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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칼럼] 예수 먹고, 예수 마시고, 예수 숨쉬며, 예수 살자

다시 읽는 김준곤 목사의 ‘예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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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기사입력 2021-08-01

 

▲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어느 행복한 가정에서 티 없이 자란 처녀가 멋모르고 옛날 바리새만큼이나 엄하고 까다로운 규례와 의식이 많은 가정으로 시집을 갔다. 시집 풍속과 남편은 모두 분위기가 그녀에게는 공산 세계만큼이나 이질적이었다. 밥 먹는 것 옷입고 자고 말하고 웃는 일 걷는 일 하나하나 야단이고 트집이었다. 들 사슴이나 산새만큼 자유롭게 뛰고 훨훨 날던 옛날을 생각하면 모두가 감시하고 형무소 간수들 같이 무섭기만 한 눈총들 속에 그녀의 삶의 보든 공간과 시간은 미칠 것만 같았다. 한숨이나 눈물은 더 미움 받는 조건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을 원망하며 억눌린 울분을 열화산 같이 터뜨리며 대든 것이 화근이 되어 남편에게 얼굴이 터지도록 얻어 맞았다. 그날부터는 온 식구가 그녀를 미친 여자, 귀신들린 여자라고 숙덕거렸다. 사태는 악화되어 드디어 정신 병원에 강제로 수용되고 남편은 딴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정신 병원 의사 중 한사람이 새로 와서 그녀를 담당하여 대화를 나누는 중 너무도 순수하고 고운 품성을 그녀에게서 발견하고는 정신 병원에서 퇴원시켜 아내로 삼았다. 우는 것이 곱고 밥 먹고 자고 급하게 뛰어다니고 좀 촌스럽게 입는 옷차림 그리고 아무렇게나 야성의 여인처럼 자는 모습 등 전에는 마흔 가지도 더 되게 미움 받고 야단맞던 일들이 모두 사랑으로 변했다.

이 예화 속에서 율법과 은혜, 정죄와 사랑의 두 대조적인 남편을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율법이 그 자체는 아무 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 앞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사도 바울을 포함해서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사형수다. 바리새는 그 율법으로 예수님도 죽인 사람들이다. 율법의 의로는 의롭다할 육체가 없다. 그것은 꼭 죽을 병을 진단은 하면서 치료할 줄 모르는 의사와 같이 율법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있는 것이나 같다.

내가 나를 율법으로 대할 때 나는 그녀의 전 남편 앞에서처럼 정죄와 비난 속에서 도덕적, 영적 사형수 생애를 면 지 못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보혈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죄는 속죄 받아 이제는 정죄에서 자유 함을 얻은 자녀나.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진짜 진짜 진짜 영원한 절대 사랑인 아버지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다. 비록 탕자가 되는 경우도 아버지의 사랑과 연민은 더욱 안타까울망정 부자 관계와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천지가 변해도 이 약속, 이 사랑, 이 은혜는 안 변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다시 율법화의 사엽 같은 것을 가져오려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하늘의 천사라도 저주받으리라고 했다. 기독교의 경건 하고 열심 있는 분들도 부단히 들어오는 율법주의의 함정에 빠지고 그 올가미에 자주 걸리고 만다. 내 언행 심사 간에 하늘처럼 맑고 투명 하여 티끌만큼도 고백 안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가 없어야 성령이 나를 사랑으로 상대한다는 생각은 듣기에 옳은 말 같지만 율법적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이 없는 놈이고 전도에도 게으른 놈이며 거짓되고 성서의 30가지 죄목마다 영적으로는 다 범한 듯하다. 그래서 율법 앞에서는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 사망의 몸이다. 그러나 율법 앞에서는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율법이 죽은 자를 고발하는 힘은 없다. 우리가 나 자신을 율법적으로 대해서도 안 되지만 형제를 율법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사나운 바리새 검사가 된다. 사랑으로 아내를 보고 자식을 보듯 형제도 은혜로 보아줘야겠다.


예수 먹고, 예수 마시고, 예수 숨 쉬며, 예수 살자. 그는 우리 영생 떡, 영생 수, 그는 우리 피요 살이다. 포도나무다. 목자다. 아버지다. 힘이고 지혜다. 그는 내 사랑이요 평안이요. 기쁨이요. 찬송이시다. 나는 그의 대기 속에 성령을 숨 쉬고 산다. 필요한 것 마다, 소원 마다 채워 주신다.

사실을 사실로 안 믿는 것은 불신이고 사실 아닌 것을 사실처럼 믿는 것은 미신이고 광신이다. 그러나 사실을 사실로 믿고 그 사실을 소유하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예수는 나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신앙이다. 성경에 혼인 잔치, 신랑 신부로 우리와 주님 사이를 가르친 곳이 많다. 신랑 신부의 혼인식의 최고의 덕은 사랑이고 기쁨이고 환희와 행복을 만끽 하는 것이다. 우리가 도적맞은 것들이 있다. 선악과 먹은 후로 도덕의 나무, 지식의 나무에 매달려 생명나무를 상실했다.

예수안의 새 생명, 새 생활은 사랑의 성령 세례 받아 신랑 신부의 밀월 시간을 소유하는 것인데 전 인류를 죽인 율법주의가 몰래 우리 속에서 판치고 있다. 가나안의 안식보다 광야의 방황과 고생길의 로마서 7장의 탄식을 듣는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신학이나 객관적 성경 지식, 선행 같은 것이 성령은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령으로, 내 영 속에 지성소처럼 내주하시니 내 종교성, 도덕성과 이성과 양심의 한 끝 하늘 끝 땅끝까지 다해도 내게는 없는 주의 기쁨, 주의 평안, 주의 사랑, 주의 생명, 주의 충만을 믿음으로 순간순간 숨 쉬고 먹고 마시며 살자. 이 비밀을 재발견하고 재활용하자.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이라는 쌍손 선교를 실천한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의 <예수칼럼>. 한국 기독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참된 신앙인인 저자의 선지자적 영감과 시적 감성으로 쓰인 잠언록이다. 민족과 역사,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외침을 담아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고백뿐 아니라,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우리 영혼을 전율시킨다. 출간 이후 최장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써 수많은 젊은 지성인들의 영혼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예수칼럼>은 파스칼의 <팡세>에 필적할 만한 현대적인 고전으로 평가되며, 특히 문체의 간결성과 심오한 기독교 사상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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