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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들께 불순종해서 죄송합니다”

열린우리당 유재건 의원(온누리교회 장로) 파워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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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기사입력 2007-05-11

온누리교회 장로이기도 한 유재건 의원은 요즘 교계 행사나 모임 때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고백을 잊지 않는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인데다가 정치인으로서 의례적인 모습으로도 보인다. 1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유 의원을 만나 배경 설명을 들어봤다.
▲ 유재건 의원     ©뉴스 파워
 
“어머니의 유언이 두 가지였다. 첫째는 목사님들께 순종하고 장로라고 회의할 때 목사님께 따지고 괴롭히지 말고 순종하라는 것이었다. 둘째는 통일에 헌신하고 깨끗한 정치인이 되라는 거였다.”
 
국내 최초 사형제 폐지법안 입법
그러니까 모친의 유언을 지키지 못한 죄를 고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2년째다. 유 의원이 꼽은 목사 불순종 죄 세 가지는 바로 사형제, 북한인권 문제, 그리고 사학법이다. 이른바 한기총과 예장통합 등 주요 교단이 중심이 되어 반대해 온 것들이다.
 
우선 사형제를 들여다보자. 유 의원은 이미 15대 때 국회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사형제 폐지법안을 제출했다. 16대 때는 정대철 의원과, 17대 때는 유인태 의원을 비롯한 190여 명이 공동으로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토론도 못하고 아직도 국회에 잠자고 있다는 게 유 의원의 안타까움이다.
 
사형제 유지의 한가운데 한기총이 있다. 2년 전. 당시 한기총 대표회장이었던 최성규 목사를 중심으로 한 목사들이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서 사형제 폐지는 맞지 않고 존치하는 것이 복음적이다”며 사형제 존치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유 의원은 “지금도 내 신앙 양심이 ‘목사님들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도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유 의원이 사형제 폐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철수 씨 사건의 변론에 나서면서다. 미국에서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유 의원은 엉터리 재판으로 사형 위기에 내몰린 이 씨의 변호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0년 2개월 만에 이 씨의 무죄를 이끌어냈다. 미국 내 아시아 인권운동의 최초 승리 사례였던 이 사건은 당시 미국 내 소수 인종들에게 하나의 기적이자 희망의 신호탄이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유 의원은 일약 ‘인권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
 
전세계 110개국이 사형제를 폐지했다. 판사들의 오판이 너무 많다. 사형제도가 없는 나라의 범죄율이 더 낮다. 이런 ‘명백한’ 이유들이 17대 국회가 끝나가는 오늘도 유 의원으로 하여금 사형제 폐지 그룹의 변호사, 목사들과 머리를 맞대게 한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추진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민영 교도소에 대해서도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계도와 개선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판사 출신의 양인평 변호사와 검사 출신의 전용태 장로를 거론하며 기대감을 피력했다. “미국에서는 ‘감옥은 범죄의 공장’(prison is the crime factory)"이라는 말이 있다. 초범자가 감옥 가면 더 나빠진다는 것이다. 전도사, 사회사업가, 상담가가 교도관이 되면 범죄율을 훨씬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은 하나님의 방법도 아니다”
두 번째 유 의원이 ‘목사님들께’ 굽히지 않은 소신은 북한인권법이다.  “북한의 인권에 눈을 감고 북한과 교류 협력만 하려고 한다.” 이것이 국내 보수 교회 목회자들과 미국의 네오콘들이 김대중 정권부터 노무현 정부를 비난해 온 논리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난 여당의 일원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눈을 감아 본 적이 없다. 방법의 차이다”라고 일축한다. 미국은 국제 사회 압력을 통한 대북 강경책을 내놓고 있지만, 남한은,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굶어죽는 북한 동포들 위해 비료와 쌀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강경책은 현실에도 맞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도 아니라는 것이다.
▲ 북한핵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한 유 의원.     ©뉴스 파워

북한 핵에 대해서는 이렇게 보고 있었다. “어차피 북한은 20년 전부터 핵을 갖기 위해 준비해 왔다. 그것을 국제사회에서 힘의 지렛대로 할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북한 핵 문제는 외교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교착을 반복하며 조금씩 진전을 향해 가는 6자 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머를 동원해 설명했다. “외교적인 수완으로 북한을 감화시켜야 하는데, 다들 불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
   
“낙선운동은 공갈 협박”
세 번째 불순종 죄는 바로 얼마 전 재개정이 불발된 사학법. 유 의원은 이에 대해 한기총이나 예장통합 등 사학법 재개정을 이끌었던 목사들에게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가 양보해서 학운위, 대평뿐만 아니라 종단에까지 추천권을 줬는데, 다 없애라는 것이다. 안그러면 전교조가 사학을 접수한다는 것이다. 사실 머리 깎고 극렬하게 반대했던 목사님들의 퇴로를 열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안받아줬다. 난 손 들었다.”
 
