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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반도의 문제점

근거없는 적개심과 증오감을 고취시키는 '나쁜 영화' 의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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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식
기사입력 2006-07-22

영화 ‘접속’ 과 ‘텔미썸씽’ 을 본 이후, 나는 장윤현의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오랜 장고 끝에 장윤현이 세 번째 작품인 ‘썸’ 을 내놓았을 때, 나는 개봉 첫 날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나는 맥이 확 풀어졌다. 영화가 완전 꽝이었던 것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는 장윤현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영화 ‘실미도’ 를 보고 난 뒤, 나는 강우석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번에 강우석이 ‘왕의 남자’ 의 기록을 깨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자신만만하게 ‘한반도’ 를 내놓았을 때, 나는 꽤 큰 물건이 나왔으리라고 기대했다.
   
▲ 국제법의 기본조차도 무시한 엉성한 헤프닝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한반도’ 는 장윤현의 ‘썸’ 만도 못한 영화였다. 아니, 뭐 이 따위 영화가 다 있단 말인가? 70~80년대, 한국 영화들 중에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로 관객을 우롱하는 영화들이 즐비했었다. 그런 영화를 돈 주고 보고 나면 하루 온 종일 화딱지가 나곤 했다. 그런데 ‘한반도’ 가 영락없이 그런 영화다. 나는 한반도를 보고 난 뒤, 강우석을 개떡으로 여기게 되었다. ‘한반도’는 오로지 ‘민족감정의 고양’ 이라는 근육질적인 스토리로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근거없는 적개심과 증오감을 배태케 하는 ‘나쁜 영화’ 의 전형이다.

국제법의 기본조차도 무시한 엉성한 헤프닝으로 영화 ‘한반도’ 는 시작되는데 ‘우리 민족끼리’ 의 남북통일에 기여할 경의선 철도 개통 직전, 일본이 결정적인 훼방을 놓으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주한 일본대사가 1910년 ‘한일합방조약문’ 제8조의 조문을 법적인 근거로 들이대며 경의선 철도 개통을 방해하는 것이다. ‘한일합방조약문’ 제8조에는 “한국 황제 폐하는 경의선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라고 명시되었으므로 일본의 허락없이는 경의선의 개통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 싸 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한일합방조약문’ 에는 영화에서 언급한 제8조의 내용이 없다. 설령 그런 조문이 실재(實在)한다고 치자. 그리고 영화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이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국가간의 약속인 ‘한일합방조약문’ 을 지켜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일본은 제8조의 경의선 철도 개통권을 주장하기 보다는 제1조에 명시된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모든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 를 주장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할 터이다. 그러면 경의선에 대한 권한은 물론, 한반도 전체를 통치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 가장 가깝게 지내야 할 이웃 나라를 이렇게 악의적으로 모함해서야 쓰겠는가?


영화 ‘한반도’ 는 허무맹랑한 스토리를 꾸며내기 위하여 1945년 일본의 항복과 함께 영구히 폐기된 ‘한일합방조약문’ 을 들고 나온다. 또한 영화의 도입부에 일본의 낭인들이 민비를 잔인하게 척살하는 매우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줌으로서 관객들의 피끓는 공분을 유도한 뒤, 지금도 여전히 일본은 ‘한일합방조약’ 당시의 굴욕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극악한 국가임을 넌지시 암시한다. 분별력없는 청소년들은 이 영화를 보며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힐 게 뻔하다.

영화에 나오는 대통령(안성기 扮)은 일본의 불의한 요구에 결연히 맞서는 민족지도자로, 국무총리(문성근 扮)는 일본의 요구에 응하는 사대주의자(수구꼴통)로 묘사된다. 영화를 보던 중 객석의 한 청년이 고종에게 간하는 친일(親日) 모리배를 향하여 “에라, 이 xx놈아!” 하고 큰 소리로 욕을 하였고 관객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나도 웃었지만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아무리 픽션이요, 영화라지만 가장 가깝게 지내야 할 이웃 나라를 이렇게 악의적으로 모함해서야 쓰겠는가?

