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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목사 논단]인식의 문제와 특별계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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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기사입력 2021-05-28

▲ 왼쪽 사진은 김준곤 전도사 가족(인정진 사모, 은희) 1948년 7월 9일 졸업식 기념     ©뉴스파워


51인 신앙동지회는 정통을 사랑하는 신학생 중심의 모임으로 이들은 1948년 제34회 총회에 조선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한다. 총회는 조선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조사하여 조선신학교의 직영을 취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51인 신앙동지회가 남산 장로회신학교 개교시 편입학 하여 1개월 만인 194879일에 졸업을 했다. 당시 김준곤 목사는 북만노회 소속이었다. 51인 신앙동지회가 <불기둥>1947129일에 창간호를 발행했다. 8호 불기둥(1952322)에 김준곤 목사의 "인식의 문제와 특별계시()"의 글이 게재되었다. 이를 정리하여 게재한다.(뉴스파워 편집자 주)

6.
실천이성이 인식할 것이 무엇인가

 

 칸트에 의하면 인간의 도덕의식, 선의 추구, 도덕이상의 동경, 선악의 구별, 양심의 지상명령의 의식은 인간적 기원, 경험적으로 자연물에서 기원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내재력이다. 이 내재력은 도덕적 실체인 신으로부터 온 것이라 했다.

 

 이 당위의 관념은 즉 양심, 도덕적 핵임관념은 신의 소리이며 결코 자아가 생산한 것은 아닐 것이니 자아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려고 하여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이는 사회의 의지에서 발생한 것도 아니리라. - 양심은 그 시대의 사회의 여론에 반대하여 책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리하여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종래의 유신론증을 비판했으나 실천이성비판에서 신과 내세의 존재는 수학에 있어서의 공리와 같은 자명의 것이라고 증명해Te.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불가항적으로 신과 내세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하자도 나로 하여금 이 신념을 동요케 할 자가 없다. 왜그러냐하면 이 신념을 버리는 것은 나의 도덕적 입장을 포기하는 것이고 나는 그러한 거부를 견딜 수 없다.

 

 이상과 같이 인간의 이성은 도덕적인 신을 인식했다. 그러나 이것은 신이 부여한 양심의 계시를 가지고 인식한 일반계시에 의한 신에 대한 일반적 지식인 것이다.

 

7. 플라톤은 무엇을 인식했는가

 

플라톤은 지식의 방법을 연역에서 출발하여 진, , 미는 경험에서 얻을 것이 아니라 이런 관념은 선천적으로 심령에 내재한 것이나 그 의미내용이 경험에 의해서 의식되는 것 뿐이라 하였다.

 

 플라톤은 물의 형식 또는 관념은 경험상의 물상을 떠나서 독재하며 선압하며 현상계의 사물은 초경험적 관념의 모사에 불과하다 했다. 그는 선이 최고관념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모든 관념은 상대적인데 즉 1은 다(), 동은 부동의, 실재는 허무의 반대개념을 가졌는데 선은 악의 반대가 아니라 악은 선의 결핍을 의미하여 실유가 아니라고 했고 선은 절대관념, 지상관념, 독일의 신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바 실재란 것은 관념이며 무변, 영원하나 유전의 현상세계는 모사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 심리의 설명에 있어서도 관념계와 현상의 2요소로 구분해서 영혼의 일면은 불변불멸 선천적이며 관념(이성)의 세계와 상통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나 일면 현상계에 속한 의지와 육욕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심령의 삼분설을 성립시켰는데 영혼(이성)은 관념계 (실존)에 속하여 현상세계에 속한 의지와 육욕을 연결하는 삼각탑으로 보았다. 이리하여 플라톤은 진, , 미의 이해를 영혼 (이성, 관념)을 통해서 발견했다. 그리고 인간영혼은 그 고향인 관념의 세계, , , 미의 세계를 회상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도 자연이성을 통해서 신의 자연계에 계시된 속성을 일반적으로 안 것이다.

 

 이상에 오인은 신이 자기를 계시하는데 일반적 방법으로 인이 신에 대한 일반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자연의 사물과 그것의 해석기관으로서의 감각과 선험적인 심리의 지식 범주와 도덕적인 이성(양심)을 통한 신의 도덕적 속성에 대한 추리, 관념적 이성을 통해서 진, , 미의 절대계를 상기하는 기능등을 설명했다. 그러나 신이 자기를 친히 인격적으로 특별방법을 통해서 특수한 사건을 계시했으니 성서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역사 그것이다.

 

6 특별계시를 논함

 

인지는 신지를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 21)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 : 17)

 

"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알자가 없다."