사실, 그 동안 유 의원은 당의장 때부터 “(사학법을) 재개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줄곧 펴왔다. 이것은 장로인 그가 목사들이 삭발을 하고 있는 마당에 어머니의 유언을 마냥 거부할 수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타협을 덕목으로 아는 그에게도 사학법과 관련한 그 이상의 양보는 없어 보였다.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해 봐도 이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사학법 재개정이 불발되자 기독교사회책임과 한기총이 들고나온 건 이른바 낙선운동. 이에 대해 유 의원은 “공갈 협박”이라는 말을 써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행령에 나오는 각 사학이 건학이념을 정관에 박아서 기독교 선교와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데는 이사를 세례교인 이상으로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싸움처럼 되어서 끝까지 국회의원 떨어뜨린다고 공갈 협박하는 목사들을 내가 한번 심하게 비난했다. ‘무슨 자격으로 당신들이 20만, 30만이 뽑은 국회의원들을 낙선시키느냐’고 했다. 그 얘기 듣고 공갈 협박은 좀 줄어들었다.”
 
이 세 가지 불순종의 죄를 목사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가서 고백해 오고 있는 것이다. 벌써 2년이나 되었다. 사실, 유 의원의 공개 죄고백은 회개보다는 협박 성격이 강한 사학법 재개정 삭발과 단식, 그리고 일부 대형교회의 불법성 행태에 대한 언론의 비판에 대해 반성은커녕 되레 변명하는 행태와는 사뭇 대조적인 것이다.
 
지난 4월 23일 저녁 한국 교회의 주요 교단이 망라되어 참여하는 2007 한국교회대부흥100주년기념대회 발대식이 열렸다. 올 7월 상암경기장에서 열리는 대회를 대내외에 공식 선포하는 자리였다. 유재건 의원은 이 자리에서 축사를 통해 “100년 전 부흥은 조직도, 대회도 없었다. 목사들이 삭발이나 단식하지 않고도 목사님 말씀 한마디면 통하는 그런 세상이 와야 하겠다.”고 말했다.
▲ "우리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뉴스 파워

 
유 의원은 이와 관련 인터뷰에서 ‘회개’가 평양대부흥 100주년의 핵심임을 거듭 강조했다. 1903년 원산의 하디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죄고백이 길선주 장로에게로 이어지고 이것이 전국적인 회개로 번졌다는 것을 재차 설명했다. “100년 후라며 소리 지르고 부흥하겠다고 하는데 회개 없이는 안되는 것이다. 회개해야 영성이 회복된다.”
 
4월 23일, 자신의 축사가 나가고 난 후의 비화 한 토막도 소개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학법 재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모 교단장이 섭섭해 한 것이다. 머리 깎은 사람을 비아냥댄 것처럼 들었던 모양이다. “자격지심이다. 말이 안되지만 다음날 전화했다. ‘어제 제 말에 상처받았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풀어졌다.” 
 
“시위하듯 하는 100주년 행사는 안돼”
행사 위주의 평양대부흥 100주년에 대한 그의 경고는 계속되었다. “행사 위주로 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사람은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형교회는 버스로 하면 10만 명 동원은 간단하다. 하지만, 상암경기장에서 대대적으로 모여 시위하듯 하는 게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작은 규모로 골방에서 기도하는 게 중요하다. 아직까지 회개하고 이름 없이 영성 회복을 위해 기도하자는 얘기는 안나왔다.”
 
교단장 직분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이미 4월 23일, 평신도 주제에 감히 교단장들 앞에서 목사들의 권위 운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도 했다. “교단장이 권력기관인가. 봉사하는 직분이다. 더 높은 교회 직분을 맡았으면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겸손해져야 한다.” 목사님들 앞에서 깎듯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그에게서 쉬 들을 수 없는 말들이다.
 
점점 우려가 커지고 있는 교회의 특정 후보 지지 논란에 대해 유 의원은 “교인들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사 개인의 선호를 따라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2007년은 특정 후보 뽑는 해가 아닌 영성 회복의 해가 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 4월 21일 평양대부흥 100주년 부천시 기념대회에서의 박근혜 씨 축사도 꼬집었다. 유 의원은 “기독교 집회에 가수 부르고, 박근혜 씨 부르는 것, 웃기는 일이다. 축사를 3분씩 하라고 했는데, 홍재철 목사의 박 전 대표 소개에만 4분 50초가 걸렸다. 이렇게 하는 건 기독교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각성해야 한다.” 이와 관련 뉴스파워는 이미 대회 전부터 대선주자들, 특히 믿지 않는 이들의 순서 담당은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다시 장로 대통령 만들기 움직임이 한국 교계에 번져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 유 의원은 “조금씩 변화가 오고 있다. ‘장로라고 무조건 해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유력한 대권주자인 ‘후배’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해서는 “신실한 장로가 되어서 (대선에서) 승리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고 세속적인 권력대로 한다면 대통령 되어도 국민과 본인에게 덕이 안될까 걱정이다. 그 분이 정말 믿음으로 하면 될 거고, 그렇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비록 소속은 달라도 같은 신앙인으로서의 동질감 같은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열린우리당으로 주제를 바꿨다. 유 의원은 당의 분열 조짐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그의 긴 설명을 들어보자.
 
