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200년 전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아미쉬 사람들

무소유의 평화주의 공동체, 친환경 신앙단체 아미쉬 마을

가 -가 +

문종성
기사입력 2007-08-26

▲ 소형 마차인 버기(buggy)를 몰고 가는 아미쉬(amish).     ©문종성

  '뚜구덕 뚜구덕 뚜구덕~'
  안개가 채 걷히지도 않은 이른 아침부터 고요한 정적을 깨면서 웬 마차들의 행렬이 즐비하나 했다. 마을 전통 축제가 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신성한 노동으로 일구어진 푸른 옥수수밭과 콩밭, 고단한 일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양의 널린 빨래들, 그리고 마차 안에 썬글래스로 가려진 무표정한 얼굴의 어른과 천진난만한 익살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아이들. 하지만 어디에도 축제나 행사 따위를 진행하는 특별한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로 도로를 밀어내는 내 앞뒤로 계속해서 말 한 필이 이끄는 소형 마차인 버기(buggy)들이 튀어나온다. 게다가 이젠 리컴번트 자전거까지 몰고 다니는 청교도풍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범상찮은 이 마을의 정체가 궁금하기만 하다. 인디애나 주 브라이튼(brighton) 지역은 그렇게 18세기 미국의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또다른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낯선 사내를 보았다. 난 젊은 시인의 고뇌가 담긴 눈빛으로 그에게 오래도록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역시 경계심을 거두고 나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와 나는 서로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어느 새 코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 자전거를 몰고 다니는 것을 보아 같은 신앙적 뿌리를 둔‘올드 오더 메노나이트(old order mennonite)'일 수도 있다.     ©문종성

  "복장이 참 특이하네요. 축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하하, 축제는 없어요. 여기 사람들 다들 그래요. 우린 대대로 전통을 지켜가거든요."
  왠지 중후해 보이는 동그란 안경, 영국 신사에게나 더 어울릴 법한 중절모 같은 모자, 게다가 가지런히 정돈된 수염과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메이플라워 시대의 옷차림. 그는 자신의 집에 마차가 있는데 식사도 할 겸 한 번 타보지 않겠냐며 즉석에서 초대를 해 왔다. 분명하고 확실하고 안전한 세계를 떠나 내 결정을 정당화하거나 미래를 보장할 어떤 합리적 설명도 없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를 적나라한 신뢰의 실체로 인정 할 수 밖에... 시카고까지의 일정을 생각해 손사래를 칠까 하다 색다른 분위기에 빠져 보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제안에 응하기로 한 것이다.
 
  복장에서 풍겨져 나온 이미지가 근본주의 청교도가 아닐까 했던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미쉬(amish). 무소유의 평화주의 공동체, 친환경 신앙단체 등으로도 불려지는 아미쉬는 발전된 현대 문명의 기술을 거부하고 그들의 신앙관에 의거해 고집스레 옛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원래 스위스 재침례파 운동에서 시작되어 국가 교회 위주의 종교개혁에 불만을 품은 알사스 지방의 재침례파 목사인 jacob amman을 따르는 이들이 아미쉬란 이름을 붙였는데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살다가 심한 종교적 박해를 받고 1737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 정착한 것이 이주역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소그룹 공동체로 외부와의 교류가 많지 않을 이 낯선 동네에 초대된 느낌이 야릇하다. 마치 동일한 판에 찍어 낸듯한 그와 똑같은 복장을 한 몇몇 사람들을 지나쳐 도착한 그의 집에서 부인과 아이들을 만났다. 집 안에서도 보닛 모자를 쓰고 케이프와 숄을 어깨에 걸친 부인은 밝은 미소와 특히 매력적인 눈이 인상 깊었으나 목수의 손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거칠고 뭉툭한 손과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도 건장한 체구는 인사를 나누는 잠시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눈빛에 '와!' 악수에 '오...'.
 
  그들의 독특한 외양적 모습은 겸허한 신앙적 삶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는 아이콘이다. 아미쉬가 특이한 용모와 검소한 옷차림으로 일반인들과 확연히 구별된 통일된 모습을 갖추는 데는 바깥 세상과의 의도적 분리와 공동체 내 일체감 조성, 그리고 신앙에 대한 순응적 삶의 표출 등에 그 목적이 있다.
 