그러나 막상 강우석은 ‘한반도’ 의 시사회에서 “일본에 대해 무작정 할퀴고 그런 영화는 아니다” 며 “이 영화의 결론은 우리끼리는 적어도 잘 해보자는 것” 이라고 말했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그야말로 뻔뻔스럽기 짝이없는 변명이다. 이건 마치 사람의 면전에 가래침을 확 뱉고 나서 당신이 미워서 그런 건 아니라고 타이르는 것과 같다. 아무리 ‘민족’ 과 ‘애국’ 을 강조했다지만 이래선 안 된다. ‘한반도’ 는 최소한의 상식과 염치도 없는 영화다. 오로지 ‘혐일(嫌日)감정의 고양’ 이라는 한가지 목표를 향하여 일직선으로 돌진할 뿐이다.

강우석의 장담대로 영화 ‘한반도’ 가 ‘왕의 남자’ 를 능가하는 흥행을 거둔다면 그것은 마치 ‘조폭 마누라’ 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 것처럼 웃기는 일이 될 것이다. 다른 건 다 제쳐놓고 영화적인 재미로만 따지더라도 ‘한반도’는 수준 이하다. 스토리를 억지로 쥐어 짜서 만들다보니 곳곳에서 말도 안 되는 모순된 장면들이 속출하였다. 초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반일(反日)감정을 최대한 자극시키는 게 목적이다보니 모든 배역의 출연진이 한결같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사자후를 토하는 경직된 연기를 펼쳐야 했다.

70~80년대, 일본 관리가 망언을 할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삭발을 하고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썼다. 그러나 그것은 ‘극일(克日)’ 이 아니라 ‘반일(反日)’ 이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증오심을 잔뜩 부풀림으로서 상대의 죄책감을 억지로 유도해내는 일종의 자해소동이다. 일본은 그럴 때마다 약간 미안한 척 했을 뿐,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딴청을 부렸다. 어쩌면 지네들끼리 히히덕 거리며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증오가 노예적 열등감임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말이다.
   
▲ 진정한 극일을 하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그에 걸맞는 국력이다.


그랬던 일본인들이 2006 월드컵 예선전에서 “같이 가자!” 고 우리에게 통사정을 하는 비굴함을 보였다. 그러자 우리 청년들은 “그래? 알았어, 같이 가자!” 고 의연하고 대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반일’ 에서 ‘극일’ 로 상황이 바뀐 것이다. 나의 의식 속에는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청년들의 의식 속에는 그런 게 거의 없다. 우리가 일본보다 못한 게 도대체 뭐냐는 거다. 우리 청년들의 그런 자부심과 생기발랄함, 뛰어난 지능과 창의력이 지금 일본을 비롯, 전세계에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 대한 역사적인 잘잘못은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고, 일본의 패권주의에 절대 굴해서는 안되겠지만 일본을 대하는 지금까지의 방식에 대해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진정한 극일을 하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그에 걸맞는 국력이다. 증오와 적개심, 구호나 시위 따위의 방식으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이를테면 북한이 일본에 대하여 아무리 악다구니를 쏟아내 봐야 일본은 콧방귀도 안 뀐다. 달밤에 왠 개가 짖어대느냐는 식이다.

일본 사람들이 영화 ‘한반도’ 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속으로 비웃을 것이다. 입에 칼을 물고 비분강개해 봐야 이빨만 아플 뿐이다. 영화의 대통령은 국새(國璽)로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지만 노 대통령은 무엇으로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단 말인가? 영화 ‘한반도’ 의 개봉을 전후하여 노 대통령이 일본에 얼굴을 붉히며 거칠게 항의하는 것은 너무나 속 보이는 코메디다. 언제까지 이렇게 실속없는 명분과 근거없는 가설에 매몰되어 줄창 핏대만 세울 것인가?

예전에 권력실세들의 입에서 “효자동 이발사 같은 영화 몇 편만 만들어 틀면 한나라당은 끝장이다!” 라는 발언이 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임상수가 만든 영화 ‘그때 그 사람’ 이 나왔을 때 “박근혜는 이제 끝장이야!” 하면서 환호작약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한반도’가 나왔으니 저들은 또 뭐라고 히히덕 거릴까? 그러나 좋아할 거 하나도 없다. ‘효자동 이발사’ ‘그때 그 사람’ ‘한반도’ 와 같은 영화들이 당장은 현 집권세력을 좀 이롭게 했을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똑 같은 방식의 무서운 보복이 그들의 숨통을 조여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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