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레문화연구 추태화 소장 칼럼] ‘바보’들을 위한 대역전극

운동 경기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비밀 전략

가 -가 +

추태화
기사입력 2021-08-02

 

사람만이 운동을 한다

스포츠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올림픽 시즌이라 더 그런 감이 있다. 어느 경기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니 보는 사람의 애간장을 태운다. 역전에 역전으로 승리하는 경기를 경험하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우리 삶에는 서로 다른 역전의 장면이 숨어있다. 이게 삶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은혜의 절묘한 순간들 아니겠는가!

 

축구를 봐도 그렇고, 야구를 봐도 그렇고, 혼자서 죽어라뛰어가는 마라톤을 봐도 흥분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이 몸을 사용하여 운동하고, 거기다 규칙을 가미하여 우열을 가리는 스포츠는 그야말로 사람이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인류 문명을 공부한 어떤 이도 어느 동물이 체육활동을 했다거나, 무슨 경기를 했다는 연구 결과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은 번복할 수 없는 실화다.

 

사람의 조상처럼 지목되는 어느 침팬지 원숭이 종류에서 운동경기가 있었다는 것을 듣도 보도 못했다. 만약 그랬다면 노벨상에 준하는 발견이 되리라. 해외 토픽에 수백 년 동안 회자되리라. 그런데 그런 사실은 아직, 아니 영원히 나타나지 않으리라. <혹성탈출> 같은 영화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공상과학소설일 뿐이다. 인간은 동물적 속성인 육체(Flesh)를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분명한 영적 존재이다. 운동은 축복이다. 이 속에 뭔가 깊은 깨달음(Insight)이 있다.

    

▲ 축구대회    ©한교연 제공

  

인생은 하나의 경기

이 스포츠 경기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열혈팬이라면 더 하다. 흔히 말하듯, 경기에 살고 경기에 죽는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 돈도 걸고 인생도 건다. 스포츠로또, 토토가 그렇게 생겨난 것이리라. 이 경우는 극단적인 사례에 속하니 여기서 그만....

 

사람들이 스포츠에 흥분하는 것은 경기가 인생을 비유하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신앙과도 연결되어 성경에 등장한다. 바울사도는 즐겨 이 비유를 사용하였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고전 9:26).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바울 사도 뿐 아니라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에도 인생에도 운동 경기처럼 연단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 경기는 인생을 닮았고 인생은 경기를 닮았다. 이기다가도 지고, 지다가도 이길 수 있다. 우여곡절(迂餘曲折)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믿음으로 계속 승승장구 하면 얼마나 좋을까. 흔들리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도 바울은 교훈한다.“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고전 15:58a)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1:23).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밀 까부르듯”(22:31) 때때로 우리는 흔들린다.

 

그런데, 그런데 믿음 생활은 다르다. 언제 어디서 어떤 극적 장면이 펼쳐질지 알 수가 없다. 아니 극적 장면이 언제고 터진다. 다만 우리는 그 때와 시한을 모른다.“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3:11)기 때문이다. 여기에 믿음 생활에 비밀이, 신비가, 묘미가 들어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자녀를 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고백이 가능하다.“인생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시작이다”(최세웅 감독 목회에세이). 여기에 이르면 믿음 생활이 흥미진진해진다.

 

 

고개숙인 9회말, 그런데 역전극

흥미진진한 것은 인생에서나 경기에서나 맛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극적인 장면이라면 단연 역전극(逆轉劇)이라 하겠다. 한 경기의 클라이맥스는 역전극이 펼쳐질 때가 아닐까. 역전의 순간이 언제 터질까?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는 이유일 것이다.

 

야구로 하자면 9회 말, 패색이 짙은 분위기, 이때 마지막 타자가 들어서고, 투 스트라이익 풀 카운드!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선수나 관중이나 긴장이 극에 달하는 순간. 장내는 쥐죽은 듯 숨 죽인다. 직구인지 커브인지 무섭게 빨려드는 볼. ! 안타다 안타. 그리고 경기는 뒤집힌다. 아나운서가 소리친다. 역전입니다. 역전! 이런 역전극(逆戰劇)이 벌어지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축구에서도 역전극은 종종 일어난다. 한 두 골로 지다가 기어이 동점을 만들고, 연장전에서 회심의 한 골로 이긴다. 어떤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가는데, 결국 한 골로 승부가 갈린다. 이렇게 질 듯한 팀이 이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은 둥글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끝이 끝나야 진짜 끝이다라는 말도 역시 맞는 말이다. 세상 이치도 이러하니 미리 겁내지 말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면서 기회를 바라보는 자세는 당연하다 하겠다.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도 있고, 오뚜기 정신이라는 표현도 있지 않은가. 자신이 함부로 끝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22, 24:13). 히브리서 기자도 간절히 권고한다.“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3:6, 14, 6:11). 그런데 이런 진리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세태가 안타깝다.

 

하나님께서 끝이라 정하실 때가 진짜 끝인 것이다. 그 전의 상황은 모두 과정이요 시간의 흐름 속을 지나는 한 지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끝까지 굳건해야 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그렇지 못하니 예수님께서 따끔하게 가르치신다.“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26:41).

 

 

인생은 하나님의 역전극

역전극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세상에서 펼쳐지는 운동 경기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역전극이 등장하는데 하나님의 섭리에는 어떠할까? 영성으로 조언하는 심리학자 폴 트루니에(P.Tournier)는 인생을 이렇게 정의한다.“인생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험이다.”믿음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인생은 그야말로 거친 사막을 걷는 여정에 비유된다. 리얼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사막을 건너야 했다. 모험 중에 모험이었다.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그 여정 내내 의심과 원망, 불평과 불만이 쉬지 않고 터져나왔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역전극을 펼쳐주셨다. 대역전극이다.

 

노예 생활에서 해방과 자유로, 파도 출렁이는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걸을 수 있게 바다를 가르셨다. 목마르다 외치는 백성들에게 바위에서 생수가 터지는 극적 장면을, 배고프다 원망하는 이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하셨다. 뜨거울 때에는 구름기둥으로 가리워 주셨고 추울 때에는 불기둥으로 온기를 베푸셨다. 백성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을 하나님은 만들어 주셨다. 사막에서의 역전극이라 하겠다. 9회 말 패배가 확실해 보이던 순간에 만나는 이른바 9회 말 역전 안타! 역전 홈런이면 더 극적이겠다. 인생의 길목에 이런 역전극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숨겨진 역전극! 믿음의 백성이라면 기대하고 기대해도 좋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다. 코로나도 그렇고 시대 변화도 그렇고 뭐 하나 안정된 상황이 없다. 흔들리고 요동치는 세태 가운데 믿음의 백성,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에 널려진 욕망의 시장에 같이 아귀다툼할 수는 없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경우가 많은 시대이다. 코로나를 핑계로 여기저기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듯 우겨싸는 형국이다.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 바보같다. 아니 바보여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바보 같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승리의 대역전극을 연출하셨다. 고난에서 영광으로 대역전극을 이루신 것이다. 인생의 환희는 하나님의 대역전극에 우리가 선수로 직접 등장하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이러한 장면을 참여하는 이들은 복 있을진저!

 

우리의 무기는 혈과 육이 아니요 주님 사랑과 공의이다. 그러니 칼을 들 수는 없지 않은가.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2). 대장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의 경주를 다한다면 주님은 분명히 어떤 역전극을, 대역전극을 연출해 주실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지혜가 끝내 이기게 하시리라. 할렐루야!!

 

 

- 추태화 소장(이레문화연구소/ 전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뉴스파워. All rights reserved.