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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조직교회 새문안교회, 당회록 현대어 풀이본 발간

1890년대에 이미 선거제도 통해 교회 장로와 집사 등의 직분자를 세례 교인들의 투표로 공정하게 선출한 우리나라 대의민주주의의 실현한 사실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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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기사입력 2024-03-22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예장통합, 이상학 담임목사)는 1907~67년까지의 『당회록(堂會錄)』을 현대어로 풀이해 10권의 책으로 발간했다고 밝혔다.

▲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예장통합, 이상학 담임목사)는 1907~67년까지의 『당회록(堂會錄)』을 현대어로 풀이해 10권의 책으로 발간했다고 밝혔다.  © 새문안교회

 

1907년 ❮예수교장로회 독로회(獨老會)❯가 조직된 후부터 기록된 『당회록』 제1권(교우문답책 제1)을 비롯해, 1967년 12월까지 60년 분량의 『당회록』을 현세대와 다음 세대가 읽기 쉽도록 현대어로 풀이하여 총 10권의 책으로 묶어 『새문안 당회록 현대어 풀이본』을 발간하고 오는 4월 7일 발간 감사예식을 드린다고 밝혔다.

 

새문안교회 당회록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들이 함께 교회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근대식 대의(代議)제도의 소산인 ‘당회(堂會)’의 회의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당회록에는 회집 일시, 당회 장소, 참석회원, 결의 안건 등을 기록하고 당회장과 서기가 날인했고, 당회 상위 기관인 ‘노회(老會)’의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았으며, 교회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명시하여 기록하고 있다.

 

새문안교회측은 "교회 초기 60년의 당회록 풀이본 발간은 한국 근현대사, 한국 교회사, 교회 생활사, 한국어 변천사, 한국어 문체사 등의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6.25 전쟁과 자연재해 속에서도 당회록 원본 보존 

   또한 "국내에 설립 100년이 넘는 교회는 많이 있으나 이미 북한 지역 교회는 공산정권의 핍박으로 대부분 사라지는 바람에 교회 기록물이 유실되었고 남한의 많은 교회도 6.25 전쟁, 자연재해와 교회 이전과 건축 등 여러 상황으로 유실된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새문안교회는 지금까지 광화문 한 곳에서 자리를 지켜 왔기에 『당회록』 원본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광복 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새문안교회는 1948년 새 예배당을 준공하였는데, 전쟁 기간 중 북한군에게 예배당이 징발(徵發)되어 인민군 주둔 본부로 사용되었음에도 『당회록』이 온전히 보존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밝혔다.

 

▲ <새문안교회 당회록(제2~제5)>  © 새문안교회

 

민주주의 대의제도 도입 제헌국회보다 훨씬 빨라

 

새문안교회 당회록은 민주적인 ‘당회’의 운영으로 민주주의의 진수를 보여 준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민주선거인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선거가 이루어지기 훨씬 전인 1890년대에 이미 선거제도를 통하여 교회 장로와 집사 등의 직분자를 세례 교인들의 투표로 공정하게 선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새문안교회 교회 회의의 첫 기록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1898년 ❮그리스도 신문❯에 집사 선거를 한 것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후 교회회록이 분실되었다는 기록이 전하며 현재 교회에 전하는 가장 오랜 기록으로는 1910년 8월 16일 회의록이며 그 내용은 2인의 집사를 뽑는 선거 내용이다. 담임목사 위임이나 그외 교회의 여러 사건 결정도 투표로 결정하였으며 교회 회의 내용도 지금까지 기록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남북한 교인 교류 활발...통일 후 북한 종교시설 복원 도움 기대 

 

광복 전 당회록에는 새문안교회 교인들의 이명(移名: 이사나 직장 등으로 교회를 옮기는 일) 기록이 잘 서술되어 있는데, 관공서가 아닌 종교기관인 교회의 행정체계가 잘 이루어진 것도 특징이다.

 

특히 새문안교회는 남북한의 교류가 잘 이루어져 북에서 이명 온 교인의 기록(북쪽의 교회 이름, 담임목사, 세례 여부, 가족관계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앞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의 종교시설 복원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상학 담임목사는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 강점기의 힘든 시기와 광복, 한국 전쟁 등을 거친 기독교 역사의 한 축이 고스란히 담긴 이 기록물이 117년째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된 것은 한국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라 여기며 『새문안 당회록 현대어 풀이본』이 “한국 교회사 연구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필요에 따라 쉽게 열람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음은 새문안교회가 제공한 참고자료.

 

새문안교회는 ‘당회’의 회의 기록인 『당회록』과 별도로 1914년부터 시작한 ‘제직회’의 회의록인 『제직회록』, 현재의 공동의회록인 『교회회의록』, 광복 전 주보 역할을 한 『교회일지』 등의 옛 문헌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데, 광복 전 1914년-1945년까지의 『제직회록』은 2016년에 현대어 풀이본을 발간하였고 이번에 『당회록』 현대어 풀이본을 발간하게 된 것이다.