  아미쉬 성인 남성의 외모상 특징의 하나는 바로 관자놀이부터 턱을 완전히 감싸는 턱수염을 기르며 콧수염은 기르지 않는다는 점인데 턱수염을 기르는 데는 ‘이사야 50장 6절’ 을 근거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수염을 길렀음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반대로 콧수염을 기르지 않는 이유로는 콧수염이 종교개혁 당시 아미쉬를 포함한 재세례파 교도들을 탄압하는데 앞장 선 경찰관이나 그들이 거부하는 전쟁에 나서는 군인들의 보편적인 외모로 위엄과 권위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 아미쉬 여성들. 단아한 전통 복장에는 그들의 신앙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 문종성

  아미쉬 여성들의 드레스는 주름을 잡은 원피스 형태로써 앞면에 핀이나 snap(똑딱단추)로 여미는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는데 드레스는 검정 색과 파랑, 녹색, 보라색 계통의 연한 색깔로 무늬가 없는 천으로 만들며 스커트의 길이는 무릎과 발목 중간까지 내려오게 한다. 그들은 절대로 바지나 짧은 스커트를 입지 않는다. 대신 드레스 위에 일상적으로 케이프(cape)와 앞치마(apron)를 하는데 작업을 하거나 하절기에는 케이프를 하지 않고 앞치마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인들에게 있어 앞치마는 일을 할 때라든지 다른 의복을 보호하거나 위생을 목적으로 착용하지만 아미쉬들에게 있어 앞치마는 복부 부위를 가리어, 가슴부위를 가리는 케이프와 함께 겸손과 조신함을 겉으로 나타내는 상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의 가정에는 네 명의 자녀가 있는데 처음 보는 동양인에 대해 쪽박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남자애들은 적극적인 모션을 취하는 반면 알프스의 소녀 못지 않은 귀여운 전통 복장을 한 여자애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재롱을 피워댄다. 이들은 일찍 결혼을 하는데다가 신앙적인 신념 때문에 당연히 낙태를 거부하기에 자녀 수가 꽤나 많다. 어찌보면 효율성을 중시하는 핵가족화에 전면 대비되는 가족 계획이지만 이런 방식은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아무런 문제점도 발생시키지 않은 채 현대 사회에서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단지 한 가정으로 아미쉬의 모든 삶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의 가정을 통해 본 아미쉬의 삶을 집약하자면 '친환경 평화주의 신앙공동체'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여전히 재봉틀로 옷감 및 침대커버를 수선하고, 땔감으로 연료를 공급하며, 집 뒤로는 넓은 밭이 펼쳐 있어서 식탁의 음식들을 제공하는 식량자원의 보고가 된다. 또 여러 음료들을 가내 수공업 형태로 직접 만들어 먹거나 팔기도 하는데 새콤달콤한 맛이 그럭저럭 괜찮다.
 
▲ 철저하게 신앙적 가치관을 함양해 가르치는 아미쉬 학교 외부 모습. 이곳에서 51명의 학생이 2명의 선생님으로부터 정부에서 인정한 특별 교육을 받는다.     © 문종성

  집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계속해서 안내해 준 아미쉬들만 다닌다는 학교에 방문했다. 아미쉬들의 학교는 교실 하나에 전 학년(1-8) 학생이 한 두 명의 교사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공부하는 학교로 원룸 스쿨(one room school)이라 부른다. 보통 아미쉬 공동체의 교구(church district) 단위로 1-2개 학교가 개설되어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신앙심 고취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써 덕목을 갖추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을 학교 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일반 공립학교의 등교를 거부한 채 자체적 교육제도 하에 사립학교 형태의 아미쉬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기독교인으로써의 신앙심에 충만한 삶을 영유하며 그들의 공동체 내에 올바른 구성원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미쉬 학교에서는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지식의 무장이나 능력의 개발보다는 아미쉬로써의 생활 규범을 준수하고 가정과 공동체내에서의 책임에 대하여 일깨우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공동체 일원이 되도록 준비해 나가는 참교육의 실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 학교 내부 교실 모습. '원룸스쿨'의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온다.     © 문종성

  아미쉬 공동체에서의 학교 교육을 살펴보면 ‘지적인 삶보다는 미덕의 삶’, ‘전문적 지식보다는 지혜로움’, ‘개별적 경쟁보다는 공동체의 번영’, ‘외부 속세와의 융합보다는 분리된 삶 의 영위’를 위한 기본적 소양을 갖추는 장(場)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
 
