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김준곤 목사 설교] 한 창녀의 이야기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누가복음 7:36~50)

가 -가 +

김준곤
기사입력 2021-04-25

누가복음 7:36~50

▲ 1984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열린 '84세계기도대성회에서 김준곤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뉴스파워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개인적으로 만났던 34명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여성들이 나오는데 대개는 불행 한 여인들입니다.

귀신들렸던 막달라 마리아, 십이년 동안 혈루증으로 세상과 가족에게서까지 쓰레기장의 휴지 뭉태기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졌던 여자, 군중 속에서 기어가서 예수님의 뒤로 옷자락을 만졌던 여인, 사마리아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주님이 찾아가 만나 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여인, 그리고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혀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여인, 그리고 나인성 부자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받아 식사하던 주님을 찾았던 창녀의 이야기가 한 폭의 그림같이 인상적입니다.

성경의 사건들과 주님과 만나는 인물들 사이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영혼의 단면이요, 역정(歷程)이요, 극화된 실존 체험인 것입니다. 현대어(現代語) 번역에는 이 죄 많은 여인을 직접 한 거리의 창녀라고 번역했습니다(눅 7:37).

그 시대의 사회 현상은 양돈업자가 돼지 키워 고기로 팔듯, 버려진 아이들을 키워서 남자는 노예로 팔고 여자도 노예나 창녀로 팔아넘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창녀는 생일도 모르고 부모도 주소도 이름도 없습니다. 의식의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인간과 세상에서 받은 것은 혹사와 채찍과 냉대,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과 고달픔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추억 속에는 슬프고 아픈 것들과 함께 아무리 가난했어도 인자하고 따뜻한 부모의 품과 손길이 있고 생일도 있고 설날도 있었고 살던 집과 골목길에 그리운 사람들, 생각나는 사람들이 사막의 샘터처럼 살아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어릴 때에는 무지개처럼 뭉개구름처럼 먼 미래 속에 피어나는 낭만과 청춘과 희망과 꿈이 있는 법입니다. 신데렐라처럼 막연하나마 어느 날 어느 하늘 아래서 어느 행운의 왕자가 찾아 줄지도 모를 기다림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창녀에게는 이제는 슬퍼도 눈물마저 말라 버리고 줄이 다 끊어져 버린 몸통만 남은 거문고 같이 감정이 굳어져야 살 수 있었습니다. 기다려지는 사건도 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란 사람은 모조리 적이고 짐승같이 무섭고 싫습니다. 밤마다 몸을 산 남자들이 배고픈 맹수처럼 그녀의 육체를 괴롭혔습니다. 한 사람도 사람으로 대한 일이 없습니다.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돌을 던지고, 여자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고, 남자들은 희롱을 했습니다. 그래도 가끔 식료품과 일용품을 사러 장에 갈 때면 사람을 피해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총총히 뛰어오곤 했습니다. 나인성 흙담집에 낮에는 밤새 시달린 몸을 움츠리고 자다가 눈이 뜨면 허허한 눈매로 천정을 쳐다보며 내일은 생각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어떤 남자가 어젯밤 예수의 이야기를 들려준 기억이 났습니다. ‘메시야가 와서 죽은 자를 살리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였대.’ ‘새 세상이 온 거야.’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마음의 갈피마다 성경의 페이지마다 메시야만 오면, 그 날만 오면 민족이 해방되고 자유와 풍요와 선민(選民)의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황홀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소문은 온통 이스라엘의 화제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창녀에게는 타국처럼 무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날은 장에 가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성에서 나오는 과부의 아들 시신을 메고 나가는 상여와 성으로 들어오는 일단의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에 선 분이 상여를 멈추게 했습니다. 잠자는 사람을 깨우듯 죽은 자를 보고 일어나라고 명했습니다. 살아난 생명을 풀어주라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눈을 의심 했습니다. “메시야다. 이스라엘의 메시야다.” 외치며 사람들의 물결이 강물처럼 예수를 뒤따랐습니다.

창녀도 빨려 들어가듯 그 흐름의 뒤를 따랐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 오라. 죄인들도 오라. 가난한 자도 병든 자도 목마른 자도 오라. 세리도 오고 창녀도 오라. 내가 평안과 치료와 구원을 주리라. 나는 길이다. 진리이다. 생명이다.’ 이렇게 주님은 자주 군중 앞에서 설교했을 것입니다.