"성신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1. 거듭나야 안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데 절대진리 절대생명은 자연 이성을 통하여 이해된 것이 아니라 신이 창조하여 주시는 중생한 신앙적 생명의 이성을 통하지 않고는 그 구원을 위한 절대적인 특별사실은 영원히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영적 능력과 고등한 이성의 파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적 요소를 통해서 이 천계의 사실을 수납할 가능성은 전무한 것이다.

 

2. 성령으로만 안다.

 

 일반이성을 성서의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내용을 이해하고 신학적 의미를 해득한다 하여도 성령이 그 마음에 임하기까지는 그것은 사문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영은 영으로 알 것이다. 신의 일은 신의 영인 성령만 아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구속의 특별계시를 재료로 하고 그 재료를 가지고 오인의 구원의 능력이 되게 하는 해석을 그이를 통하지 않는 한 우리 성래의 자연인의 능력으로는 그 소기한바 효능을 해득할 수 없는 것이다.

 

3. 그것은 성서를 재료로 한다.

 

 이 특별계시는 성서의 역사적 사실들과 교훈들을 통해서 나타났다. 성령은 성서만을 말씀으로 사용하시며 인간은 성서의 말씀에 의하지 않는 한 성령의 조명과 그의 창조적 능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비유컨대 성령은 불이라면 성서는 섭(연료)과 같다. 섭이 있어야 불이 붙고 불이 있어야 섭은 탄다. 성령의 말씀은 곧 성서이며 성서는 진리이며 성령은 그 진리의 생명인 것이다.

 

4. 신앙으로만 안다.

 

 모든 기본되는 진리와 마찬가지로 이 진리 이 계시 이 신은 믿지 않으면 아니된다.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증명될 수 있는 그것 때문에 중요치 않는 것이다. 증명은 만질 수 있으며 볼 수 있는 현상에 관해서만 가능하다. 신앙만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왜그러냐 하면 신은 이론적 이성에 의해서 알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의의 행위에 의해서 이해되지 않으면 아니되는 까닭이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법칙의 불변성을 가정하고 신앙하는데서 지식이 성립된다. 신앙 이후에 경험과 이해가 따르고 경험 이후에 신앙과 이해가 따르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인간은 죄와 죄책으로 인하여 신으로부터 분리되어있다. 인간이 창조된 당초에 있어서의 신과의 본래의 결합은 파괴되었다. 인간은 생명의 나무에서 절단이 되어 있다. 그런고로 회복할 수 없는 모순이 우리의 생명에 달려 붙어 있다. 이 모순은 바로 인간의 본질의 특징이다. 인간이 신에게 복귀하는 가능성은 영원히 없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방법은 죄 있는 방법 뿐 이다. 죄인에게는 무죄에의 길튼 없고 신의 적에게는 평화에의 길은 없다. 왜그러냐 하면 인간은 어디를 가든지 이 모순이 그에게 동반하는 까닭에-----

 

그러나 신이 신정한 특수 방법에 의해서 접근에의 길 화목의 길을 준비하고 그것을 신앙으로서 수납하도록 유일의 길을 제시하셨다.

 

5. 신은 인격이기 때문에 계시와 (신편) 신앙(인편)으로만 이해된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 : 18) 

 

이교의 자연종교나 범신론적 종교나 심리종교들(불교등)은 자기 경험 혹은 영혼의 심저에서나 자연세계의 심저에서 신을 찾는다. 그러한 신은 이 자연세계와 자기영혼 이상으로 뛰어나지 못하며 세계와 자기를 신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신은 인격적이 아니며 인격적이 아닌자는 나보다 나은 자도 아니며 나보다 못한 자도 아니다.

 

왜그러냐하면 인격적인 자는 비인격적인 자를 초월하는 까닭이다. 또한 세계 또는 나 자신의 해석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 신은 나보다 못한 자다. 왜그러냐 하면 이를테면 내가 벙어리인 그에게 발언을 주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나를 통해서만 인격자가 되는 것이다. 인격적 신에 관한 지식은 신이 인격적으로 자기자신을 계시하는 경우에만 얻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세계가 알지 못하며 보여주지도 않는 신비한 신. 내가 알지 못하며 도한 내적 자아도 나타내지 않는 초월한 절대 신이 세계 안에 오셔서 그의 오묘한 미지의 의지 (즉 인간의 심정, 사상, 의향이 생각하지 못했던)를 계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세계 이상 인간 이상의 초월하신 분, 절대자, 무한자이어서 유한 상대적 세계와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창조주요, 이 세상 이외의 존재이며 또한 인간의 영혼과는 달느 타자이며 신비하고도 불가지의 존재이며 그는 인격이시다. 인격은 비밀이다. 인격을 아는 것은 다만 그 인격자가 상대자에게 자신을 계시할 때만 가능하다.

