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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우파 김구 선생 ④

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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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기사입력 2006-03-07

백범이 다섯 살 때에 강렬(康翎) 산골로 이사를 갔다. 지주들과 관의 횡포에 시달리다 못해 해변가로 피해 간 것이다. 『백범일지』에서 그곳 생활을 다음 같이 쓰고 있다.

“우리 집이 어떻게나 호젓한지 호랑이가 사람을 물고 우리 문전으로 지나갔다. 산 어귀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우리 집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밤이면 한 걸음도 문 밖에는 나가지 못했다.”

그는 4살 때 천연두를 앓아 생명만은 건졌으나 진한 곰보 자국을 남기게 되었다. 백범의 기질은 의협심이 강하고 활달한 아버지와 자애로우면서 강단이 있는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았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유달랐다. 그가 일본 밀정 스치다(士田讓亮)를 죽인 일로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 감영에 수감 되어 있을 때다. 그의 어머니는 인천항의 물상 객주집 침모로 있으면서 그 품삯으로 아들의 옥바라지를 하였다. 그가 출옥한지 얼마 후 친구들이 위로한답시고 기생을 불러 주연을 베풀었을 때에 그의 어머니께서 그를 불러 호되게 나무라기를 “내가 여러 해 동안 고생을 한 것이 오늘 네가 기생을 데리고 술을 먹는 것을 보려고 한 것이었더냐!”하고 나무랐다.

그리고 훗날 그가 신민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17년의 징역형을 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옥살이 하던 때에는 그의 어머니가 면회를 와서 다음 같이 말하였다.

“나는 네가 경기 감사나 한 것보다 더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 식구는 잘 있으니 염려 말아라. 옥중에서 네 몸이나 잘 돌봐라”

훌륭한 일꾼들에게는 언제나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는 말이 있듯이 백범의 어머니가 한 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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