  브라이튼 지역의 학교는 아주 작은 규모였는데 2명의 선생님에게 51명의 학생들이 가르침을 받는단다. 그들은 성경과 수학 등 기초적인 과목을 중심으로 정규과정인 12학년까지가 아닌 8학년까지 받는다. 그럼에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어차피 졸업하고 다시 그들을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아미쉬 공동체로 재편입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아미쉬가 다시 그들의 터전으로 100%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아미쉬들은 자녀들이 16세가 되면 그들의 언어(독일어 방언)로 ‘running around time(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기간)’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럼스프린가(rumspringa)’의 기간을 쥐어준다. 아미쉬 청소년들에게는 가정과 공동체로부터 바깥세상으로 나가 속세의 삶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지며, 이는 아미쉬들에게 있어 일생을 통해 단 한차례 주어지는 인정받은 합법적인 탈선의 기회이자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기도 하는데 이 때 공동체로의 귀환 혹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전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의 외부도 아담했지만 내부는 더욱 좁아보였다. 재미있는 건 이들 역시 야구를 좋아해서 미국의 여느 학교처럼 경기를 펼칠만한 필드나 그라운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글러브와 방망이들은 잔뜩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학교에서는 적은 학생 수임에도 야구를 비롯한, 농구와 탁구 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기구를 설치해 장려하고 있었다. 아마 이러한 스포츠의 경우 그들의 신앙이나 삶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적극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차 한 번 타 볼래요? 마을 한 번 둘러보게."
  그가 제의해 왔지만 오래도록 머무를 수 없었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마차는 주로 가족들이 이동할 때 쓰이지만 택시 용도로도 쓰인다고 한다. 5000달러정도면 마차를 구입할 수 있고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두지만 한 번 운행하는데 많게는 80달러 정도라니 비싼 감이 없지 않다. 아미쉬의 대표적인 공동체 지역으로 알려진 펜실베니아 쪽이 아닌 가끔 이 곳 인디애나로 지나치는 관광객들과 흥정하며 정해진 가격으로 생각된다.
 
▲ 그들에게 마차는 공동체 분열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 문종성

  아미쉬들은 자동차를 일상의 교통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생활의 속도가 빨라지고, 지리적인 한계가 철폐되며 사회적인 통제가 약화됨으로써 결국은 그들의 공동체 유지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멀리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동차에 비해 빨리 그리고 멀리 갈 수 없는 마차를 타고 다닌다.
 
  내가 마차 타는 것을 거절하자 그는 갑자기 보여줄 게 있다며 집 안으로 들어가 선반을 뒤져 한 뭉큼의 사진을 펼쳐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 횡단 자전거 여행 사진. 엄밀히 말해 횡단은 아니고 두 달 동안 중부 지역에서 서부 지역까지 일주한 여정들을 남겨놓은 아날로그 사진첩이었던 것이다. 10년 전 요세미티 국립 공원을 비롯해 옐로스톤과 그랜드 캐년 등을 둘러본 그의 자전거 여행 사진을 보자니 그들이 꼭 구속된 삶을 산다고만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가 사진 한 장을 꺼내 그의 이름과 집 주소를 적어 선물했는데 안타깝게도 잃어버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자신의 자전거 여행 때의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세밀하게 들려주었는데 나는 그 때마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 과장되게 맞장구를 쳐 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설명은 더욱 더 열정적이 되었다. 이렇듯 가끔은 지나친 관심이 피곤함을 불러 오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인격과 상관없이 동방 예의지국에서 왔다는 뿌리 깊은 사명감에 결코 부담스런 내색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 책을 많이 읽는다는 얘기와는 다르게 학교 도서실에 비치된 책의 양은 너무 적었다.     © 문종성

  그들은 전깃줄은 곧 외부세계와의 연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현대 문명의 이기가 첨단화되어 갈수록 아미쉬들의 삶은 공동체 밖의 일반인들이 보이는 삶의 질과 방식에서 그 차이는 점점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아미쉬들은 공동체 바깥사람들로부터 낙후된 삶을 살아가는 후진적인 극보수 집단이자 기이한 사람들이라는 시선을 받기 시작하였고, 결국에 가서는 일반인들에게 관광 상품으로까지 둔갑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문명의 이기로 말미암아 외부 세계와의 단절된 삶이 유린되고 공동체의 영역이 무너지며, 이로써 가족의 구조와 공동체의 결속이 약화되면서 공동체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철저히 문명을 거부해 왔다. 바꾸어 말하면 아미쉬들의 관점에서 볼 때는 ‘진보와 발전’이 곧 ‘보다 좋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인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삶을 추구하며 안락과 편의 그리고 레저를 멀리하는 생활을 소중히 하는 아미쉬들은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실용화 될 때마다 그들의 신앙적 공동체 유지에 미칠 영향을 먼저 철저하게 따지고 이의 수용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문명의 이기들을 거부한다고 하여 그들의 생활자체를 퇴보적으로 남아있게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전통적 삶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필요불가결한 분야에 전기를 대신 할 수 있는 대체 에너지를 찾아 활용하는 등 문명의 이기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전기나 전화 등 물질문명을 완강히 거부한다는 얘기는 선택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듯하다. 적어도 내가 방문한 그의 집 안엔 냉장고와 전화, 세탁기 그리고 농기계 등이 번듯하게 사용되니 말이다.
 
