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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한 인간들의 사랑, 희생의 폭이 너무 크다

영화,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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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재
기사입력 2006-11-17

폭력은 가장 파괴적이고 잔혹한 상처를 인간의 몸과 영혼 속에 남긴다. 하지만 인간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그 폭력이라고 하는 죽음의 에너지도 반사의 역광으로 뒤집힐 때 그 잔혹한 아픔만큼이나 당사자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기도 하는 일들도 있다. 좀 드문 일이긴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바로 이 폭력의 경험을 통하여 성장하고 거듭난 사람들의 가족애와 여전히 폭력을 통하여 더욱 폭력적인 내면으로 고착되고 뒤틀린 인간들의 동물적인 욕구가 충돌하는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작업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이 상극의 그림을 제대로 버무려 내려면 먼저 제작자 자신의 깊은 인간이해가 따라야 하고 그 이해의 의도를 따라 성숙과 미성숙의 양극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괜챦은 연기자와 호흡과 궁합이 맞아야 한다. 이 조건들이 충분하지 못할 때 대개 이런 그림은 쉽게 마찰음이 생기고 한 쪽의 극단으로 촌스럽게 이즈러지고 만다.

하지만 강석범 감독은 여백이 있는 자신감으로 이 작업을 기분 좋게 만들어 내고 있다. 편한 리듬과 긴장이 적절히 만나고 충돌하는 시점 속에 관객의 감정을 끌어가고 리드하는 능숙한 솜씨까지 보여 주면서.

먼저 좀 신선하고 색다르게 가슴에 다가 오는 것은 캐릭터들을 통해 편하게 배어 나오게 하는 제작자의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아들의 죽음을 또 다른 아들(아들을 죽인)에 대한 사랑으로 순화시키고 치유하고자 하는 덕자(김해숙 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고조로 성장하는 아들을 죽인 아들. 이들이 힘겹게 체득한 거듭난 삶을 지키고자 변두리 좁은 식당에 몸과 영혼을 맡긴다.

하지만 우리의 이웃과 사회, 성공과 토지, 개발의 신화에 깊이 중독된 동물의 왕국은 이러한 이들의 최소한의 편한 영혼의 공간마저 보장해 주지 못한다. 개발의 단물을 얻기 위해 그 아픔의 공간을 노리고 밀고 문질러버리고자 하는 낯익은 거대세력. 낮은 자의 원시적 상처를 메마르게라도 만져 줄 사법제도는 일찌감치 소외되어 있고 또 상대는 처음부터 그것을 선 밖으로 물려 놓는다. 이 층층위로 조직된 야만과 폭력적인 옭죄임의 도전은 점점 강도를 더하며 압박해 오는데---. 이 철벽의 폭력 앞에서 과연 자기를 힘겹게 발견해 낸 새로운 아들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영화는 뭉클하고 재미있다. 캐릭터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름대로의 자리가 잡혀 있고 그 조합과 배합도 특유의 여백과 능숙한 긴장 속에서 재미를 더해 낸다. 그리고 단연 돋보이게 성장한 인간으로 설정된 오태식!(김래원 분) 제발 영화 밖의 현실에서도 만나고 싶은 영웅이다!

한 때의 날리던 폭력으로 사람을 죽임으로 자신의 청춘과 삶마저 파괴시켜 버린 스스로의 함몰과 굴절을 깨닫고 피해자의 가족 앞에 어린 아이처럼 오열하며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사람. 이 후의 긴 수형의 시간, 자신과의 회환과 싸움--- 드디어 조숙하게도 아직 어린 나이에 자신을 용서하는 법과 과거를 무로 돌릴 줄 아는 내면의 기술과 지혜를 터득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부터도 이미 뭉클한 드라마다.

불효자의 못자국과 같이 난자된 온 몸의 문신들을 성형병원에서 스스로의 비용으로 지우는 절차는 자신의 이미 씻어내기에 성공한 영혼의 상처를 정리하고 재확인 하는 작업일 뿐이다. 나와 타인을 파괴시킨 악마의 폭력, 이미 그것으로 한 생명을 빼앗고 가족을 찢은 것으로 족한 것이다. 다시는 폭력의 범주로 나와 타인을 부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바보가 될 줄도 알고 자신을 통제하고 인내하는 가공할만한 변화의 깊이를 보인다. 결국 그 가공할 유능한 사랑은 타인(덕자의 딸)의 삶까지 성장시켜 내기에 이른다.

이런 그림을 영화로라도 누려 볼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다.
이런 유쾌한 그림을 편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영상 제작자는 사실 국내에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심리적 깊이의 삶이 표출되는 그림치고는 결말의 과정은 너무 무거워 보인다. 그렇게 뭉클해진 인간들의 가족의 자리가 가혹할 정도로 너무 협소하고 위험하게 설정되어 있다. 좀 더 보상받을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이 확보되었으면 그 뭉클함이 제대로 증폭될 뻔 했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의 주관적인 욕심일까? 그리고 결말의 폭력은 또 다른 양식의 사랑과 책임의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지만 그 부분에서도 역시 관객에 대한 제작자의 부족한(?)배려가 마음에 남는다.

그런 비극적 희생의 설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의 사랑과 성장, 행복이 우리의 삶에서 너무나 멀고 심각한 것으로 느껴지게 할 우려가 있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사랑과 성숙한 행복과 삶의 질을 향해 도전해 보고자 하는 소중한 동기들을 줄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반드시 계몽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 최소한의 배려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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