우는 일은 어렵다. 주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제자의 길: 나를 따르라] (9:57-62; 8:19-22)

 

  군중들은 예수님의 행함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을 제패할 메시아일 것으로 추정했을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되는 피정복민족으로 그들이 갈구하는 것은 독립과 세계 제패일 것이다. 그래서 눅9:57의 어떤 사람이란 그 사회 엘리트인 서기관이며 그는 예수를 따르려 했다. 그러나 예수는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하시며 그의 요구를 거절하신다. 또 다른 제자는 아버지 장사를 지내고 오겠다고 하나 예수님은 거절하신다. 이는 당연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은유하는 바는 세상일은 세상에 맡기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영적 일에 전념해야 함을 이른 것이다.

 

 

<10 > 제자 선교지 파송과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칠십 인을 선교사로 파송] (10:1-16; 11:20-24)

 

  70인 제자를 파송하신 기록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있다. 이 단락의 기록은 십이사도 파송의 원리와 같다(9:1-6; 10:5-15; 5:21-43).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다. 오늘 우리는 전도자로 나서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다. 이 소명은 마지막 때의 성도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다.

 

  * 고라신(Chorazin) 가버나움에서 북쪽으로 약 4Km 지점의 산 위에 있는데 하솔로 올라가는 길로 돌아가면 약 12Km 거리에 있는 지역이다. 예수님이 이적을 많이 행하셨으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아서 책망을 들은 성읍이다(11:21). 유대인들의 주요 밀과 올리브 경작지였다.

  * 벳새다(Beth-saida) “고기잡이의 집이란 뜻으로 갈릴리바다 북쪽 1.6km 지점의 요단 동편이다.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1:44; 12:21)이며 오병이어의 이적을 하신 곳(9:10-17)이다. 예수님이 이적을 많이 행하셨으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아서 책망을 들은 성읍이다(11:21).

  * 두로(Tyre) 시돈 남쪽으로 약 40km, 악고에서 북쪽으로 45km 지점에 있다.

  * 가버나움(Capernaum) “마을이라는 뜻으로 갈릴리 바다 북쪽 요단 강 바로 서편에 위치하고 나사렛을 떠난 예수님이 초기 선교를 주로 하신 곳이다. 이곳에 로마 병영과 세관이 있었고 동서무역의 요충지였다(4:13; 7:1-10). 예수님이 이적을 많이 행하셨으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아서 책망을 들은 성읍이다(11:23).

 

[칠십 인의 선교 보고](10:17-20)

 

  70인 선교사들은 돌아와서 이적과 기사를 행한 것을 보고하였다. 그러나 그런 권능을 행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도자 자신의 구원이 더 중요하다. 구원받지 못한 전도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자신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감사기도] (10:21-24; 11:25-27; 13:16, 17)

 

  참 지혜 자는 누구일까? 그는 참 진리를 깨닫는 자이다. 누구나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의 오묘하신 진리를 그 아들에게 알게 하신 하나님, 아들의 계시를 받은 자, 그의 제자에게 보는 눈을 갖게 하신 아버지께 드리는 감사의 기도이다. 보는 눈과 듣는 귀를 가진 자가 복 있는 자이며 그것을 주신 분께 감사한다.

 

[진정한 이웃은 누구인가?;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 (10:25-37)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미담 비유는 복음서 중에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율법주의자가 영생을 논하며 그 조건이 무엇인가를 질문한 사건이다. 이때 이 율법사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란 기본 계명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대로 행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 비유로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드신 것이다. 이 율법사에게 사마리아인은 개와 같은 존재였다. 즉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행위는 심령의 표출(表出)이지만 지식으로 아는 것과는 다르다. 변화하지 않은 사람들은 진정한 행위로 나타낼 수 없다.

 

 

[마리아의 선택] (10:38-42)

 

  이 기사도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행위를 통한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알아야 한다. 두 여인은 예수님이 사랑한 사람들이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 듣는 일에 온 정신을 다 쏟았다. 말씀 듣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나타낸다. 그 결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확실히 알았고 그 죽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고난주간 전 안식일에 예수의 발에 향유 한 옥합(玉盒)을 부어 예수님의 주검을 준비한다. 제자들에게 자기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3번 말씀했지만, 그들은 이해하지도 믿지도 아니했다. 오직 마리아만 믿고 준비했다.

 

  * 이들의 가족은 문둥이 시몬, 그의 처 마르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 그의 오라비는 나사로이며 예수의 사랑을 받는 가족으로 예수 고난 주간에 주로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계셨다. 고난주간 전 안식일을 지키실 때, 마리아가 향유 한 옥합을 가져다가 예수 발(머리)에 부어 예수의 주검을 준비했다.

