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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설교] 변천하는 한국 속에서의 크리스천의 자세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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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기사입력 2021-07-21

성경: 시편 4:3

▲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라는 슬로건을 걸고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한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한국의 대(對)기독교 풍토
  일찍이 한국의 근대화와 항일 반공에 앞장서서 존경을 받았던 기독교는 이제 그 자신도, 세상도 특별한 기대를 가지지 않은 채 민심에서 점점 소외되어 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해방과 더불어 이 땅을 휩쓸고 간 공산당이 남기고 간 것도 적의에 찬 기독교 비판이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어느새 자유당이 뿌려 놓은 악정(惡政)의 책임까지 전가 받았고, 구호물자와 더불어 들어온 ‘달러’와 교파들과 밀물처럼 잇달아 들어오는 전후사조들의 대개는 서구 기독교를 고발하는 비판과 회의와 냉소와 반향을 그 생리로 한 것이어서 평온했던 한국 기독교는 그런 것들을 소화할 만큼 성수(聖守)하지도 못했고, 지성인 사이에 지금도 유행되고 있는 소위 실존주의 인간이라는 그것 역시 과잉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신을 등지고 허무와 절망과 죽음을 안고, 어딘지 비정상적이고 병적이며 분열병에 걸린 발광하는 괴인이어서 성격이나 교회나 절대적인 것, 영적인 것에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오랜 수난사를 통해서 기독교에 대한 수용 감수성(受容感受性)이 빠르나 샤머니즘화 되기 쉽고, 윤리성괴 인격적인 요소가 결여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對)기독교 풍토는 기독교보다 그 비판이, 신앙보다 회의가, 신을 향한 실존보다 신을 등진 고발이, 신의식보다 부재 신의식이, 뒤에 올 것이 앞질러 와서 우리는 괴상한 기독교 이단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 상황 윤리, 살신론(殺神論)을 비롯하여 성 해방 운동까지 외래 풍조의 도전 앞에서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겠습니까?


성경적 신앙을 사수합시다.
  숱한 비성경적 신학, 비성경적 종교 체험, 비성경적 기독교 운동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번성해 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국 교회의 장점인 새벽 기도와 뜨거운 기도 생활, 전도열, 주일 성수, 헌금 열, 열의 있는 교회 봉사를 지지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것들을 약화시키는 어떤 시도도 성경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다 많은 방법론으로써 과학성, 합리성의 도입은 아무리 강조해도 비성경적은 아닙니다. 생명도 흥미도 없는 진리를 형체화한 번장한 신(新)학설은 성경의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신비 체험들이 반드시 비성경적이라 하여 배척받아서는 안 됩니다. 바울도 삼층 천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영적 운동과 인물의 배후에는 신비 경험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무위의 도취나 황홀에 머물지 않고 참회와 희생과 사랑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이 풍성한 영적 체험은 고무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회개와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지 않은 인간은 소망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종이나, 유 무식, 남녀노소, 고대인과 현대인의 차별이 없습니다.

신앙도 중생도 그리스도만으로, 성경만으로, 성령만으로라는 확신은 우리가 사수할 배타성 입니다. 이것이 소금의 짠 맛입니다. 이것이 좁을수록 사랑의 에너지는 밖으로 널리 퍼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는 비판의 척도를 옛 것이냐 새 것이나, 정통적이냐 합리적이냐, 유명한 신학자의 것이냐 권위 있는 목사의 것이냐에 두지 말고 그것이 성경적인 것이냐를 따지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적 신앙은 주술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이며, 영적인 것으로써 높은 윤리성과 양심적 실천을 요구합니다.


폐쇄성 탈피
  한국 교회는 예배당을 짓고 꾸미고 그 자체의 팽창을 위하여 너무 많은 돈과 에너지를 쓰는 데 비해 그가 보탬을 받고 구원해야 할 세상의 빈곤과 질병과 무지와 많은 고난에 대하여 하는 일은 너무도 적습니다.

세상과 교회 사이는 점점 유리되고, 그 존재 영역은 점점 좁혀져서 자아 만족, 자아도취, 자아 폐쇄적인 모습이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대중 속으로 또 모든 현실 속으로 참으로 뜻 깊은 접촉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져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우리는 각자가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도와 세상으로 향하는 자세를 찾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가 과학이든 철학이든 사람의 것이든 간에 받아들일 진리에 대한 개방 정신이 필요합니다. 자기의 주장과 자기 체험의 구멍 속에서 모조리 남의 것을 정죄하는 태도는 전근대적이고 낡은 자아 중심을 탈피하지 못한 기독교의 악덕입니다.


망국 심보를 고칩시다.
한국인의 망국병은 분열입니다. 근대화, 조국 통일, 복음화 운동에 선행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로마 사람들이 크리스천을 보고는 “보라! 저들은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보라 저것들이 나라를 망칠 것이다. 저들은 얼마나 물고 뜯고 서로 싫어하는가”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은 용서하고 허물을 덮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무식한 자, 위선자, 바리새, 도둑놈, 내 입으로 욕하고 비난한 그 어느 말도 내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 심보를 고치지 않는 한 에큐메니컬 운동도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인 심성 형성에 우리는 밀알이고 소금이고 거름이 됩시다. 우리만은 먼저 하나되고 우리를 따르라고 말합시다. 그리하여 이 민족을 감격시킵시다.


성(聖)콤플렉스 탈피
 영적인 것, 성신의 영역은 심리적 도덕적 문화적 어떤 영역보다 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을 생활화하고, 그리스도는 우리가 먹고 숨 쉬는 일용할 양식이므로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도 먹고 성(性)생활을 하며 즐거움을 구합니다. 크리스천도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환상적인 절대 표준의 성(聖)콤플렉스를 탈피합시다.

우리는 흔히 성스러운 친교는 하지만 추악한 죄를 서로 고백하는 죄인으로서의 교제가 없습니다. 참으로 성자상(聖者像)은 평화롭고 조화를 이룬 완성된 인간상이라기보다는 신과 악마사이에 있는 수난의 인간상인지도 모릅니다.

흔히 성자의 외모가 악마의 면을 지녔고, 불신의 외모가 신앙의 면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리스천의 과잉 성도의식(聖道意識)때문에 참으로 싫어함을 받는 많은 인간형들이 우리에게서 무의식중에 소외되고 있습니다. 세속화의 문제점도 이런 데 있는 성싶습니다.


제3집단 운동을 위한 제안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 혁명의 유일한 잠재적 에너지입니다. 교회와는 별개로 힘을 합하여 대중과 농어촌에 교회 이전의 교회, 학교 이전의 학교, 병원 이전의 병원을 만들어 강력한 조직과 행동을 가지고 한국사상 전례 없는 사회 단원이며 종교 사회적 집단으로써, 민족의 구심점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현실의 모든 일에 책임지고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정의와 사랑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리고 조국 통일화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시대를, 그리스도의 황금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크리스천의 제3집단 출현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68년 7월 10일 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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