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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화가 박영의 귀촌일기(5)] 시냇물처럼 조용히 길을 내며

박영 화백(홍대 미대 서양학과, 프랑스 유학, 크리스천정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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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
기사입력 2021-06-05

▲ 나눔의 화가 박영의 그림     © 박영

내 아틀리에가 있는 바우땅(바위) 위에 비가 내린다. 비가 내려 갈라진 틈새로 시냇물이 흐른다. 자잘한 돌로 둑을 만들어 물이 고이게 하니 금세 작은 둠벙이 된다. 두 손 가득 물을 모아 세수를 한다. 인공의 세숫대야가 아닌 천연의 상태에서 눈, , 입을 닦으면서 잠시 행복해 진다.

 

시골생활은 그야말로 자연의 세계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사람이다. 순리대로 살면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보이는 사람은 지상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섞여 살 뿐이다. 자연의 힘은 어설프지만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 미명 속에 밝아오는 태양의 빛에 감히 누가 저항하겠는가. 바우 땅을 갈라 시냇물이 흐르게 하는 불굴의 힘, 하늘 향해 쭉쭉 뻗어가는 대나무를 보면서 침묵을 배운다.

 

인간들은 바다를 막고 논, 밭을 조성한다. 내가 사는 내사리도 예전에는 염전이 있고 바다가 문 앞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때 살았던 사람이 혹 부활하여 이곳에 온다면 놀라서 기절할 것이다. 인간은 이렇듯 대자연의 순리를 역이용하여 자기 이익대로 마구 파헤치고 급기야는 너무 훼손하여 대자연을 병들게 한다. 자연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이기적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처지를 알 때 겸손하고 순수해진다. 순수함, 우리는 구정물 같은 세상에서 얼마나 순수함을 갈구했던가.

 

비는 계속 내리고 내 아틀리에도 조금씩 눅눅해진다. 항상 깔끔하고 칼 같이 정돈하고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투덜대던 내가 이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다니. 그동안 나는 너무 자연과 떨어져 회색 그늘 아래서 영혼이 혼탁해졌음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창조정원에서 벗어나 너무 진창을 헤맨 탓일까. 기진맥진하여 원색을 잊어버린 화가는 과연 무엇으로 캔버스를 채울 것인가.

▲ 박영 서양화가는 서울대 미대 김병종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 기독교 미술 작가로 뿐만 아니라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다. 해남읍 내사리 아뜰리에     ©뉴스파워

시냇물처럼 조용히 길을 내며 낮은 곳으로 흐르고 싶다. 낮은 데로 갈수만 있다면 순리대로 주님께서 이끌어 주실 것을 난 믿는다. 확신과 교만함, 그래도 너보다는 내가 낫다는 우월의식을 과감히 패대기쳐야 한다. 별 볼일 없는 내가 뭐가 그리 잘 났다고 의시 댔단 말인가.


비는 하염없이 내리건만 난 꼼짝하지 않고 비를 맞는다. 빗속에서 내가 본 숲은 고요하다 못해 소금에 절여져 이내 숨죽은 채소 같다. 내가 절여서 소금기가 몸에 배이듯 숲은 비에 절여 있다. 싱싱한 초록에서 드디어 어둠의 빛깔이 난다. 내 그림은 늘 우울하고 어느 땐 적막감이 든다. 어릴 적 병들어 학교를 가지 못하고 토방에 앉아 하루 종일 비를 구경한 적이 있다. 어느 때는 마당에 미꾸라지가 굽은 몸으로 흐느적이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미꾸라지와 한 곳에 머문다. 과연 어디서 왔을까.

! ! !

힘찬 빗소리를 들으면서 홀로 비에 취해본다. 비극은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이다. 시골의 밤은 조금씩 아침 창가로 나를 데리고 간다.

 

 

*박 영 화백 /크리스천정신문화원 원장인 나눔 화가 박영 목사는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홍익대 서양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를 졸업한 뒤 미국 풀러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구원사역 중심인 한국교회에서 폭넓은 문화사역자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이미 다일공동체(최일도 목사기금 조성을 위한 작품전두레공동체 (김진홍 목사)장학 기금 조성을 위한 작품전아프리카 케냐 진료소(황성주 목사건립을 위한 작품전아가페신학원 건립을 위한 작품전 등 수십 차례에 걸쳐 나눔과 섬김을 위한 전시회를 가졌다또한 작품전에서 판매된 작품은 전액 기부하는 이 시대의 작은 예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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