 

 

<11 > 바리새인, 서기관 등과 논쟁; 무엇이 깨끗한 것인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와 기도하는 자의 자세](11:1-13; 6;9-15; 7:7-11)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 외식으로 보이기 위한 기도를 금하신다. 2. 하나님과 은밀한 관계의 기도, 3. 기도를 시간을 채우려고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것 등으로 이해되며,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문은 우리 기도의 모형이 된다. 주기도문의 요지는 1.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 2.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 3. 일용할 양식을 구함, 4. 내가 타자의 죄를 용서한 것 같이 내 죄를 용서해 주실 것, 5. 시험을 당하되 이기게 해 주실 것, 6. 하나님 나라의 영원성을 찬양한다.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6장에서 더 완벽하게 기술되었고 누가는 주기도문 외에 기도자의 참된 자세를 기술한다. 참 기도는 끊임없이 낙심하지 말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는 다 이루어 주신다.구하라 주실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에게 열릴 것이다.”

 

 

[예수와 바알세불] (11:14-26; 12:22-30; 43-45; 6:43-45; 3:20-27)

 

  예수님은 모든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다. 이에 대한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일반 서민은 그런대로 세례도 받고 따르기도 하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층인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에게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이적과 기사가 현실로 나타났으니 부정할 수 없게 되었으나 그것이 마귀의 대장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행한 것이라는 신성모독을 말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1. 마귀가 마귀를 내어 쫓았다면 내분인데 말이 되는가? 2. 예수님은 마귀 대장도 결박할 힘이 있으심을 보였고, 3. 예수님을 따르는 자와 반대하는 자는 이분법으로 나누어짐을 설명하신다.

 

[참된 복을 받은 사람] (11:27, 28)

 

  복이 있는 자. 진정으로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가진 자이다. 이들은 시편 1편에 있는 말씀대로 악을 행치 않으며,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한다. 그다음 이런 사람은 율법에 순종하게 되는 사람이다.

 

[표적을 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11:29-32; 12:38-42; 8:8-12)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를 보아왔다. 그런데 무슨 표적을 구했을까?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이다. 눈에 보이는 세속적 권력 즉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왕권의 회복이다.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예수님이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었다. 즉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표적이다. 메시아사상은 이렇게 나누어져 있었다.

 

  * 남방 여왕은 솔로몬을 방문한 스바의 여왕(왕상10:1)을 이른다.

  * 니느웨(Nineveh) 아시리아의 최후의 동방 수도(왕하19:36)로 현재 이라크 북쪽 티그리스 강 동쪽, 유셀 강의 합류지점에 있는 모슬 건너편에 위치한다(1:2). 요나가 회개를 촉구한 곳이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다.](11:33-36)

 

  이 단락의 내용은 표적을 구한 서기관(율법사)과 바리새인에게 계속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다. 눈이 밝다는 뜻을 영적으로 해석한다면 영적 눈이 밝다고 해야겠다. 20세기 후반에 우리 사회는 패러다임(paradigm)에 관한 논쟁을 많이 해왔다. 그리고 paradigm이 계속 이동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Paradigm은 렌즈()와 같은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모두 믿음직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의심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모두 회색빛이 된다. 믿음의 눈이 밝으면 세상은 정말 밝고, 아름답고, 찬란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으며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은 나에게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도 비추어 그 역시 밝음에 거하게 한다. 진정한 전도는 이런 생명력을 나누는 역사(役事)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외식(外飾): 행태] (11:37-54; 23:1-36; 12;38-40; 20:45-47)

 

  이 단락에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율법사)들에게 미칠 화를 기술한다. 마태복음에서도 이들에게 미칠 화를 기술하였다. 그 내용은 서로 다른 점이 있다. 대비해서 이해하면 좋겠고 누가의 기술이 더 생생하다. 마태복음의 내용은 1. 행함이 없는 말만 하는 자들이다. 2. 무거운 짐을 남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끝도 움직이지 않는 자이다. 3. 남에게 보이려고 성경 구절을 옷에 붙이고 다니는 자들이다. 4. 잔치에서 윗자리에 앉는다. 5.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는다. 6. 시장에서 문안을 받는 자들이다. 7.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다. 이상 7가지인데 비해 누가는 6가지 화를 언급한다. 1.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公義)와 하나님 사랑은 버렸다. 2.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한다. 3. 너희는 평토장(平土葬)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한다. 4. 지기 어려운 짐을 타자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끝도 데지 않는다. 5.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이다. 6. 지식의 열쇠를 가졌으나 자기도 타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 사가랴(Zacharias)² “여호와는 기억하신다.”는 뜻으로 남조 유다 요아스 왕때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와 동일 인물인 것 같다. (대하24:20-22)

