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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목사 신학사색] 코로나 끝자락이 보이는 이때

-경건에 힘쓰고, 겸손히 주님 앞에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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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기사입력 2021-06-06

 

 

▲  로키 마운티의 에스데스 팍의 모습: 하늘, 구름, 산. 호수, 각종 꽃, 들불, 나무, 짐승들은 변함없이 봄, 여름을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혹독한 지난 겨울의 눈바람 속에서도 굳건히 견디고 생명의 주 되신 주님을 높힌다. 칼빈의 말처럼 자연은 하나님의 극장이요, 제 2의 성경이다.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을 탐방하면서 자연에 비해 너무나 추악한 인간의 자태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오 주님, 코로나 끝자락 속에서 더욱 겸손하게 살게 하소서    ©뉴스 파워 정준모

 

시작하는 말) 백신 보급과 투여로 코로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과학자들과 의료진들의 노력에 감사드린다.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로 수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새로운 경각심과 경계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특히, 어떻게 대처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많은 지혜와 대책을 깨우쳐 준다. 특히, 백신이 나오기 전, 현재까지는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격리라는 물리적 방안이 최고의 방책이다. 또한 평소에 면역력이 높고, 건강관리를 잘한 지병이 없는 자가 바이러스로부터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상식이 확인되었다.

 

우리는 육체적 건강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점검을 실시한다. 어떤 선진국보다 대한민국은 의료복지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앞서고 있다. 특별히 매년 혹은 2년마다 한 번씩 기본 건강 검진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을 수명을 늘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육체적 건강보다 더 소중한 영적 건강에 대한 정기 점검은 어떠한가? 성경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13:5)에 말씀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영적 건강을 검진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육체의 건강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소홀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건강 상태가 악화될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영적 건강 상태를 외면하고 소홀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영적 침체와 위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적 건강을 해치는 요인을 무엇인가? 육체적 건강을 해치는 것이 과로, 스트레스, 음식, 운동부족 등의 다양한 요인이 있다. 마찬가지로 영적 건강을 해치고 있는 요인도 다양하다. 교만, 나태, 단절, 욕망, 시기, 다툼, 더러움 등 다양하다.

 

영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원리는 무엇인가?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기적 검점, 운동, 절제, 스트레스 해소, 정신적 안정, 육체적 휴식 등 다양한 방법에 따른 원리들이 있다.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4가지 원리를 따라야 한다.

 

1. 거룩과 성결의 심령을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

 

더러운 마음은 영적 건강을 해치는 주요인이다. 거룩과 성결한 마음은 죄를 멀리하고 죄를 청산하는 마음이다. 죄는 영적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난리였고 난리 중이고 또 다른 난리가 올 수 있다. 바이러스를 멀리하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마스크를 끼고 사회적 격리를 하지 않았는가? 죄는 바이러스다. 멀리하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영적 바이러스의 목록이 성경에 나와 있다. 갈라디아서 519-21절에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밝히고 있다. 사실 위의 영적 바이러스들이 심정에 침투했을 때, 영적 무기력, 영혼의 침체, 영적 전쟁의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영적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을 때, 신속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영적 싸움이기에 쉽지 않다. 경성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베드로전서 5:8-9 말씀을 귀담아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영적 안목을 확충하고 직시해야만 영적 보이지 않으나 실존하고 사악하게 공격하는 어두움의 세력인 사탄, 마귀, 어두움의 권세인 적의 진지를 깨뜨릴 수 있다.

 

존 웨슬레는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Awake, Thou That Sleepest)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놀라운 말씀을 했다.

 

영혼의 깊은 잠을 자는 사람은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오히려 온전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의 족쇄로 매여있어 시시각각 죽음의 골짜기로 향하고 있음에도 자신은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억센 마귀가 자신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데도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심판의 불이 자신 앞에서 타고 있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영혼은 문둥병에 걸려 하나님 형상을 상실했고 날마다 죽어가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그저 현실의 삶에 만족하고 자신의 질병과 그 치료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2. 마음의 습관을 항상, 날마다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규칙적인 운동하는 것을 소홀히 하다가 갑자기 무리한 운동을 하므로 발에 근족염이 생겨서 얼마 동안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영적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성결한 삶은 마음의 습관과 깊은 상관이 있다. 마음도 시시때때로 변화된다. 그러나 그 변화무쌍한 마음을 성령님과 말씀을 의지하여 자신의 의지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성결에로 힘쓰도록 결단하고 그 결단이 자신의 영적 가치가 되고 목표가 되어야 한다.

 

행동이 쌓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이면 성품이 되고, 성품이 쌓이면 자신의 인생이 된다는 말이 있다.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거룩한 습관, 거룩한 마음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하루에 보통 아침 시간, 저녁 시간 약 1시간 정도 산책을 하는 것이 일과가 되고 습관이 되었다. 그런 규칙적인 산책 습관을 잠시 깨어질 경우에는 육체적 컨디션이 좋지 않고 하루 일과가 상쾌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 영적으로 마찬가지이다.

 

성령의 열매는 성도들의 심령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이다. 또한 그 성령님의 역사는 인격의 열매이다. 인격의 열매는 훈련의 결과이며, 습관의 결과이기도 하다. 내주하셔서 감화, 감동을 주시고,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나 이것은 수용하고 적용하는 결단은 우리 자신에 달렸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 인격과 인품 속에 맺어지는 열매이다. 그 열매는 바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 이것은 일시적 기분이나 감정적 충동으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속적인 인격의 연단과 훈련 속에서 이루어 진다.

