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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설교]“드림과 나눔의 삶을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보은 창성교회(2021.8.1) 주일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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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기사입력 2021-08-01

 

성경:12:1, 딤후 2:15, 13:16

 

저는 함대붕 목사님과 김미자 사모님 부부가 목회 사역과 섬김의 사역을 충성스럽게 잘 하고 있는 보은 창성교회를 아주 좋아하는데 제가 2008622일 주일부터 2021321일 주일까지 지난 13년 동안 17번 보은 창성교회를 방문하면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2181일 주일 18번째로 와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보은 창성교회 성도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아침에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의 진솔하고 간절한 고백적인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지난 324일 함대붕 목사님에게 나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그리고 드림과 나눔의 삶을 살다가 죽기를 바라는 소원과 기도에 대한 설교를 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함대붕 목사님이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나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그리고 드림과 나눔의 삶을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라는 제목으로 진솔하고 처절한 고백적인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 말씀을 전하는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제일 먼저 147개월 전인 200713일 아침 제가 강변교회로 운전하며 가면서 자동차 속에서 사랑하고 싶어라라는 고백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고백의 글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주님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한 평생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과 사랑이 어찌 그리 크고 어찌 그리 많은지! 실로 모래알보다 더 많은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나의 가슴에 눈물을 자아낸다. 사랑하고 싶어라.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어린이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귀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 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모슬렘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200713일 아침 교회로 운전하며 오는 차 속에서 쓴 글)

 

그 다음 36개월 전인 20171228일에 제가 나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라는 고백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고백의 글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밤에 들어 누어 자면서 나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미쳐서 살다가 미쳐서 죽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도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면서 즉 나의 지식과 나의 업적과 나의 명예 등 내가 귀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면서 모두 내어버리고 그리고 가난과 고난을 몸에 지니시고 오직 나 위해서 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성자 예수님의 사랑에 미치고, 나 대신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서 죽게 내어버리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고,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나 위해서 탄식하시면서 기도해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서 살 수는 없을까? 이것이 제가 가슴에 지니게 된 나의 간절한 소원과 기도였습니다.

 

사실 저는 저도 모르는 가운데 저 자신의 지식과 저 자신의 업적과 저 자신의 명예에 치우쳐서 스스로 속아넘어가면서 위선과 독선을 지니고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처절한 고민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 평생 목회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교수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선교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섬김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구제의 일도 잘 했는데, 나는 지금도 은퇴 후 작은 교회들을 주일마다 방문하면서 순회 목회의 일도 잘 하고 있는데, 나만한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을 텐데.” 저는 이와 같은 위선과 독선 의식에 사로잡혀서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처절한 고민을 하나님 앞에서 토로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위선과 독선으로 가득한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몽둥이로 쳐 주시옵소서. 신앙의 선배님들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하는데, 스데반 집사님과 폴리캅 감독과 성 프랜시스와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하는데, 신앙의 선배님들을 닮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위선자를 몽둥이로 쳐 주시옵소서. 손양원 목사님께서 주님 사랑에 미치시고, 나환자 사랑에 미치시고, 원수 사랑에 미치시고, 순교 사랑에 미치시고, 천국 사모에 미쳐서 사시다가 죽으셨는데,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고, 나환자 사랑에 미치고, 원수 사랑에 미쳐서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앞서 가신 신앙의 선배님들이 사시다가 죽으신, “미친삶과 미친죽음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성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2017.12. 28)

 

그 다음 18개월 전인 2019121일에 제가 드림과 나눔의 삶을 살다가 가볍게 하늘 집으로 올라가게 하시옵소서라는 간단한 기도문을 쓴 일이 있는데 그 간단한 기도문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 베푸신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제물로 다 드리고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도움과 섬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는 드림나눔의 삶을 살다가 아주 가볍게 하늘 집으로 올라가게 하시옵소서!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성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2019.12.1).