 

 

<12 >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진리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주의하라] (12:1-12; 10:26-33; 12:32; 10:19, 20)

 

  앞 단락에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6가지 화를 선포하셨고 그들은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된 상황이다. 이 결과는 예수님 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에게도 미칠 수난을 예고한다. 바리새인들은 외식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을 누룩으로 표현하셨다. 썩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밀히 전한 메시지는 공개적으로 전하고 수난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어떻게 대처할까? 어떻게 대답할까? 염려하지 마라. 성령께서 그때그때 대응 방안을 주실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에게 시의적절(時宜適切)한 대응 방안을 주신다. 믿음의 사람은 내일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육은 죽이지만 영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는 두렵지 않다. 그러나 영을 죽이는 것은 진정 두려운 일이다. 이때 예수님은 배교(背敎)를 경계하신다.

 

  * 앗사리온(assarius)은 로마 화폐로 데나리온의 1/16이다(10:29). 데나리온은 노동자 1일 급료이다.

 

[한 어리석은 부자 비유] (12:13-21)

 

  세상 재물로 만족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훈이다. 비록 재물을 쌓았다 하자 죽으면 무엇에 쓰며 그것이 누구의 소유가 될까? 소유자(owner)는 자기 재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재물을 관리하는 자(manager)는 아무리 많은 재물이 있어도 부자는 아니다. 우리의 건강, 지식, 능력, 재물은 모두 그분의 것이다. 우리는 잠시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다. 인간의 소유욕은 욕심을 낳게 하고 사람을 병들게 하고 넘어지게 한다. 재물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청지기로서 선하게 나눔과 섬김에 사용하도록 하신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12:22-34; 6:25-34)

 

  목숨과 몸을 위하여 염려하지 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여 주실 것이다. 인간의 염려는 끝이 없다. 그러나 염려를 통하여 이루는 것은 없다. 다만 건강을 해치고 정서적 불안만 가져올 뿐이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염려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른다. 이때 천국은 그 심령에 임하여 이루어진다(17:20, 21). 세상을 초탈한 자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평화가 넘치고 지상 천국을 이루게 된다.

 

[깨어 준비(오늘의 완성으로)하라] (12:35-48; 24:45-51)

 

  사람들이 세상 향락에 빠져있게 되고 죄를 짓고 무감각하게 지낸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처럼 놀라고 이를 가는 일이 생기게 된다. 때를 모르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세상과 짝하여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12:42 이하에서 착하고 신실한 종은 무엇을 의미할까? 매일 주님 오시는 날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이 종말이라 생각한다. 인생에는 종말이 3번 있다. 1. 우주적 종말 즉 예수님 재림으로 세상이 끝나는 날, 2. 개인적 종말 즉 개인의 죽음이다. 3. 시간적 종말이다. 현재는 내가 사는 시간이면서 종말이다. 이 시간을 주님 영접하는 시간으로 산다면 그는 착하고 신실한 종이 될 것이다. 매일 여호와의 날로 알고 살아간다면 하나님 앞에 복을 얻은 사람이다. 준비라는 개념은 없다. 다만 오늘을 충실히 하면 자연 그것이 내일의 준비가 된다. 그래서 오늘을 희생하여 내일을 준비한다는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새로운 가치에 대한 도전] (12:49-53; 10:34-36)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전통에 대한 가치가 도전받는다. 율법주의, 장로의 전승,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 즉 믿음의 은총의 생활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분쟁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신다. 예수의 출현은 기존 가치관에 대해 새로운 가치관을 던져주는 것이기에 가족 간에 불화가 일어나게 된다. 지금까지 부패와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어서 그들은 깊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가족 간에도 불화할 수 있다. 친구 간에도, 이웃 간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천기(天氣)를 알듯이 시대를 알고 회개하라] (12:54-59; 5:25, 26; 16:2, 3)

 

  시대를 분간하고, 화해하기를 힘쓰라는 것이 본문의 요지이다. 그러나 말세가 다가오고 세상은 악해진다. 이 단락에서 화해를 강조했지만, 이는 죄악에 대한 회개의 촉구로 보아야 한다.

 

  * 이스라엘의 서풍은 지중해에서 오는 바람이기 때문에 비를 갖고 있다.

  * 이스라엘의 동남풍은 건조한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기 때문에 건조하고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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