창녀는 참으로 처음으로 하나님 같은 사람, 사람 같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말씀마다 그녀의 가슴에 못 박히듯 박혀지고 그녀만을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오! 주여….’ 마음속의 마음에서 불러지는 기도보다 절실한 신음 같은 것을 듣습니다.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예수라는 메시야, 그분을 만나야지.’ 밤이 되기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나인성 유지 시몬의 집에서 식사한다는 뉴스가 성 안의 톱뉴스입니다. 그 창녀에게는 한화 싯가로 300만 원쯤 하는 아라비아 향유한 옥합이 있었습니다. 부잣집 딸들이 혼숫감으로 장만하는 고가품입니다.

창녀들에게는 무의식의 보상 심리가 작용합니다. 처녀들이 일생에 지상의 남자 중 단 한 사람을 택하여 단 한 번밖에 없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만큼 신성하뇨 소중한 처녀성을 바치는 법인데 창녀들은 그것 이 짓밟혀 버리고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 인가 처녀성 대신 소중히 간직하는 부상물을 찾습니다.

이 창녀의 도적맞은 전부, 가지고 싫은 전부, 누구에겐가 바치고 싶은 목숨이고 사랑인 한 옥합의 향유를 예수의 뒤로 발 곁에 서서 울며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고 입을 맞추며 향유를 몽땅 부었습니다(눅 7:44∼50).
얼마나 울었을까요? 예수를 만났을 때만 흘리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가진 흠도 티도 없고 마지막 남은 순수한 것은 바로 이 눈물입니다.

처녀가 남자를 만나면 여자가 되고, 그 여자가 예수를 만나면 다시 처녀가 됩니다. 창녀가 예수를 만나면 처녀의 처녀가 됩니다. 눈먼 것마다 다시 보이고 막혔던 귀가 열리고 언어가 터져 나옵니다. 가닥가닥 끊어진 영혼의 거문고 줄에서 노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둠마다 빛이 비쳤습니다. 죽은 것마다 살아나는 순간 귀신들이 그 몸에서 쫓겨 나가고 가슴의 불길마다 눈물의 강마다 주를 향해 흘렀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눈물은 그녀가 주께 드리는 예배요, 기도요, 슬픔이요, 한이요, 사랑이요, 헌신이 었습니다. 머리를 풀어 주님의 발의 먼지와 땀을 젖은 눈물로 씻었습니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향유도 쏟아 부었습니다.

주님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어 주었을 것입니다. 눈동자와 눈동자가 만났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만났습니다. 죽은 것이 생명을 만났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성스런 광채가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구정물 통에서 건져낸 쥐같이 생긴, 갓 깨어난 병아리가 보송보송 노란 솜털 병아리로 변화하듯이, 번데기에서 꽃잎 같은 나비가 나오듯이, 흑백 사진 원판이 총천연색 입체 사진으로 영상이 되듯이 생명이신 주님 눈동자 속에서 갓 태어나고 있는 이 창녀는 정녕 주를 영접하고 인격적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 신비스러운 중생의 현장을 상상해 봅시다. 창녀를 탕아의 눈으로 구경하고 있던 시몬과 바리새와 구경하던 남자들의 얼굴이 조금씩 숙여지고 성모 마리아 같은 자애롭고 거룩한 눈빛으로 처음으로 쳐다보는 남자들은 지금도 그 시선 앞에 눈을 피하고 있습니다. 이 창녀는 그 순간부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 버린 사람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사람입니다. 주님이 골고다 길 무거운 십자가 지고 쓰러졌을 때 피와 땀으로 범벅된 그 얼굴을 그 살벌한 로마 군인의 위협을 무릅쓰고 너울 벗어 씻어 주고 물을 마시게 했던 베로니카 전설의 여주인공도 그녀였으며, 주의 무덤을 찾은 여인 중의 하나도 그녀였으며, 저 예루살렘 다락방의 120명 중에도 그녀가 있었고, 주를 사랑하다가 사랑하다가 울다가 울다가 증거하다가 증거하다가 꿈속, 무의식 속에서도 부르다가 부르다가 사도행전에서 순교한 무명의 성녀, 그리고 입 맞추는 그녀는 바로 창녀 같은 내 영혼의 자화상인 듯싶어 이 글을 씁니다. 부르다가 부르다가 주님과 내가 함께 죽은 십자가를 생각하며 영원을 다하도록 내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싶습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86년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뉴스파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