유재건 사전에 탈당은 없다
“지금 열린우리당이 깨졌다. 이 당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된다고 믿고 모두 당을 나가려고 한다. 18대 국회 때는 열린우리당 가지고는 다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당을)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마디로 노무현과 우리가 동업을 해왔는데, 장사 안된다고 더 장사 잘되는 것으로 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같이 열린우리당, 대통령과 심판을 받고, 워낙 심판이 세서 주저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면 할 수 없지만 개인의 능력과 경험과 실력을 갖고 생존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하다.
 
오늘 아침에도 계속 만나자고 하고 ‘언제 나가느냐’ 이렇게 하고 있다. 김근태, 정동영이 노 대통령과 다툰 후에 이것이 더 심해졌다. 아무 데도 따라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친노파 사람들과 친한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나 혼자인 것 같다. 이제 나이도 70이 되었으니까 정계를 은퇴하든지 혼자 남아서 국회의원을 더 하고싶다면 무소속으로 나가든지, 아니면 몇 사람 남은 열린우리당과 함께하든지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다.
▲ 열린우리당 창당을 실패가 아닌 미흡이라고 평한 유 의원은 탈당은 없다고 강조했다.    ©뉴스 파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후퇴가 아니라고 본다. 한나라당도 우리도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텐데 고통스러울 것이다. 국민들도 혼란스러울 것이고.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지 독재였으면 한 방에 끝났을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growing pain)이라고 본다. (조만간) 정리가 될 것이다. 내가 너무 낙천적인가(웃음).”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해서는 실패가 아니라 미흡이라고 평가했다. 목표가 너무 이상적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준 점수는 50점. 그래도 그 50점을 가지고 un 사무총장을 내고, 다수당이 되고, 그 중 여당의원 13명이 잘림으로써 법과 질서가 잡힌 나라라는 걸 입증해 냈고, 수출 3,600억 불 달성, 원천기술 판매 등은 기적, 혁명이라는 말을 써가며 극찬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변인이 되고 싶다는 말도 했다. “살기 어렵고 직업 구하기가 어렵다고, 양극화 심화가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이라고 매도하는데, 정부가 방어를 잘 못하고 있다. 내가 대변인을 했으면 좋겠다.”
 
유머감각의 출처를 묻는 질문에 그는 노력을 지목했다. 납북된 아버지와 떨어져 일자무식의 어머니와 함께 14살 가난한 외아들로서 어디 가서든 궁한 꼴 보여서는 안되겠다 싶어 그때 부터 다섯 명이 모이든 열 명이 모이든 조크를 미리 준비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도맡았다. 돈도 없고, 빽도 없던 당시 그의 유일한 자산이었다. 그걸 지금까지 해오다 보니까 ‘재미있는 사람’,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라는 기대를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그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한마디로 “피곤하다”고 그는 고백한다. 책도 많이 읽고, 외국 가면 서양 조크 연구를 위해 서점에 들러는 일을 잊지 않는다. 이 정도면 직업 개그맨 못지않는 경지다.
 
유 의원의 멘토는 영국의 윌버포스다. 유 의원의 윌버포스 예찬론이다. “그 사람은 제안한 지 33년 만에 통과되었다. 150번 국회에서 토론했고, 통과되고서 3일 만에 죽었다. 믿는 정치인으로서 최고봉이다. 아주 훌륭한 사람이다. 아브라함 링컨이 이 분한테 영향을 받았다.”

그의 멘토에 비하면 그가 제출한 사형제 폐지법안은 고작 11년밖에 안되었다. 그는 윌버포스연구회를 만들까 생각중이다. 윌버포스처럼 되라고 국회의원 299명 전원에게 전기를 선물했을 정도다.
 
유 의원은 거듭 목사들 앞에서 했던 자신의 죄 고백에 대해 쇼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것은 원고를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얘기해야 한다고 하셨다. 인기 떨어질 줄 알면서도 얘기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이 사람 정말 예수 믿는 사람 같구나’ 이렇게 받아주셨다.” 역사적인 해, 유 의원 같은 진정한 회개가 정치에서만 아니라 한국 교계에도 번져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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