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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섭 생태칼럼] 교회 마당, 전봇대를 제거하다

공학섭목사(순천대대교회 담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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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섭
기사입력 2024-03-28

앞마당에 있던 전봇대를 뽑았다. 필요해서 세워놓은 전주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주 부근에 몇 채의 집이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여러 채의 빈집이 생겼다. 더 이상 긴요한 전주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전주 이설을 신청했다.

 

나의 예상대로 전주는 뽑아내고 전기 공급이 필요한 가정은 다른 전주에서 선만 끌어와서 간단하게 해결이 되었다. 다른 지점으로 이설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국고 손실에 대한 부담이 따르게 되었겠지만 그런 과정이 없이 마무리되어 다행스럽다.

 

  © 공학섭


전주는 꼭 필요한 것이어도 조망권을 어지럽히는 단점이 있다. 새로운 계획도시들은 전선 지중화를 기본으로 설비하고 있다. 하지만 지중화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가정집이나 상가나 거리 위를 통과하는 전선은 미관과 건강에 좋을 수 없다.

 

우리 마을은 농업용 전기를 공급하는 전봇대 282개를 뽑은 적이 있다. 필요한 전봇대를 뽑은 이유는 새들이 전깃줄에 부딪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인 일이 아니어서 생소하게 여겨지겠지만 그렇게 했다.

 

  © 공학섭


전주를 심는 일은 시간도 소요되고 큰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뽑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흔들거린 치아를 뽑는 것만큼 쉽게 뽑아버린다. 물론 장비가 좋은 탓도 있지만 간단하게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동안 성채처럼 높은 곳에서만 살다 보니 앞을 가리는 것들에 대해서 너그럽지 못했다. 순식간에 전주가 사라지니 시야가 툭 터졌다. 십 년 체증이 내려간 느낌이고, 앓던 이를 뽑아 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 공학섭


창문을 열면 늘 시야에서 어른거리던 장애물이 사라지니 참 좋다. 전봇대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두 동강 난 마을이 합해진 느낌이다. 두 개로 갈라진 듯 보이던 순천만도 하나로 보인다.

 

몇 시간 전 우리 교회를 방문했던 어느 분께서 전후 사방이 시원스럽게 터진 곳임을 확인하고 입을 다물 줄 모른다. 매일 사는 사람도 그렇거늘 숨 막히는 도시 주택가 한 복판이나 아파트 숲에서 콕 박혀 살던 자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 공학섭


전봇대를 치우고도 이런 시원함을 누린다면 마음에 쌓여 있는 죄를 치워내면 어떤 기분일까? 사람들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걸림돌만 치워내면 인생의 장애물이 사라지는 것처럼 여길 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진짜 인생의 걸림돌은 죄다.

 

죄는 하나님과의 원수가 되게 한다.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빼앗아 간다. 죄는 우리 인생을 실패로 이끈다. 정말 신속하게 치워내야 할 것은 죄악이다. 사람의 힘으로 죄를 제거할 수 없다. 죄를 뽑아내는 일은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된다.

 

이번 주간은 예수님의 고난 주간이다. 우리의 영혼을 어둡게 하고,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 곧 죄악을 뽑아내시기 위해서 고난을 겪으셨다. 아무리 무겁고 큰 죄라 해도 예수의 피로 인하여 깨끗케 할 수 있다. 장비를 가지고 전봇대를 간단하게 뽑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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