 

새문안교회 당회록은 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자들 또는 선조들의 세례 문답 상황이나 행적을 알고 싶어 하는 교인들이 당회록 열람을 요청하는 경우 원본 열람은 책의 손괴(損壞) 위험이 있고, 또 원본 영인본의 일부는 현대인이 읽기 어려운 한글 옛말체 및 국한혼용체로 쓰여 있어서, 일반인들이 손글씨의 속필로 기록된 회의록인 당회록을 해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새문안교회역사관❯에서 봉사하던 박장미 권사의 8년간의 헌신으로 초기 당회록부터 1967년까지 당회록이 읽기 쉬운 현대어로 번역, 정리되었다. 새문안교회 역사자료위원회에서는 창립 136주년을 기념해 사료편찬의 일환으로 『새문안 당회록 현대어 풀이본』을 발간하게 되었다. 총 10권 3천 866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으로 현대어 풀이와 당회록 영인본을 함께 실어 연구자들이 원본과 풀이본을 대조하면서 볼 수 있게 편집되었다.

 

또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권의 문헌 해제와 역대 당회장, 당회서기, 기록 시기 등이 표기된 풀이본 일람표, 역대 당회원 일람표, 1887년~1920년까지 새문안교회를 거쳐 간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 목록, 당회록이 기록된 시기의 새문안교회를 대표하는 사진 등이 게재되어 있다.

 

초기 1900년대의 새문안교회 『당회록』에는 교인들의 세례 문답과 치리(治理: 장로교에서 교인으로서 교리에 불복하거나 불법한 자에 대하여 당회에서 증거를 수집, 심사하여 벌을 내리는 일)와 권징에 대한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교회회의’(현 공동의회: 장로교에서 당회와 함께 교회의 최고 의결기구로 세례교인들로 구성되며 당회장이 소집하되 1주일 전에 공고하며, 교회 초기에는 장로, 집사, 권사 등 직원 선거, 목사 청빙을 위한 선거, 교인의 총의 확인을 위해 소집됨) 내용이 함께 기록(竝錄)되어 있는 점이다. 주요 치리 사유로는 술집 운영자에게 세를 놓거나 주일 성수를 하지 않은 교인, 음주, 남녀학생들의 연애편지 교환, 민며느리를 들이거나 믿지 않는 집으로의 출가, 이혼 등이다. 교회는 당시 이들에게 책벌을 내리기 전에 먼저 해당 교인을 불러 기도하고 권면한 뒤 시행하였다. 우상 숭배(제사)와 7계명(첩을 들인 일)을 어긴 이에게는 엄한 책벌을 내려 출교(黜敎: 교회 명부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림)한 경우도 있는데, 가정을 지키고 기독교인의 거룩한 차별성을 권장하기 위한 일이었으나 요즘 세대 교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내용이기도 하다.

 

당시 문맹인이 많아 교인들의 세례문답 문항에 ‘글의 유무식’ 여부를 묻는 항목이 있고, 부인들의 직업란에 남편의 직업이 기재되어 있으며, 서너 번의 문답으로 주일을 잘 지키고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어야 세례를 받을 수 있어서 매우 엄격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눈여겨 볼만한 세례 문답자들도 즐비하다. 서화가로 영친왕의 서예 스승이자 고종황제의 어진을 촬영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인 천연당(天然堂)을 운영한 해강 김규진(金圭鎭), 그의 아들로 현대 한국화가인 청강(晴江) 김영기(金永基), 1921년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해 한글 운동과 연구에 헌신한 장지영(張志暎)과 최현배(崔鉉培), 국내 최초로 대한제국의 학교와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면허의사 홍석후(洪錫厚)와 동생 홍난파(홍영후), 작곡가 윤이상(尹伊桑),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등에 대한 세례 기록이 있다. 

 

새문안교회 당회장으로는 새문안교회를 설립한 언더우드를 비롯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로 한국에 파송되어 풍기 지역에 사과를 최초 도입한 아더 웰본, 연희전문 교수로 근대과학으로서 화학을 소개한 에드워드 밀러, 언더우드 선교사를 도와 연희전문 설립에 헌신하며 복음 전파에 매진하다 3년 만에 순교한 빅터 채핀, 경신학교장 에드워드 쿤스 등의 선교사를 포함하여, 서경조(徐景祚), 차재명((車載明), 김영주(金英珠), 강신명(姜信明) 목사가 역임했으며, 당회록 서기로는 권서(勸書) 시찰인 송순명(宋淳明) 장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규식(金奎植) 장로, 성경 번역가 이승두(李承斗) 장로 등이 수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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