 

인과 인의 교제에 있어서도 일자가 타자에게 말씀으로 자기를 표현하지 않는 한 마음과 마음이 통하지 못한다. 그는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다. 인격적 말씀(로고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1:11) 우리가 만져보고 듣고, 사랑하고, 친히 들은 바의 인격적인 말씀, 신자 예수 자신을 통해서 계시했다.

 

이 계시가 다른 자칭 계시종교와 다른 점은 계시의 단일회적인 역사적 사실에 있으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3일만에 살아나시고 하는 사실인 것이다. 이 계시를 통해서 나타나 그리스도가 이해되는 기관은 과학자의 실험이 아니라 역사가의 비판적 눈이 아니라 이성의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신앙자의 영적 마음의 눈인 것이다.

 

6. 이성과 계시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중에 세가지 종류가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과학적 태도인데 그것은 사물의 사실과 사실의 관계를 상대적으로 외부의 현상을 문제삼는데 분석, 통합, 연결등의 방법이다. 또 하나는 형이상학적인 탐구인데 그는 존재 총체에 관해서 ()과 실재, 영혼과 궁극의리등을 냉정한 이성의 메스로서 문제를 도마 위에 놓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탐구할 것이다. 이때에 진리의 관정자, 최후의 심판자는 인간 자신의 이성일 것이다. 이때에 진라는 이론의 관물 즉 세계관이며, 이성의 대상일 것이며, 그 발견된 진리는 혹은 심미적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탐구의 제3 방법은 범속한 관심으로 냉정한 과학적 분석이나 관망자의 이성의 대상으로서 논리적인 추상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구조를 절망적으로 부르짖는 물에 빠진 사람의 열정으로서, 목마른 사람이 시냇물 찾는 것처럼 진리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을 알 수 없다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전영적인 열의의 탐구가 신을 알 수 있는가?

 

 이것은 문제 중의 한 문제가 아니라 최고의 문제이며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파생되고 가치가 진가를, 생명이 으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진리는 이념이 아니라 가치가 아니라 인격인데 진리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누구입니까?”-----하는 신앙적 인격적 탐구로 변한다. 이성은 이 열망 앞에 무력함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인간의 권(실재와 실재진리에 대한 인간의 가지는 본질적 범위) 이 즉 인간 이성이 파급되는 권이 궁극 최후의 권이라면 우리 이성은 만물의 척도가 되어 최후의 표준이 되고 인간의 심저에서 즉 인간성의 본질 가운데서 신성을 발견하며 자기성찰과 내관만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인간 자신이 가진 권이 이 우주의 최후의 권이 아니고 그 이상의 실재와 그 이상의 권을 인정한다면 인간 이성은 겸손히 그 독단적인 교만의 문호를 개방하고 계시에 대한 수용적 태도 신앙적 태도를 가질 것이다. 이성에 의해서 측정되는 신은 플라톤의 진, , 미의 관념이거나 칸트의 도덕적 신일 수는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 속죄의 신은 아니며 주가 아니며 아버지의 신이 아닌 것이다. 죄의 핵심이 이성의 자랑인데 창세기의 아담이 지식이 신과 같이 되어하는 근대적 번역을 찾을 수 있다. 신은 우리 이성이상에 넘지 못하기를 인간은 원한다.

 

 그러나 신의 진리는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인간 이성 이상의 이성에서 오는 진리인 이상 본질적으로 인간이성에 어리석은 것이 되고 인간의 자랑에 거리끼는 때도 있나니 고린도전서 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라는 말 가운데 나타나 있다.

 

 히브리 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했다. 신앙은 계시사실을 이성의 증명에 의하지 않고 내 안에 나 아닌 새로운 나의 중생인의 이성에 의해서 수납하는 것이다. 즉 신앙은 불가견을 견하고 불가지를 지하는 인식의 최고 수단이고 최고 형식이며 자아인출적인 무엇이 아니고 천래적 외래적인 인식범주인 것이다. 이 천계의 사실을 자연이성과 오성의 범주인 시, , 인과관념 분량범주 성질범주 관계범주 양태범주에 의해서 해석되는 인식재료가 되지 못한다.

 

 양심이 인내에 있는 신의 소리인 것 같이 신앙은 계시를 들을 수 있도록 또는 계시를 생명화할 수 있는 천래의 선물이며 영적 인식, 신적 인식의 수단인 것이다.

 

 하고로 삼위일체의 천계의 진리를 신앙하느냐 물으면 무오하신 최고의 권위이신 신이 계시하였기 때문이다. 진리이신 신이 계시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동기 신앙의 수단은 다 산앙자체에 있고 계시자체에 있다. 이 말은 신에 의해서 신으로 말미암아 신에 있어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성은 이 경우에 순종적 이성, 동의 이성이며, 능동적 이성, 진리의 최고 심판자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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