 

스펄전 목사의 거룩을 위한 그의 결단과 각오에 대한 글은 매우 도전적이다.

 

그리스도는 마음의 주인이 될 것이며, 죄는 죽어져야 합니다. 자신의 삶이 경건하지 않으면 즉,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구세주는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죄악에 대하여 증오하시고, 거룩을 사랑하게 하실 것입니다. 새롭게 하고, 죄악에 대한 증오를 주고, 거룩함에 대한 사랑을 줄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거룩하게 만들지 못하는 은혜라면 그것은 쓸모없는 위조지폐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십니다. 그 누구도 거룩함이 없이는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3. 마음속에 일어나는 육체적 욕구를 즉각 잘 통제하여야 한다.

 

마음의 욕구는 항상 세속적이고 육체적이다. 마음의 욕구는 욕망으로 포로가 되게 한다. 우리의 속사람과 인격은 아담 안에서 이미 죽었다. 육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적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듭난 후에는 옛 육과 새 영의 싸움과 갈등이 일어난다. 육신의 소육과 성령의 소욕의 싸움이 우리 마음에서 일어난다.

 

이때, 마음의 욕구를 통제하고 절제시키지 못하면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가령, 중독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의 욕구를 절제하지 못할 때, 점점 더 강한 것으로, 점점 더 육욕적으로 번져가고 습관화 되어 버린다. , 마약, , 도박 기타 모든 것이 같은 죄의 성향이요 욕구이다.

 

우리 중생 이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될 것이며, 이제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죄가 왕노릇하는 것으로부터 주의 영이 왕노릇하며 옛 왕이었던 죄의 다스림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즉 죄의 소욕을 죽여야 한다. 그 죄의 소욕을 죽이는 것이 바로 성화이며 이것은 성령의 도움 속에서 자신의 결단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중생 이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될 것이며, 이제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죄가 왕노릇하는 것으로부터 주의 영이 왕노릇하며 옛 왕이었던 죄의 다스림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즉 죄의 소욕을 죽여야 한다. 그 죄의 소욕을 죽이는 것이 바로 성화이며 이것은 성령의 도움 속에서 자신의 결단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단은 마음의 통제를 지속적으로 이루어가는 것이다.

 

마음의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결국 건강한 그리스도인 될 수 없다. 죄악의 욕구와 욕망의 지배를 받아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이 반복된다면 그 반복된 영적 습관, 마음의 습관이 전 인격의 굴레가 되고 습관화가 된다면, 결코 성령의 사람, 성화의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영적 건강과 승리적 삶을 위해서는 소극적 처방과 더불아 적극적 처방이 따라야 한다. 육체의 소욕과 죄악을 멀리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하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해드리는 삶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겸손하고 그 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9절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여기서 거하든지 떠나든지는 바울이 육체에 거하여 세상에 머물든지 아니면 육체를 떠나 주님께로 돌아가든지라는 뜻으로 살든지 죽든지라는 말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놀라운 고백을 한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살고 죽는 문제를 떠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그의 가장 고상한 목표요 소망으로 삼았다.

 

제임스 패커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삶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 곧 성화의 삶이란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은 기뻐하고’, ‘비우고’, ‘부인하고’. ‘죽어가는훈련과정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이 축복, 하나님이 과거, 현재, 미래의 사역,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을 묵상할 때, 크게 자신의 삶이 경건하지 않으면 즉,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구세주는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죄악에 대하여 증오하시고, 거룩을 사랑하게 하실 것이다.

 

결론) 2020년 코로나 팬더믹 이래 지구촌에는 엄청난 죽음의 늪에 휩싸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코로나 대유행의 끝자락이 보이고 있다. 인류에게 특별히 교회와 성도에게 보여준 교훈은 실로 크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쉽게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아직도 대의명분은 성경을 인용하고 그렇듯하게 보이나 실로 인간의 내면의 죄악은 진실로 회개하고 토로하는지 의심스럽니다.

 

어느 기독인들의  카톡방에 나열된 글들을 보면, 그 시간에 경건의 훈련에 몰두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힘쓰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간절하다. 비판하고 부정하는 부채질하고, 타인을 존경하고 격려하는 문구보다 남을 뜯어 내리고, 모욕하는데 앞장서고 함께 희희낭랑거리는 꼴불견의 광경을 본다. 안타까운 것은 인생의 연륜을 쌓여가면서도 아직도 육에 속한 일련의 자태들을 보면서 인생이 얼마나 악하며 저렇게 변하지 않을까? 스스로 자문자답해 본다.

 

코로나 대유행에 살아남은 것만도 겸손히 감사하고, 보다 더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호흡이 있을 때, 더욱 경건에 힘쓰고 주님 뵈올 날을 생각하며 남을 날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길 소망한다. 요엘의 말씀처럼 옷을 찢는 종교적 행위는 이제 멀리하고 진정으로 주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과 공동체, 민족과 열방을 향해, 마음을 찢고 통렬한 기도의 제물과 불쏘시개가 되길 바란다.

 

위에 소개된 사진처럼, 로키의 산자락 아래서 자연의 웅장함과 그 자태도 귀하지만, 그 자연이 주는 주님의 메시지가 놀랍다. 변함없는 모습과 그 자리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자신의 삶 속에 투영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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