 

결국 저는 17개월 전인 2020126일 수원 동문교회에서 드림과 나눔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고, 6개월 전인 202127일 문경 예스교회에서 드림과 나눔의 귀중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는데 오늘 문경 예스교회에서 한 간증 설교를 거의 그대로 조금 수정 보완해서 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을 드림과 나눔의 삶을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라고 정했는데 이 제목은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드림과 나눔의 삶은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너무 소중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최근에 저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는 처절한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회개의 삶과, 저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모두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드림의 삶과 그리고 이웃과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 나누어주는 나눔의 삶을 살다가 가볍게 죽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구원 받은 죄인들에게 있어서 회개의 삶과 드림의 삶과 나눔의 삶을 살다가 죽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더 소중한 삶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드림과 나눔의 삶을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라는 제목의 간절한 소원과 기도의 설교를 하려고 하는데 먼저 회개의 삶을 살게 해달라는 간절한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저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수하고 처절한 회개의 제사를 드리고 또 드리면서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들로 가득한 우리 죄인들로부터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죄와 허물을 진솔하고 처절하게 고백하는 회개의 제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평생토록 순수하고 처절한 회개의 제사를 드리면서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1,3,5).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51:16,17).

 

다윗의 뒤를 이어 맨날 울면서 처절한 회개의 제사를 드린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수치스럽고 저주스러운 온갖 죄악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드러내면서 회개의 고백을 하고 또 하고 또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21-24).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 4:13).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포 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3-15).

 

사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귀중하게 쓰임을 받았던 신앙의 선배님들은 모두 순수하고 처절한 회개의 제사를 드리면서 살았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성 프랜시스도 마르틴 루터도 존 칼빈도 존 웨슬레도 길선주 목사님도 이기풍 목사님도 주기철 목사님도 이성봉 목사님도 김치선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한경직 목사님도 박윤선 목사님도 모두 평생토록 울면서 회개의 제사를 드리고 또 드리면서 살다가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제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힘입어서 저 자신의 죄와 허물을 무엇보다 먼저 진솔하고 처절하게 고백하는 회개의 제사를 날마다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다가 죽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솔하고 처절한 회개의 제사를 날마다 드리면서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

 

둘째로, 저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일 성수의 예배와 함께 저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모두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제물 드림의 삶을 살다가 제물 드림의 죽음을 죽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성구 대사전을 찾아보니까 여호와께 드리며” “여호와께 드리며” “여호와께 드리며라는 말씀이 50여번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제물 드림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22:1,2). 아브라함은 성부 하나님의 분부를 받자 마자 즉시 아침 일찍이 일어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산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잡아서 번제를 드리려고 했습니다(22:9,10).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절대 순종드림의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너무너무 놀라시고 감격하셨을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서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절대 순종드림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 그리고 절대 믿음절대 순종드림의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서 천하 만민이 큰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까지 선포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22:15-18).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제사를 드리고 또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드림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 결국 다윗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가 태어나게 하셨고 메시야가 태어나셨을 때 예수님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1:1) 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사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잡아서 제사를 드렸을 때,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다윗이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제사를 드렸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 받으시면서 저들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어린 소년 하나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을 때, 베다니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었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 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을 때, 성자 예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저들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제물 드림의 삶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답고 더 축복된 삶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5).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제물로 드린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사실 기독교는 드림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받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드림을 기뻐 받으시면서 우리들을 축복하십니다. 저는 아무 자격이 없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저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일 성수의 예배와 함께 저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모두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드림의 삶을 살다가 드림의 죽음을 죽는 것이 저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이렇게 찬송을 부릅니다.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주소서 손과 발을 드리니 주여 받아주소서 나의 음성 드리니 주여 받아주소서 나의 보화 드리니 주여 받아주소서 나의 시간 드리니 주여 받아주소서 평생토록 주 위해 봉사하게 합소서.”