  사람을 가장 불편하게 만들고, 또 가장 큰 불행으로 이끄는 유혹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라는 말이다. - 톨스토이
 
  그들은 땅의 소유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을 신성시하고 함부로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아미쉬들은 말한다.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이 땅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우린 자녀들로부터 빌려쓰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명쾌한 말이다. 그들의 모든 관점은 신앙에서부터 시작한다. 즉, 그들 스스로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매개에서 영적인 것에 관련시킨다. 만일 거기에 부정한 것이 발견된다면 그들은 그것들을 취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비친다.
 
  굳이 신앙적인 관계를 따져보지 않더라도 그들의 문화를 조금 더 들춰보면 현대 문명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어가는 환경이나 기타 여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종교적 신념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많은 환경단체들이 아미쉬의 문화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아미쉬가 보여준 삶의 현장이 건강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들은 그들의 삶을 결코 누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핍박받았던 자신들의 아픔을 전가시키지 않으려는 본능이 발동한 건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철저한 소그룹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플레인(the plain)'이란 잡지도 독자들의 관심에 따라 발행 부수를 더 늘리지 않고 적정선에서 조절한다고 하니 과연 그들의 고집스런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다.
 
▲ 자급자족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그들에게 전용 마켓이 따로 있다. 일할 때도 전통 복장을 유지하는 아미쉬.     © 문종성

  더군다나 놀라운 사실은 아미쉬들은 국가나 공공기관은 물론 자선단체 등의 지원을 일체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아미쉬들은 그들의 신앙공동체 밖의 그 누구로부터도 도움 받기를 거부한다. 일반인들과 똑같이 각종 세금을 납부하면서도 정부의 각종 연금 혜택이나 농업 장려금, 저소득자 식량 구호 등 그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의료보험은 물론 생명보험, 손해보험 등 미래의 우발적 사고로 입게 될 손실의 보전이나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는 대비책으로 일반인들에게 필수화 되어있는 각종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그들이 만약 곤경에 처할 경우 우선적으로 그들이 이루고 있는 대가족 제도에서 부모, 형제자매, 자녀 등 가족 구성원의 책임하에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가족들의 힘만으로 해결이 어려울 경우 공동체 내 교도들이 나서 서로 돕는다. 즉 외부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사전에 강구하지 않는 아미쉬들에게는 가족이 바로 ‘보험’이며, 공동체는 보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보전해주는‘재보험’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재보험 재원 마련의 일환으로 공동체 내 각 가정으로부터 보험료 성격의 분담금을 각출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아미쉬 공동체 자체적으로 매년 경매행사 등을 통하여 기금을 모으고, 마련된 재원으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지원한다. 정말 알면 알수록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 문명을 거부한 것에서 이제는 선택적 수용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미쉬.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삶은 친환경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 문종성

  문명이라는 폭주 기관차에 실린 채 방향성을 잃고 속도만 내고 있는 현대사회. 물질 문명의 놀랄만한 발전은 획기적인 시간 단축을 가져왔지만 그것은 동시에 물질문명 이전 시대에 누려왔던 나눔과 교제의 시간까지 소멸시켜 가고 있다. 미디어의 확산으로 빠른 정보를 가져다 주지만 그만큼 믿지 못할 정보들도 확대 재생산 된다. 기계가 많은 것을 대신하며 더 윤택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가슴 대 가슴으로 만나는 접촉점은 더 줄어들어 가고 있고, 수동적인 기계를 다루는 인간은 다시금 그 기계가 만들어 놓은 편안한 늪에 빠져 적극적인 수동성에 휘말려 가고 있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자유의 물결을 타고 온 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도리어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아 가버리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미쉬 공동체가 지향하는 것들이 현대인들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키게 할 만한 삶인 건 분명하다.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신의 현현함을 체험하는 그들의 삶이 마치 이상향이나 유토피아 되는 양 함부로 떠들진 못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 우리가 필요로 하고 건강하게 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한 번 쯤 환기시켜 볼 꽤 매력적인 변곡점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물질적인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 비현실적인 것만 같은 아미쉬 공동체의 삶을 완강히 부정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애써 거부할 필요 역시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기이함을 가지고 교차적인 이원론적 담론을 함의한 그들의 삶을 언뜻 바라보며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한 번쯤 진지하게 파고들 때가 아닌지 나에게 물어본다. 그렇게 그들을 향한 시선에는 불편한 부러움이 서려 있다.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뒤로 걸어 만난 듯한 그와 헤어지며 시카고로 가는 길. 그런데 여전히 나를 잡아끄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또 툭툭 튀어나온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뉴스파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