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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생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수용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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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해/김진순
기사입력 2006-06-11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려면 제일 먼저 왜 결혼해야 하는지와 결혼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운전면허를 따는 것만큼도 결혼을 위해 준비하지 않는다. 그냥 ‘휠 (feel)’이 오면 결혼한다. 이런 ‘feel’은 짧으면 18개월이고, 길면 30개월 안에 사라진다고 한다. 결혼을 위해 준비한다면서, 실은 집을 마련하고 가구를 마련하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동차보다 더 복잡하고 중요한 부부관계를 어떻게 운전해야 할지를 배워야 하는데, 그런 것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많은 가정에서 사고가 나 부서지고 깨지고 심한 상처를 입고 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첫째, 결혼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 결혼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희생하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주님을 진심으로 순종하며 섬기는 교회와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엡 5:31-32).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함께 살기 위해 결혼이 존재한다. 자신을 위주로 사는 가정에 진정한 평화는 없다.


둘째, 행복한 부부 관계의 비결은 배우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 배우자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배우자 이외에 그 어떤 다른 것이 부부 사이에 들어와 있을 수도 있다. 양가 부모나 가족일수 있고, 사업이나 업무일수 있고, 돈이나 명예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살도록 지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자기 배우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채워줄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자에게 관심이 있어야 한다. 사랑을 ‘i love you!’ 라는 언어의 추상적인 관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의 반대인 무관심이 아니라,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배우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배우자를 위해서 시간을 내는 것이다. 상대방과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결혼은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거의 30년을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았다. 생각하는 것, 문제 해결방법도 다르고 식성과 습관이 다른 것은 물론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생각하는 실체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생각한다. 여자는 섬세하고 청각과 촉각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부드러운 말로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면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엄청난 큰 선물이나 희생이 아니다. 부드러운 음성의 관심과 따뜻한 마음으로 손만 잡아 주어도 된다. 이런 표현을 제비족이 아니라 남편이 해야 한다. 남자들은 아주 단순하고 충동적일 경우가 많이 있다.


남자는 주로 시각과 미각과 후각이 발달하였다.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고 인정해주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집안을 모양새를 단정히 하고,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주면 좋겠다. 부부가 서로를 감동시키기 위해 늘 준비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 아주 중요한 것은 가정과 결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부부 사이를 연결시켜주시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과 능력은 한계가 있다. 때로는 남편도 아내도 절망하고 힘들어하고 포기하기 직전까지 갈 수 있다. 이때 우리 인간의 원형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두 사람을 회복시켜주시기를 기도드리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번 살아보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연결될 때,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닥쳐와도 이 부부의 사랑의 유효기간은 영원하다.

‘남편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라고 생각될 때, ‘주님이 나를 용서하셨지. 나도 최소한의 아량을 남편에게 보여야할 것 같아’(“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18:32-33)라고 생각을 바꿔보자.


‘남편이 내게 상처를 주려고 고의적으로 그랬어.’라고 섭섭할 때, ‘남편이 왜 그렇게 했는지 하나님만이 아신다.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믿는 것이 나의 책임이다’(“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7)라고 마음을 고쳐먹자.


‘직장에서 기분 나쁜 것을 집에까지 가져와 나에게 쏟아 붓다니!’라고 화가 날 때, ‘아마도 직장에서 너무 힘들었나보다’(“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4:31-32)고 이해해주고 믿어주기로 한번 결심해보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해하는 마음과 믿음을 축복하실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억울하고 원통해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논문에 의하면, 인간은 용서하지 못할 때 우울증, 고혈압, 위경련, 격렬한 분노, 편집증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은 용서할 때 감소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있는 모든 분노와 원통함을 품고 살지 말고 먼저 이해하라. 용서하라. 용서하는 것이 바로 내가 사는 길이다. 축복하는 길이 바로 내가 사는 길이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9-21).


“자네도 이젠 중늙은이야”

우리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말할 때 물론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포함하지만, 그것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나쁜 것 속에는 약점이나 부족한 것도 포함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와 다른 점까지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고, 불편해 하고 가능하면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것은 온 인류를 각각 다르게 다양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어긋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화적인 차이 특히 음식의 차이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학습된 음식만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 차이점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 사람은, 다른 음식을 즐기는 법도 배우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다른 사람보다 2배 4배로 풍성하게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골라 사는 법을 학습해야 할 이유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의 문제는 특히 결혼생활에 적용된다. 많은 부부가 다투는 이유 중에 하나는 친정과 시집의 관계 때문이다. 한국에서 많은 부부가 1년 안에 이혼하는 이유가 바로 시집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은 배우자의 가정을 나의 가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법을 배울 때, 우리의 삶은 몇 배로 풍성한 삶이 될 수 있다.


필자는 딸 없이 남자 형제만 다섯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 집안에서는 어머니 혼자만 여자였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교제를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가 집에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이었다. 가서 처가 식구들을 만났을 때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처는 딸만 여섯 있는 집의 둘째였고, 남자 형제는 막내처남 혼자였다. 그리고 결혼 당시 처남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말만한 처제들이 와서 “형부, 형부!”하면서 팔에 매달릴 때, 아주 어색했다. 아무 상관이 없는 처녀들이 내게 형부라는 호칭으로 접근할 때, 실감이 안 갔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 했고 부부가 되었다. 결혼은 전혀 다른 남녀가 만나서 한 몸을 이루는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서 필자는 장인을 아버지로 장모를 어머니로 부르고 모시게 되었다. 처제들은 내게 동생이 되었다. 왜냐하면 필자와 아내는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필자와 다른 생활 습관으로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그렇게 살기 시작하면서 필자는 점점 처제들이 가장 가까운 자매들로 느껴지기 시작하였고, 또 함께 살아나가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필자가 미국에서 얼굴 반쪽이 마비되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제일 먼저 약을 지어 보내준 사람은 바로 밑의 처제였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선교 단체에서 사역하였다. 그때도 제일 열심히 기도해주고 물질로 후원해 준 사람들도 바로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 같던 처제들이었다. 필자는 친아버지 어머니를 먼저 주님 품에 보냈다. 그러나 또 다른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지게 되었다. 바로 장인이고 장모였다. 처가에 가면 장모님은 제일 먼저 아직도 닭을 잡아 주시고 또 장인어른은 정치 코드가 맞아서 대화가 늘 재미있게 진행 되었다. 장인은 지금 주님 품에 가셨지만, 살아계실 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면서 항상 인자한 아버지로 따뜻한 인사를 주셨다. “날씨가 추우니까 감기 조심해, 문단속하고, 아이들 조심시키고. 건강에 조심해야 돼. 김 박사, 자네도 이젠 중늙은이야!” 이 따뜻한 사랑의 대화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부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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