 

셋째로, 저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로 하여금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의 삶을 살다가 나눔의 죽음을 죽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로부터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주일 성수의 예배의 제사와 함께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일 성수의 예배의 신앙이 너무너무 귀중하지만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을 무시하는 것은 올바른 주일 성수의 예배의 신앙에서 벗어난 심각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우리들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즉 영적 예배로 드리라는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바쳐서 우리들의 이웃과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구약과 신약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학대 받는 자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아보지 않는 제사와 제물과 기도를 받지 않으신다고 지적하시기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1:11,15,17).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와 금식은 주린 자와 벗은 자와 어려움에 처한 자를 돌아보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와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58:6-8).

 

성자 예수님께서도 꼭 같은 아니 좀 지나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웃은 물론 원수들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모든 자들을 돌아보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영생에 들어가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3-48).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너희는) 영생에 들어가리라”(25:34-36,40,46). 히브리서는 선행과 나눔이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라고 지적했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13:16). “나눔이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나눔의 삶을 살라고 말씀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모든 것을 우리 죄인들과 함께 나누시는 나눔의 삶을 사셨습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들과 함께 나누셨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6-28).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양들과 함께 나누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평안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14:27).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기쁨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습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15:11). 성자 예수님께서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까지 우리 죄인들과 함께 나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3).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25:21). 얼마나, 얼마나 고맙고 황송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받기를 좋아하고 빼앗아서라도 많은 것을 소유하기를 좋아하는데 성자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시고 모든 것을 우리들과 함께 나누셨습니다. 하늘 영광도 버리시고 하늘 영광까지 우리들과 함께 나누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제가 신앙의 선배님들의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의 삶을 본 받기를 소원하면서 국내외의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의 삶을 사느라 애를 쓰기는 했지만, 저의 남은 생애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소유와 생명을 다 바쳐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의 삶을 충만하게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의 간절한 마지막 소원과 기도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제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사도 바울과 신앙의 선배님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이웃과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와 우리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웃과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의 삶을 충만하게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

 

다시 말씀 드리지만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와 우리들이 매일 매일 평생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몸과 마음과 시간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제물 드림의 삶을 살다가 제물 드림의 죽음을 죽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웃과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나눔의 삶을 충만하게 살다가 나눔의 죽음을 가볍게 죽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때 그리고 이웃과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눌때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올라가는 보석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 하시고 우리 주변 사람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제가 10년 전에 쓴 기도문을 그대로 읽어 드리므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의 모든 죄악을 주님의 피로 도말 시켜 주시옵소서.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들과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지극한 관심을 가지시고 찾아가서 어루만지시며 돌아보신 것처럼, 저도 작은 교회들을 찾아가서 위로와 도움과 격려의 손길을 계속해서 펴게 하시고 그리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와 도움과 격려의 손길을 펴게 하시옵소서!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사도 바울과 주님의 제자들을 본받아서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을 본받아서 주님과 누군가를 위해서 특히 고통 당하는 북한 동포들과 모슬렘 형제들을 위해서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하시옵소서! 미움과 분노와 증오가 있는 곳에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심고 분열과 갈등과 대결이 있는 곳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심는 작은 거름과 작은 씨앗이 되게 하시옵소서! 유창한 설교나 심오한 신학 강의를 하기 전에 주님께서 지니셨던 긍휼의 눈물을 지니게 하시고 주님께서 품으셨던 사랑의 심장을 지니게 하시고 주님께서 지니셨던 죽음의 흔적을 지니게 하시옵소서! 죄인 중의 괴수가 주님께서 흘리신 대속의 피와 순교자들이 흘린 충성의 피를 의지하며 그리고 성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인자와 사랑을 의지하며 성자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국교회와 한국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북한동포들과 일본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아멘!”(2011.3.29)

 

보은 창성교회 함대붕 목사님과 김미자 사모님과 성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축복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회개의 삶과 드림의 삶과 나눔의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찬송가 나의 생명 드리니”(348)를 부르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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